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으로 <두 분 중 한 분을 닮은 것 같은데...>
나에게 수영강습법을 알려주던 선배가 했던 말이 있다.
<수영은 회원이 하는거야! 우리가 아무리 잘 가르쳐도 운동신경이 없으면 배우지 못하는거지!>
완전히 맞는 말도 틀린말도 아니다.
지도자의 역량에 따라 분명히 수영을 빠르고 정확하게 배우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노력하지 않는 지도자를 만나 매일 제자리인 아이들도 있다. 또는 그 선배의 말처럼 운동신경이 없어서 어느 누가 가르쳐도 진도가 나가지 않는 아이들도 있다. 분명한 건 운동신경이 좋은 아이들은 누가 가르쳐도 잘한다. 능력 있는 지도자라 함은 다른 지도자가 두손 두발 다 들어버린 아이를 데려다가 물에서 팔다리를 움직여 앞으로 나가는 사람을 만들 수 있는 지도자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지도자의 차이는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아이의 영법 상태에 따라 필요한 스킬을 잘 골라서 지도하는 것이다. 자유형호흡시 어깨가 뒤집어지는 아이에게 매일 팔돌리기만 가르쳐봐야 소용없다. 대부분 어깨가 넘어가는 아이들은 오래 숨쉬기 위해 어깨를 뒤로 넘겨 호흡하는 시간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이런 친구들이 나에게 오면 음파호흡법부터 다시 가르친다. 어머님들은 의아해한다.
<아니 음파는 처음에 다 배웠는데요?> 하지만 마시는 호흡이 빠르게 되지 않을 때 영법이 어떻게 불편해지는지 그리고 호흡법만 달라졌을 뿐인데 영법 전체가 균형잡히고 부드럽게 교정된 모습을 보고나면 나를 믿게 된다.
이처럼 교정해야 할 포인트를 잡고 적시적소에 지도하는 것일 뿐 강습법은 사실 비슷하다고 본다.
영법이 되지 않는 무수한 사례들을 영법마다 포인트를 잡아서 고쳐주는 것이 지도자의 능력이다.
여기까지가 지도자의 능력임은 틀림이 없다. 헌데 더 중요한 것은 받아들이는 아이의 컨디션이다.
운동신경이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타고난 재능이 다른 것을 탓하고 싶지는 않다.
문제는 엄마가 그 사실을 모른다는 것이다.
첫 상담시 제시한 <개인적으로 차이는 있지만 평균 3개월정도면 자유형정도는 됩니다> 라는 말만 믿고 있는 것이다. 분명 전제조건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차이는 있지만! > <평균적으로!> 이것은 평균 이하의 운동신경을 가진 아이들은 3개월이 더 걸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돈을 주고 등록을 했으니 남들과 똑같이 가르쳐 달라! >고 하는 것은 욕심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최대한 노력해서 지도하지만 모든 아이들이 같을 수는 없다. 모든 아이들은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이 정해져 있다. 엄마들이 더 잘 알 것이다. 물속에서 3개월만에 자유형을 습득 하느냐 마느냐의 기준으로 아이를 판단 할 수 없는 것이다. 누구는 한 달만에 되기도 하고 누구는 6개월이 걸리기도 하다. 오래 배우면 교육비가 더 들어가기때문에 조바심나는 것은 이해하지만 아이의 컨디션에 맞게 기다려 주기도 해야한다. 대부분 운동신경이 없는 아이는 부모님중 한 분이 운동신경이 없고 안타깝게 그분을 닮았다. 누구를 탓할 일이 아니다.
학부모님 스스로 운동을 잘 하지 않았다면 아이를 재촉하지도 지도자를 원망하지도 않아야 할 것이다.
다들 인정하겠지만 운동선수의 아이는 운동을 잘하고 의사,검사의 아이는 공부를 잘 한다. 우주 만물이 생존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전하려 하는 유전자의 힘을 왜 우리 자녀에게서는 찾지 않으려는지 모르겠다. 그것을 부인하면서 기적을 바라는 것만 같다.
본인의 아이가 운동신경이 없으니 천천히 지도해달라는 양심적인 엄마들도 있다. 미리 말을 해주어서 부담이 덜 되기도 하지만 그말을 모두 믿지는 않는다. 그렇게 몇 개월이지나고 아직 음파발차기로 25m를 완주하지 못하는 상황이되어 컴플레인이 나오는 경우를 많이 봤기 때문이다. 오로지 우린 모든 아이들이 평균적인 시간안에 목표된 영법을 숙달 할 수 있게 만들어야한다. 때론 수영을 지도한다기 보다는 팔 다리를 움직여 물속에서 앞으로 나가는 사람을 만들고 있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운동신경이 없는 아이를 힘겹게 접영까지 가르쳐서 레벨테스트에 합격시키면 지도자들은 감격한다. 그리곤 저 아이를 내가 만들었다며 무에서 유를 창조한 듯 이야기 한다. 물론 동료 선생들 사이에서만 하는 이야기다.
두 친구가 등록을 하고 초급단계부터 함께 수업을 한다. 한 아이는 운동신경이 좋아서 똑같이 설명해도 잘 따라한다. 한 친구는 운동신경이 없어서 더 많이 잡아 주고 신경을 써도 어려워한다. 시간이 갈수록 격차가 벌어진다. 두 친구의 엄마들도 친분이 있어 보인다. 한 명만 진도가 나가면 비교가 될 것 같아서 잘 안되는 아이는 빨리 끌어올리려 하고 잘 하는 친구는 진도를 늦춰서 천천히 가르친다. 두 친구의 진도를 맞춰서 함께 수영을 배우러 왔을 때의 우정을 지켜주려 안간힘을 써보지만 시간은 그들의 우정을 곱게 두지 않는다. 결국 잘하는 아이의 엄마가 아이의 진도를 뺄 수 있게 다른 반으로 움직인다. 알면서도 모른척 속상한 마음을 혼자 위로하고 현실을 받아들이는 엄마들도 있지만 다른 친구들을 비교하면서 조바심을 내는 엄마들도 있다.
내가 지도했던 학생중 그런 엄마가 있었다. 레벨테스트를 한 달 앞두고 아이들이 열심히 운동을 하던 시기였다. 어머님은 옆 동네 사는 아이들은 시작한지 얼마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우리 아이들과 같은 레벨을 볼 수있느냐는 식의 컴플이었다. 나의 자질을 의심한다는 식의 말까지 서슴없이 하셨던 분이다. 내가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객관적인 나의 판단으로 아이들은 하루하루 성장했고 아이들의 운동신경으로 준비하는 레벨이 결코 낮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영을 그만 둘 생각까지 하시는 어머님께 말씀드렸다.
<어머님이 말씀하시는 아이들이 누군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아이들마다 개인적인 능력들이 다르다는 것은 어머님도 아실 겁니다. 보시다시피 우리 아이들이 한달 한달 눈에 띄게 발전하고 있는 것도 확인 하셨을 겁니다. 레벨테스를 준비하면서 긴장하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합격못해도 괜찮아! 너희가 열심히 연습했고 최선을 다하면 되는거야! 분명히 그땐 오늘보다 수영을 더 잘하는 00이가 되어있을 꺼야! 포기 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것만으로 선생님은 너희가 너무 자랑스러워!
어머님! 지난주 보다 조금이라도 더 발전했으면 되는게 아닐까요? 다른 친구와 비교하시면 지금껏 열심히 준비한 우리아이들의 노력은 어떻게 되는건가요? 수영을 그만 시키려는 것은 어머님이 판단 하시겠지만 아이들을 믿고 기다려주시는 건 어떨까요? 테스트까지 남은 시간도 열심히 지도하겠습니다. >
어머님은 별말씀 없이 아이들 손을 잡고 귀가하셨다. 이후 레벨테스트는 무난히 합격했고 수영모자색깔이 바뀌고 좋아하는 아이들을 함께 응원해주셨다. 그리고 그때 나에게 무례하게 해서 죄송하고 우리아이들이 힘들었을 것 같다면서 후회섞인 회상을 하셨다. 가슴이 먹먹했다. 어머님은 정말 무언가 느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내가 누구가의 자녀교육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 것같아서 보람되면서도 마음이 무거웠다.
우리는 끊임없이 강습법을 연구한다. 잘 하는 아이들이 아닌 수영을 어려워 하는 아이들을 위해서 한다. 조금이라도 쉽게 이해하고 조금이라도 더 잡아주며 몸으로 습득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힘들때도 많다. 하지만 그 아이들이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해서 어떤 성과를 냈을 땐 아이와 지도자가 함께 성취감을 느낀다.
적어도 내가 가르치려고 하는 것은 수영을 뛰어 넘어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자세다. 그래서 작은 성과라도 자신감이 생기고 새로운 것에 계속 도전하며 성장하는 것을 가르치고 싶은것이다.
이글을 읽는 독자분들 중 학부모님이 계시다면 자문해보시길 바란다.
자녀가 시간안에 무언가 해내지 못하는 것에 조바심을 내고 있지는 않은지 말이다. 그리고 돌아보길 바란다. 스스로 잘 하였는가! 아니면 사랑하는 배우자는 잘 했던 것 인가! 분명 둘 중 한명은 닮았을 것이다. 누굴 닮았든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 당장 잘 해내는 것 보다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가는 것이 우리 삶을 대하는 좀 더 현명한 자세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