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시끄러울 땐 무엇을 먼저 해야 할까요? 요 며칠 나라에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저 또한 월요일이면 일주일을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북돋곤 합니다. 지난주를 되돌아 보며 새롭게 다가오는 한 주를 맞곤 하죠. 그래서 제 다이어리의 월요일은 항상 다른 요일에 비해 좀 더 빼곡하곤 합니다. 특히나 지난주는 다른 노트에서 적던 하루의 갈무리를 하나로 합치면서 하루치 할당된 한 칸이 꽉 채워졌습니다. 그렇게 월요일을 알차게 마무리하고, 화요일 새벽에 일어나 하루 계획을 세우며 평소와 같이 시작했습니다. 지난주 목표는 담파스타 초안 쓰기였는데요. 정확히 12월 3일 밤 이후 다이어리는 공란이 되었고, 겨우 멱살을 붙잡아 일주일이 갓 지난 지금 이 밤, 위스키를 홀짝이며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제가 무슨 대단한 공인이나 위인도 아닌데 어렸을 때부터 제 의견을 당당하게 말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 말도 맞고, 이렇게 들으면 저 말도 맞는 것 같은데, 섣불리 의견을 내세웠다가 남들이 수군거릴까 봐 무서웠거든요. 뱉은 말에 책임을 지고 싶은데 그럴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았고요.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스스로에게 가장 편한 말을 이름표처럼 붙이고 다니다 보니 어느새 눌어붙어서 잘 떼지지가 않았습니다.
계기는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꽤나 호불호 확실한 성격으로 살고 있어요. 질기게도 달라붙던 ‘누구에게나 듣기 좋고 맞는 말을 하지만 딱히 날카롭지는 않고 무난하게 의견 없이 묻어가는 사람’이라는 캐릭터가 아무래도 점점 견디지 못하게 부끄러워진 거겠지요. 물론 손바닥 뒤집듯 갑작스레 떵떵거리며 의견을 개진하는 사람까지는 되지 못했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그렇겠죠. 사람이 바뀌는 게 이렇게나 어렵습니다.
다시 3일 밤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일상의 많은 부분을 제쳐두고 뉴스를 숏폼마냥 새로고침하며 눈이 시릴 때까지 새벽을 세웠습니다. 몇 번 울기도 하고, 그보다 많이 분노를 쏟아내다 보니 시간 감각이 사라지는 듯했습니다. 간사하게도 막상 위기가 닥치니까 그간의 일상이 참 안정적으로 느껴지더라고요. 생각해 보면 교통카드 하나 잃어버려도 하루의 능률이 망가지는데, 일상을 영위하게 하는 민주주의를 잃어버린다면 삶이 망가지는 것은 시간문제나 다름없을 거예요.
작금의 사태에 얹어지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에 와닿는 말은 수도 없었습니다만 특히 관통하던 두 가지 말이 있었습니다. 중립은 암묵적 동조라는 말과 각자의 방식으로 함께함이 연대이기 때문에 지치지 않고 일상도 함께 지켜나가야 한다는 말. 전자는 제게 하는 경고와 같았고 후자는 제게 하는 다짐과 같았습니다. 특히나 거꾸로 뒤집어도 옳고 그름이 명확한 사안에는 더욱 부합하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거세게 분노할수록 자신 또한 갉아먹고 시간이 흐르며 휘발되기 쉽습니다. 그렇지만 동시에 세상 고결한 듯 냉소적인 태도 역시 기득권에게 칼을 쥐어 줄 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제 경험에 비춰 보자면, 우선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합니다. 그 후에는 이다음 끼니를 거를 요량으로 아주 든든하게 배를 채웁니다. 그럼 아주 격한 감정에 사로잡히지도 않으면서 조금 더 상황을 끈질기게 잡아 낼 에너지가 생깁니다. 스스로를 먼저 돌봐 주어야 주위를 둘러볼 힘이 나는 법이거든요.
파스타 레터에 외람되지만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저는 지난주 시위에 나가기 전 제가 아는 가장 든든한 음식인 순대국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시위에서 힘차게 소리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처음 접하는 것도 아닙니다만 현장에서 분노가 연대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순간에 몇 번이나 울컥하면서요. 늦은 밤 얼큰한 해물 알탕으로 속을 데우고 나니 그날 밤에는 간만에 푹 잘 수 있었어요.
제가 몇 번이나 겪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자신 있게 의견을 내어 보겠습니다. 나를 돌보기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래야 지치지 않고 함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모르쇠의 태도는 현실을 부정하는 가장 비겁한 방법입니다. 시대를 바꿔가는 대류에 은근슬쩍 편승하는 얍삽한 기회주의일 뿐이에요.
특히나 제 자신에게, 이 두 가지 말은 잊지 않고 새겨 두고자 합니다.
그래서 이번 파스타는 뭐냐구요? 매번 면을 2.5인분씩 삶느라 언제나 한 바가지로 파스타를 만드는 저이지만, 면의 양을 떠나 먹고 나면 든든한 포만감을 선사하는 닭다리 카레 파스타입니다. 프랑스에 있을 때 냉장고에 있던 재료로 대충 만든 냉털 요리였는데요. 유독 이 파스타 먹고 난 후에 배가 오래 불렀던 기억이 있습니다. 잘 구워진 닭고기와 카레가 어우러진 크림소스의 묵직함이 허기짐을 달래주는 느낌이에요. 일을 마치고 장 볼 힘도 없이 집에 왔는데 운 좋게 전에 사다둔 닭다리를 냉장고에서 발견하고 옳다구나 만든 파스타였습니다. 그리고 또, 닭다리를 두 개나 전부 독차지하고 먹을 수 있다는 것 역시 소소하게 나를 위하는 느낌이랄까요. 닭다리를 위한 은근한 쟁탈전이 벌어지는 식탁에서 자란 사람에게 이런 기분은 꽤나 큰 만족감을 주곤 합니다. 든든하게 나를 위한 식사를 마치면 자연스레 잠도 잘 오는데요. 돌이켜 보니 지난주 주말의 제 모습과 겹쳐져 문득 이 파스타가 떠올랐습니다.
이 레터가 도착하는 날은 금요일이니 아마 내일 저는 또 시위에 나갈 것 같습니다. 물론 매일 참석할 수는 없겠지만 어떤 식으로라도 연대할 생각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지치지 않도록 저를 잘 먹이고, 재우고, 돌보려고요. 아무래도 오랜만에 든든하게 닭다리 카레 파스타를 오랜만에 해 먹고 가야겠습니다.
[해당 내용은 담파스타 레터의 일부입니다. 원문은 아래에서 확인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