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빠 만나러 가는 날이야!
어린이 수영장에서 수업을 하다 보면 잠시 동화 속에 들어온 느낌이 든다. 꾸밈없는 아이들의 질문과 생각이 이제는 사회의 반듯한 틀 속에 갇혀버린 나를 간지럽힌다.
“선생님! 코끼리는 코가 길잖아요? 그럼 코를 어떻게 파요?”
예상치 못한 질문에 웃기도 하고 선생님이라는 사명감으로 있지도 않은 정답을 찾으려 진땀을 빼기도 한다.
한 날은 수영이 끝난 아이들이 옷을 갈아입을 때였다. 탈의실에서 주섬주섬 옷을 입는 아이들 중 한 명이 혼잣말이지만 모두 들으라는 듯 말했다.
“오늘은 아빠 보러 간다” 아이의 목소리에 설렘이 잔뜩 묻어있었다.
옆에서 바지를 입던 아이가 정답이라도 알고 있는 것 마냥 당당하게 말했다.
“너네도 이혼했구나?”
순간 아이들의 옷 입는 것을 도와주던 선생님들이 동작을 멈추고 조용해졌다. 그것은 아주 조금이라도 그 아이에게 상처 되는 말을 하지 않겠다는 무언의 약속 같은 시간이었다. 우리의 침묵을 깨는 아이의 대답은 너무도 담담했다.
“맞아! 그래서 오늘은 아빠 만나러 가는 거야!”
아무렇지 않은 아이의 대답을 듣자마자 정지됐던 영상이 돌아가듯 선생님들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아이의 마지막 질문에 나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너는 엄마 쪽이구나? 나는 아빠 쪽인데”
어쩜 그런 말을 그렇게 태연하게 할 수 있을까? 이제 더 이상 아무 일이 아니게 되어버린 아이들의 현실에 괜히 내가 미안해졌다.
사실 우리 아들도 친구와 이런 대화를 나눌 뻔했다. 7년 전쯤, 우리 부부는 이혼을 전제로 별거를 했고 나는 아들을 데리고 본가로 들어갔다. 아들이 다니는 어린이집 체육대회에 엄마가 아닌 할머니를 모시고 가야 했던 날, 나는 모든 이유를 접고 우리 부부의 인연을 이어가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어른들의 풀지 못한 이해관계와 욕심으로 죄 없는 우리 아들이 휘둘리는 것을 볼 수 없었다. 나의 무능함과 부덕함을 인정하고 아들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아이들에게 엄마와 아빠는 세상의 전부다. 어른이 갖은 <자유의지>의 특권으로 아이들의 온전한 세상을 위협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나의 안녕을 위해 아이의 안녕을 뺏을 수는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