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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니펌프 Oct 13. 2020

질질 흘리는거 딱 질색이야!

A형의 소소한 규칙들

 



결벽증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남자 치곤 꼼꼼한 편이며 정리정돈을 잘 하려 노력하며 산다. 

책상위의 펜들이 제각기 널부러져있으면 괜시리 눈에 거슬리고 신경이 쓰인다. 한쪽구석에 나란히 정리를 해두면 그제서야 마음이 좀 편안해진다. 보통은 작은 연필꽃이를 두개정도 사용한다. 자주쓰는 연필,펜 ,도루코칼을 담은 필통은 약간 앞쪽으로 꺼내두고 뒤로 물러난 연필꽃이에는 취미로하는 캘리그라피 붓펜이나 네임펜,매직,만년필을 넣어둔다. 사용하다보면 뒤섞이거나 새로구입하는 문구류로 식구가 늘어나기도 하는데 그럴 때는 주기적으로 새로 정리하는 편이다. 

책꽂이의 책들도 키순서에 맞춰서 고르게 둬야 마음이 편하다. 쥐파먹은 머리마냥 울퉁불퉁 튀어나와있으면 일에 집중이 되지 않는 편인다. 책상 앞에는  틈틈이 읽을 수 있는 짧은 글들을 엮은책이나 요즘 읽는 책을 꽃아둔다. 책상위의 책들이 많이 읽혀져 익숙해지면 책장에 있는 다른 몇 권의 책으로 교체해서 보는 편이다. 


퇴근 후 집에 귀가했을 때 집이 어지러져 있으면 엄청난 스트레스가 몰려온다. 집은 하루종일 일하고 쉬러 오는 곳이다. 어지럽게 엉킨 빨래에게 쇼파를 내어주고, 아들의 장난감들은 토이스토리처럼 즐비하다. 장을 보고온건지 식탁위에는 냉장고로 들어가지 않고 마켓봉지에 담긴 새물건들이 삐딱하게 주저 앉아있다. 마음을 추스리며 다리를 뻗을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못 참을 땐 늦은 시간이라도 내가 정리를 하기도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한계가 있다. 세탁기에서 나온 빨래들의 위치와 장난감의 원위치를 나는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너무 피곤해서 치우는 엄두가 나지 않을 땐 다시 밖으로 나가 순대국으로 식사를 하고 귀가하기도 한다. 맞벌이를 하며 매번 집정리하는 것이 힘들다고 죽는시늉을 하는 와이프를 이젠 나의 잣대로 건들지 않기로 했다. 정리정돈 문제는 곧 맞벌이 문제로 그리고는 가정경제의 문제로 커져서 다툼이 된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다툼 뒤에 내가 받는 마음의 상처는 크고 오래갔다. 나는 A형이라 상처를 잊지 못하고 B형인 와이프는 다음날이면 잊고 살아간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게 불리한 싸움이었다. 정신 사나운 환경에 내가 적응하는 것이 나의 정신 건강과 집안의 평화를 위해 좀 더 현명한 결정이라 생각했다. 일요일 아침이면 집정리 후 청소기를 집어드는게 일상이다. 단 한 두시간 안에 끝내고 샤워를 한 후에는 절대 집안일을 하지 않는다. 스스로 쉬는 시간을 보장시켜준다. 


이는 A형의 성향이이기도 하지만 어릴적 정리정돈을 교육받은 습관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버지도 남자치곤 주변이 산만한 분이 아니며 우리엄마로 말 할 것 같으면 200자원고지 100장도 모자르지만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외가쪽에서도 혀를 내두르는 깔끔쟁이시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주변정리가 되지 않는 동료들과 함께 생활을 한다는 것은 마음을 많이 비워야 가능한 일이다. 다행인건 와이프와의 다툼으로 단련되어 어지러진 책상을 보고도 지나칠 수있는 능력이 생긴 것이다. 

<그려려니...> 하면서 살아가는 우유부단함이 현실에서는 꼭 필요한 법이다.  


과자봉지를 뜯을 때도 과하게 집어뜯어서 과자가 튀어나오는 것을 싫어한다.  밀봉된 과자와 어울리는 힘과 함께 살살 달래가며 예쁘게 뜯어야 기분이 좋아진다.  

음식을 하다보면 밀가루를 새로 뜯어야 할 때도 있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밀가루봉지 윗대가리를 시원하게 쳐서 속이 훤히 보이도록 모두 잘라버린다.  가루가 담긴 봉지들은 그렇게 자를 경우 뒷처리가 어렵다. 접어두더라도 틈사이로 가루가 세어나와 냉장고에 흘리거나 깔끔하지 못하게 된다. 쓰고남은 봉지를 집어두는 주방용품중엔 커다란 아가리를 책임질만한 놈이 별로 없기도 하다.

봉지를 자르면서 항상 생각하지만 나는 정말 A형이 맞는 것 같다. 대범하게 윗머리를 싹둑 자르지 않고 봉지의 구퉁이를 내용물이 꺼내질 수 있는 딱 그 정도만 대각선으로 자른다. 어쩔댄 너무 작게 자른 나머지 구멍에 막혀서 밀가루가 나오지 않을 때도 있지만 꺼낼 때 조금 불편해도 보관하면서 질질 흘리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무엇이든 그렇다. 가위를 가지고 잘라서 오픈해야할 상품들은 안의 내용물이 간신히 나올 정도의 작은 구멍만 생기도록 쫌스럽게 자른다.  옆에서 보고 있던 남자선배가 어이없다는 듯이 바라보다가 낚아채서 윗면을 통째로 잘라버린 적도 있다. 결국 크게 벌어진 주둥이를 정리하는 것은 내 몫이였는데 아무리 조여도 맘처럼 깔끔하게 처리되지 않아서 원망스러웠던 적도 있다. 


스스로 불편한 부분은 없다. 아마 함께 사는 사람이나 주위의 사람들이 다소 불편 할 수는 있을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지나다닐 때마다 반듯했던 것들이 드러누워 서로 엉키는 것보다는 정리정돈에 신경쓰는 사람이 

함께 생활하긴 편하지 않을까?  무엇이든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적당함이 필요하다. 

무엇이든 칼같이 오와열을 맞추려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가위가 필요할 때 가위가 있어야 할 곳에서 편하게 가위를 꺼내려는 것이다. 가위를 찾는데 이불속을 뒤지고 냉장고를 열수는 없지 않은가!? 


삶을 좀 더 효율적으로 살아내기 위한 A형의 소소한 규칙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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