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누라가 친정에 가는 날엔...

여보 미안해... 난 그날 밤이 황홀했소....

by nAmsoNg


제목만으로 평소에는 꿈쩍도 안 하던 아드리날렌이 꿈틀거리며 이유 없는 설렘이 가슴속을 간지럽힌다면 그대는 유부남이 틀림없다.

콩깍지가 씌여 평생 그녀의 노예가 되길 자청했던 사랑고백은 결혼식장을 나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계절이 바뀌듯 사라져버린다. 연애 기간이 몇 년이었던 간에 그것은 계절처럼 지나간다. 그리고 일상 앞에 마주 선 남자와 여자에게는 동원예비군에나 가야 겨우 기억이 날듯 한 전우애가 싹트기 시작한다.

어찌 됐든 사랑은 남아 있다. <전우애> 마지막에 < 愛 >라는 한자가 들어가니 말이다.


짧은 이야기를 하나 하고 글을 이어갈까 한다.

오랜만에 두 친구가 만났는데 한 친구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이다.

친구가 걱정스럽게 물어봤다.

"자네 무슨 일 있나? "

친구가 대답했다.

"마누라가 친정에 갔어"

"아니 그럼 좋은 일이 아닌가?"

"오늘이 오는 날이야"

"... 오늘 술은 내가 사지! "

실제로 가까운 선배의 형수님은 회사에서 바쁜 프로젝트를 마치고 아이와 함께 해외로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선배는 그 보름 동안 너무도 자유로웠다면서 형수님이 돌아오기 전날 나와 술자리를 갖은 적이 있었다.


일과 가정에서 자아를 잃어버린 남자들의 가슴엔 언제나 자유에 대한 갈망이 용암처럼 끊고 있다. 기회가 왔을 때 온도를 올려 발산할 준비를 하기엔 언제나 시간이 부족하고 우리에게 그런 시간은 오지 않는다. 미리 온도를 올려놓고 있어야 기회가 왔을 때 자유를 향해 터트릴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아주 가끔 그런 기회가 온다는 것을 알고 있다. 바로 마누라가 아이를 데리고 친정에 가는 날이다.

나는 퇴근 후에 매일 집에서 반주를 했다. 아내에게 안주를 해달라고 하거나 술로 인해 귀찮게 하지 않으니 허락을 받고 마실 일은 아니었다. 그렇게 집에서 반주를 마시는 정도는 불편하지 않게 지내면서도 친정에 간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렇게 설렐 수가 없다. 소풍 가기 전날의 들뜬 마음으로 하루를 보낼 수 있다.

매일 마시는 술이지만 와이프가 친정에 가는 날의 음주는 특별해야만 할 것 같다. 그런 책임감마저 든다.

평소에는 냉장고에 있는 반찬을 꺼내서 먹었다면 그날은 안주부터 달라야 한다. 퇴근을 하면 미리 배달 앱을 켜서 치킨이나 회를 시켜두고 집으로 향한다. 집 앞의 슈퍼에서 소주를 2병 정도 사고 혹시 부족할 수도 있을 상황을 대비해서 맥주도 한두 캔 더 사들고 귀가한다. 현관문을 여니 신발장 위의 자동센서에 불이 들어오고 거실은 깜깜하다. 하지만 외롭거나 처량하지 않다. 그곳에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잠들어 있는 가족들의 눈치를 보며 티비 리모컨의 전원 버튼을 누르자마자 음소거부터 눌러대는 행동을 하지 않아도 된다.

벗은 옷을 깔끔하게 걸어두는 것이 몸에 배어 있지만 그날은 아무 곳에 옷을 벗어두기도 한다. 소심한 일탈에 불과한 그 행동 하나하나가 헐렁한 옷을 걸친 듯 자유롭다. 평소에는 무시해야만 했던 삶에 대한 보상을 받는 느낌이랄까?

언제나 아내에게 만족스러운 월급을 가져다주지 못 한다는 죄의식으로 지치고 힘들어도 표현할 수 없었던 가시밭 같은 시간들이 이어지고 있다. 느긋하고 근엄하게 가장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언제 무슨 이유로 불똥이 튈지 모를 조바심에 눈치 아닌 눈치를 보며 사는게 사실이다.

<생활비가 부족하다며 불평을 할까? >

<술을 자주 마신다고 뭐라고 하는 건 아닐까? >

<설거지를 안했다고 혼나진 않을까?>

더욱 서글픈 것은 불똥이 튀어도 합당한 변명조차 허락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툼으로 이어지기 싫고, 크든 작든 다툼은 이후의 시간을 한참 동안이나 눅눅하게 만든다. 차라리 그냥 한소리 듣고 지고 마는 것이 눅눅해지는 시간을 막을 유일한 방법인 것이다.

그러니 와이프의 친정행은 나의 죄의식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져 나의 가치가 고개를 드는 시간이다.

당연히 축배를 들어야 한다. 매일 먹었던 집 앞의 후라이드 치킨도 더욱 맛있게 먹어야 한다. 매일 먹는 소주도 그날은 2병 정도는 마셔줘야 한다. 오늘이 생의 마지막인 듯 모든 시간을 1분 1초를 잘게 쪼게어 음미해야 한다. 움츠렸던 자아를 찾는 시간인데 아까울 것이 없다.


출근을 위해 주량을 조절했지만 평소보다는 속이 살짝 쓰린 아침을 맞이한다. 와이프가 돌아오는 날이다.

어제의 흔적을 싱크대에 담아둘 베짱이 이제 내겐 없다. 한동안은 그것이 가장의 특권이라 생각해서 몇번 누려 본 적이 있었다. 사실 누렸다고 보긴 어렵다. 이후에 쏟아지는 잔소리를 감당할 수 있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몇 번의 다툼이 생기자 이젠 내가 지쳤다. 싱크대의 흔적은 내 삶을 통틀어 짓밟을만한 칼날이 되어 돌아왔다. 지금은 가장이든 남편이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숨만 쉬고 사는 것 같다.

다행히 아들에겐 아직 괜찮은 아빠이다

아내가 친정에 갔던 황홀한 밤을 보내고 나면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숨죽이고 열심히 일하면서 그렇게 살아간다. 그리고 이런 작은 공간에서 글을 쓴다. 이곳에서는 조금이나마 나의 존재가 숨 쉬고 있다고 믿는다.

친정이 가까워서 더욱이 자주 있는 일이 아니지만 아내가 친정가는 날을 나는 매일 기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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