누가 누구를 구경해?
신림동의 작은 족발집이었다. 남자는 족발집 앞의 접이식 테이블 앞에 앉아있었다. 말끔하게 차려입은 정장이지만 귀티가 나지는 않았다. 얼마 전까지 남자의 목을 조이고 있었을 것 같던 넥타이는 숨을 쉬기 편할 정도로 풀어져 있었다. 테이블 위엔 속이 비워진 두 개의 소주 병이 나란히 정리되어 있었다. 혼자 먹기 부담스럽지 않을 미니족발이 차려져있고 세 번째 소주 병은 배를 채운 체 남자 곁을 꿋꿋하게 지키고 있었다.
남자는 먼 곳을 응시하다가 족발집 사장님에게 받은 대출 홍보 메모지 위에 무언가를 적었다. 그러고는 다른 곳을 가만히 응시하다가 무언가 적는 것을 반복했다.
바로 앞 버스정류장에서 내리는 사람들이나 거리를 지나는 행인들은 대낮에 정장을 입고 족발집 앞에서 소주를 마시는 젊은 남자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지나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남자는 개의치 않았다.
버스가 지나갈 때마다 타고 있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다.
<퇴근 시간인가 보군...> 남자는 중얼거리며 또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그렇게 가만히 앉아서 지나는 버스와 버스에 탄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때 정류장에 멈춰 선 버스 안에 콩나물처럼 빼곡한 사람들과 눈이 마주쳤다. 묘한 정막이 흘렀다. 버스가 덩치 큰 소리를 내며 다음 정거장으로 출발할 때 남자는 씩 웃으며 소주를 한잔 털어 넘겼다.
이 글의 남자는 왜 버스 안의 사람들과 눈이 마주치고 버스가 떠날 때 웃었을까?
한 번 생각해 보시라.
왜! 남자는 버스 안의 사람들을 보고 웃음이 났을까.... ^^
나는 정답을 알고 있다.
그 남자가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20대 청춘의 어느 날이었다. 대단하지도, 그다지 크지도 않은, 기억에도 나지 않는 어떤 회사에 면접을 보러갔던 날이었다. 지금 남아있는기억은 그뿐이다. 하지만 왜 버스의 사람들을 보고 웃음이 났는지 내가 왜 그 족발집 앞에 안장 있었는지는 잊지 않고 있다. 아마도 정장이라는 우스꽝스러운 피에로 옷을 입고 이사회의 일원이 되어 보겠노라고 발버둥 쳤던 스스로를 위로하고 싶었던 날로 기억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고 신림역에서 버스를 타고 정류장을 내리니 못 보던 족발집이 보였다. 동네에 이런집이 있었나 할 정도로 맘에 드는 가게였다. 메뉴도 마음에 들고 규모가 작아서 아지트 같았다.
그때는 그곳에서 술을 마실 생각은 없었다. 다음에 한 번 와볼 요량으로 정류장에 선채로 가게를 둘러보는데 입구 한편에 칠판이 비스듬히 서 있었다.
그곳엔 족발 사이즈나 가격이 적혀 있지 않았다. 그 칠판을 발견하지 않았다면 난 바로 집으로 귀가했을 것이다. 그 칠판에 적힌 것은 사장님이 손수 적은 시었다. 시인은 들어보면 알만한 했지만 시는 조금 낫 설었다. 나의 감성은 훤한 대낮에도 자주 발동하므로 따뜻한 오후의 햇살을 느끼기는 충분했다.
<바깥에 앉을 수 있나요?>
날도 좋은데 어두컴컴한 곳에 앉기 싫었다. 바깥에 있는 접이식 테이블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도 공짜로 즐길 수 있는 재미 중 하나다. 그리고 그들은 내가 구경하는 줄도 모른다. 술을 한잔 마시며 잠시 한량 같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소주가 한 병쯤 들어가니 또 무언가 끄적 대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사장님께 메모지와 펜을 요청했다. 사장님은 이런 것도 괜찮냐며 대부업에서 홍보차 나눠주는 메모지를 주셨다.
< 상관없어요~! 감사합니다! >
나를 가운데 두고 움직이는 모든 것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생각나는 것들을 적으며 술을 마셨다. 나는 혼술을 할 때 항상 그렇게 무언가 적으며 술을 마시곤 한다.
족히 일흔은 넘어 보이시는 할아버지가 멋진 헬멧도 쓰고 레이싱복도 잘 차려입고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셨다. 멋있는 노년의 모습이긴 한데 자전거의 시동이 금방이라도 꺼져서 넘어질 듯 아슬아슬하게 두 바퀴가 굴러가고 있었다. 숙연한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세 번째 소주 병을 잔 위에 기울일 때쯤 되니 정류장의 그림자가 꾀나 길어져 있었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부터 버스 안에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나는 정류장 앞에 서는 버스를 넋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지... 왜 퇴근시간은 모두 비슷한지... 저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하는지... 행복은 한지...
모두 신림동에 사는 건지... 무게 없는 생각들이 두서 없이 어질러졌다.
그렇게 정차한 버스를 바라보는데 버스 안의 많은 눈들이 나를 보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 족발집 앞에는 달랑 나 혼자 않아서 소주를 세병이나 까고 있었다.
< 이건 무슨 느낌이지? > 느낌이 이상했다.
분명히 사람들을 구경하기 위해 바깥 테이블을 선택한 것은 <나>였는데 버스에 탄 많은 사람들이 나를 구경하는 꼴이 되어 버렸다. 주객이 전도되었다. 순간에 나는 족발집 앞의 술 마시는 원숭이가 되어버렸다.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크게 깨달으니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되는구나! 바뀔 수도 있구나? >
세상에 이런 비슷한 일은 자주 경험한다. 만약 내가 족발집 앞에 앉아 있기만 했다면 구경거리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멀쩡한 정장 차림에 젊은 남자가 대낮에 소주를 3병이나 비우고 앉아있으니 구경거리가 될 만도 하다.
아니면 버스에 탄 사람들이 더 많았으므로 내가 구경거리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만약 내가 족발집 앞에서 20여 명의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있었다면 달라졌을지도 모를 것이다.
서로의 입장 차이가 난해해졌을 때 나는 종종 그날을 기억한다. 나의 관점과 상대의 관점은 충분히 다를 수 있고 같은 목적으로 서로를 바라볼 수도 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동물원의 원숭이가 우리를 구경하고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차분하게 홀로 앉아서 술을 마시는 것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평소에 놓칠 수 있는 사색의 실마리를 당겨
창조의 가능성을 열기도 하고 어제의 반성으로 조금 더 현명한 내일을 준비할 수도 있다.
술을 좋아하지만 부어라 마셔라 하며 거친 입담이 난무하는 무자비한 술자리는 싫다. 사색과 논쟁이 적절히 배합되어 머리를 맑게 해주는 술자리가 좋다.
내가 족발집 원숭이가 되었던 그날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