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촉사고를 낸 여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첫 번째 위로>

그대여! 아무 걱정하지 말아요!

by nAmsoNg


퇴근시간에 전화기를 열어보니 동생에게 부재중 전화가 와있었다. 2시간 전이었다. 업무 중이라 전화가 왔었는지도 몰랐다. 이제 막 회사 밖으로 나가려던 참이라 전화를 걸었다.


동생은 "여보세요"라는 말은 생략하고 평소보다 높아진 목소리로 던지듯이 말했다.

"오빠! 나 사고 났어!"

순간 나는 모든 촉각을 곤두세우고 판단하기 시작했다. 마치 AI같았다.

'사고? 일단 전화를 받으니 살아는 있는건데'

'목소리가 조금 높기는 한데 크게 다친 것 같진 않고'


"무슨 사고? 차? 어디 다친 곳은 없어?"

일단 안부를 물었다. 무슨 사고 든 사람이 안 다치면 큰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니 다치진 않았는데 내 차는 완전 찌그러졌어!"

많이 놀랐는지 2시간이나 지났지만 평소의 목소리보다는 많이 상기된 목소리였다.

동생은 말을 이었다.

"어처구니가 없어~ 사고가 날 곳도 아니고 평소처럼 주차장에서 그냥 나오던 중이었는데...

사고가 날만했어야 납득이 되지. 내가 왜 이런 실수를 한 거야.. "

납득할 수 없는 실수에 스스로를 자책하고 있었다. 울먹이는 목소리로 들리기도 했다.

어떤 느낌 인지 안다. 잠깐의 실수가 큰 사고로 이어진 것을 나도 경험했었다. 누굴 탓 할 수도 없고 바보 같이 느껴지는 스스로가 원망스러울 뿐이라는 것을 나도 잘 알고 있다.


내가 물었다.

"차 사고 처음인가? "

"응"

"상대 쪽도 다친 사람은 없지?"

"응 가만히 서 있는 차를 내가 긁었거든 그 차는 멀쩡해"

"그럼 됐다! 운전하면서 사고 한 번도 안 나는 건 말도 안 되고 큰 사고 아니고 사람 안 다쳤으면 된거야!"

말을 꺼내 놓고 보니 이성적으로 맞는 말이긴 한데 '아차'싶었다. 여자들에겐 논리적인 말이 필요 한 게 아니라는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순간 나는 내가 뱉은 말을 수습해야 했다.

"지금은 어디야? 괜찮아?"

한 번 더 안부를 묻는 것으로 논리적인 해결책을 잠시 미뤄뒀다.

여자친구도 아닌데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른다. 결혼 생활 10년을 하다 보니 여자에게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어렴풋이나마 구별이 된다. 아직도 잘은 모르겠지만 말이다.


"저녁에 기타 선생님하고 저녁 약속 있는데 내가 평소 같으면 약속 취소하고 집에 있을 텐데 그냥 나가기로 했어" 동생은 자존심이 세다. 스스로 정해놓은 테두리 밖으로 나가는 것과 누군가 함부로 들어오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극심한 자기애라고 볼 수 있지만 그것은 자주 스스로를 옥죄는 올가미가 되기도 한다.

내가 대답했다.

"잘 했어! 그게 별거야? 살다 보면 의도치 않게 일들이 생겨. 그다음이 중요한 거야. 사고 냈다고 머리끄댕이 쥐어 잡고 집에 있어봐야 뭐가 달라지냐. 나가서 이런 일이 있었다고 이야기 하고 술 한잔 하고 털어버리면 되는 거야! 잘 했어!"

나는 폭풍 칭찬을 이었다. 동생 성격으로는 모든 것을 stop 시키고 집안에 틀어박혀 자책하고 있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나는 안다. 반성의 선을 넘어선 자기 비하와 죄책감이 얼마나 자존감을 떨어트리는지 말이다.


동생은 전문대를 졸업하자마다 디자인 계통의 작은 회사에서 경력을 쌓고 이른 나이에 본인의 일을 시작했다. 아직 너무 어리다는 주위의 걱정에도 보란 듯이 도전했고 아픔이야 있었겠지만 잘나가고 있었다.

그런 면에서 나는 동생을 존경했다. 본인의 행동에 빈틈이 없었고 사업도 그럴듯한 성과를 내며 달리는 동생이 자랑스러웠다. 그 시절 나는 꿈만 좆는 찌질이 대학생이었다.

동생이 하는 업무의 특성상 앉아 있는 시간이 길었다. 불안불안하던 허리에 문제가 생겼고 결국 수술을 했다. 가족들은 모두 걱정했다.

나도 걱정했다. 수술을 받기 전 한양대 병원 휠체어에 앉아있던 동생을 바라보며 이 녀석이 과연 스스로의 삶 속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한 번 무너지면 끝도 없이 추락하는 성향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았다. 아버지가 그랬었고 나도 그런 부분이 있을 거라고 의심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무언가 도전하거나 일이 잘 안 풀리 때 항상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 있다.

"이번 일이 안 돼도 나는 절대 쓰러지지 않는다! 반드시 다시 일어난다!" 내가 마음이 여린 놈이라는 것을 알고 가족력(?)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항상 신경 쓰는 것이다. 그때 동생에게 느낀 나의 걱정은 두 발로 일어나느냐 못 일어나느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본인의 삶속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이었다.

수술은 잘 됐지만 한동안 일을 하긴 어려웠다. 서울 한복판에서 두 팔 걷어붙이며 싸우던 젊은 커리어 우먼은 부모님과의 왕래가 가까운 경북 안동으로 내려갔다. 언젠가 다시 재기하겠노라는 의지도 보이지 못한 체 잠시 쉬어야만 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지방에도 자본주의의 시간이 흘렀다. 돈이 없으면 피가 마르는 생활이다.

동생이 홀로 어려운 시간을 버티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 와중에 이런 사고가 생겼으니 까무러칠 만큼 짜증이 났을 것이다. 불안했다. 그나마도 놓지 않고 잡고 있던 삶의 동아줄에 상처가 나진 않을까? 어떻게든 버티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동생의 노력이 힘을 다해 미끄러져 버리는 건 아닌가!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뭐가 있을까? 마음 같아선 당분간 걱정 안 해도 될 생활비라도 덥썩 쥐여주고 싶었지만 나도 여의치가 않았다.

그럼 마음을 위로해줘야 하는데 괜한 걱정으로 동생의 마음을 더 흔들어 놓는 것은 아닐지 혼란스러웠다.

오빠인 나는 평정심을 가지고 동생을 안심 시켜주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동생이 나를 찾을 때 그땐 언제든 옆에 있어주려 한다.


선을 넘지 않으려는 나의 위로가 성공적이었는지는 자신이 없었다. 전화를 끊고는 각자의 시간을 보냈다.

잠자리에 들어 잠시 책을 펼쳤을 때 동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나야~ 기타 선생님하고 밥 먹고 들어가는 길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전화할 사람이 오빠밖에 없어서..."

나이를 먹으면 <딱 보면 아는 것> 들 이 생긴다.

동생의 목소리엔 울분이 가득했다. 숨이라도 잘못 쉬면 울컥하고 터져버릴 것 같은 눈물이 목소리를 절제시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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