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담파스타

내 행복이 가장 중요한 정어리 펜넬 파스타

by 알담

정어리 펜넬 파스타는 프랑스 살 때에 친구가 알려준 레시피입니다. 저는 펜넬도, 정어리도 즐겨 먹지 않는데 이 둘을 파스타에 곁들일 생각은 더더욱 하지 못 했어요. 조합이 상상되지 않으니 딱히 당기지 않는달까요. 그런데 이 친구가 정말 강력하게 추천하는 거예요. 진짜 맛있다고요. 언제나 나긋나긋하고 웬만한 일에는 하하 웃으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 그래서 일희일비하며 쉽게 휩쓸리는 제가 많이 좋아하고 의지하던 그 친구가요.


잠시 이 친구 이야기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제가 바리스타로 일하던 때 만난 친구인데요. 이미 쌓아온 커피 커리어가 탄탄한 데다가 벨기에 사람인지라 네덜란드어와 영어, 프랑스어까지 능통했어요. 고객들과의 스몰토크도 아주 능숙했고요. (생각해 보니 제가 이때 많이 배운 것 같네요.) 조금만 주문이 밀려도 정신없는 저와 달리 아무리 바쁜 러시타임이어도 목소리 한 번 높이는 일 없이 차분하게 하나씩 해결하는 타입이었어요. 저와는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친구였는데 함께 일하다 보니 통하는 부분이 생각보다 많더라고요. 아무래도 잘 들어주는 걸 넘어서 놀라울 정도로 대화의 맥락을 잘 짚어내는 친구의 능력 덕분이었을 거예요. 영어도 프랑스어도 미숙해서 속상하게도 같이 일하는 친구들과 대화하는 것조차 마음이 편하지 않았는데요. 처음으로 외국인임에도 언어를 신경 쓰지 않고 대화하게 된 사람이었어요. 그 자체로 외국 생활에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던지요.


그런 친구가 추천하는 파스타인데 어떻게 해보지 않을 수 있겠어요? 처음으로 마트에서 내 돈 주고 펜넬과 정어리를 사서 해 먹은 날, 바로 제가 가장 좋아하는 파스타가 되었습니다.


먼저 달궈진 팬에 정어리 캔의 기름을 버리지 않고 그대로 부어 얇게 슬라이스 한 펜넬을 볶아주는 게 포인트입니다. 녹진하게 녹아든 정어리기름이 펜넬 곳곳에 스며들거든요. 펜넬이 너무 무르지 않고 아삭한 감이 살아있게끔만 살짝 볶아준 다음, 정어리를 넣고 한입크기로 살을 으깨가며 살살 볶아줍니다. 삶아둔 파스타와 면수, 올리브오일을 넣어 면을 코팅시킨 다음 불을 끄고 레몬즙을 왕창 넣어주면 완성이에요. 펜넬 잎은 따로 모아두었다가 그릇에 담은 파스타 위에 얹어주고요. 정어리의 고소하고 비릿한 맛이 딱 맛있다고 느낄 즈음, 펜넬과 레몬이 어우러진 미묘한 산미가 파스타를 질리지 않게 잡아줍니다. 제일 싼 정어리 캔과 한 번 해먹을 양의 작은 펜넬을 사면 3유로 선에서 해 먹을 수 있었어요. 너무너무 맛있어서 일주일에 세 번도 해 먹은 적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프랑스에서의 잊지 못할 기억이 되어준 고마운 파스타예요.


그런데 사실, 이 친구가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이렇게까지 좋아하는 파스타이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도 듭니다. 음식은 누구와 먹는지가 중요한 만큼 누가 알려주었는지도 중요한 매개체거든요.


언젠가 제가 이 친구에게 고민상담을 할 때가 있었어요. 정확한 고민의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나름 심각했던 것 같은데!) 그때 친구가 해준 말은 깊게 남아 제 인생 모토가 되었습니다. 원문을 그대로 옮겨보자면, ‘Mais c’est plus important que tu sois heureuse.’, ‘그렇지만 네가 행복한 게 제일 중요해’.


당연한 명제를 스스로 되뇔 때와 누군가에게 들었을 때는 그 영향이 다른 법입니다. 멍하니 길을 가다 갑작스레 발을 헛디뎌 잘못 넘어질 뻔할 때처럼, 정신이 확 들게 되죠. (사실 친구가 건넨 조언이 한 가지 더 있었는데요, 그 내용은 차차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실이었습니다. 뭘 하든 내가 행복해야 했어요. 저 말을 들은 이후로 어떤 선택을 하든 기준이 명확해졌습니다. 올해가 일주일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다시 돌아보게 됩니다.


이번 연도의 저를 돌아보자니 이래저래 정신없던 순간들만 떠오르는데요, 다행스럽게도 큰 일들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어 마음을 가라앉히고 연말을 마무리 지을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계시라도 받은 것처럼 새해가 되었다고 1월 1일부터 내가 다시 태어나는 일 따위는 없겠지만, 그래도 저는 대체로 다가올 미래를 기대하는 편입니다. 하고 싶은 일이 많은 사람이어서요.


한국에서 가끔 정어리 펜넬 파스타를 해 먹을 때마다 친구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친구가 해준 말도요. 무형의 행복을 실제의 혀 위에서 감상을 즐길 수 있는 요리로 엮어낼 수 있다는 건 아주 큰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좀 더 또렷하게 행복이라는 감정을 구현해 낼 수 있거든요. 그러니까 아무래도, 조만간 다시 펜넬을 구매해야겠어요.


ㅇㅇ님의 올해는 어땠나요? ㅇㅇ님에게 다가올 한 해는 정어리 펜넬 파스타처럼 생각지 못했던 새로운 맛과 기쁨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길 바랄게요. 물론 ㅇㅇ님이 행복한 게 가장 중요하다는 당연한 사실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해당 내용은 담파스타 레터의 일부입니다. 원문은 아래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https://dampasta.stibe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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