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담파스타

바질이나 고수나, 다르면 다른 대로

by 알담


얼마 전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을 봤습니다. 공감 가는 여러 명대사 중 가장 마음에 꽂힌 대사가 있었어요.




‘사람들은 자기랑 다르면 그걸 열등하다고 생각해야 마음이 편하거든. 그거야말로 열등감인 줄은 모르고.’



맞아요.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신과 다르다고 여겨지면 경계심을 품거든요. 특정 집단에 속해 있는 구성원이라면 그 감정이 자칫 격해지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열등감은 용기와 자존감의 부족, 그럼에도 주저하는 태도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열등감은 아주 높은 확률로 비교하는 습관을 키우고, 빠져나가기 어려운 악순환을 엮어내지요. 글로 쓰니 산뜻하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만, 길을 걷다 무심결에 돌부리에 걸리는 확률이나 환절기에 감기에 걸리는 빈도만큼 누구나 어렵지 않게 마주할 수 있는 일입니다.


저 역시 당연하게도 열등감에 사로잡힐 때가 잦습니다. 그런데 이 열등감은 아무리 겪고 겪어도 면역이 생기지 않아서 괴롭습니다.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는 그 괴로움을 일부러 온몸에 똘똘 둘러서, 무적의 정신 승리를 하기 전까지는 잠도 못 이루는 나날이 이어지기도 합니다.


여기서 무적의 정신 승리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요. 나를 이렇게 괴롭게 만드는 상대를 공연히 낮춰 그래도 내가 낫다고 자위하는 것과 나는 나라고 되뇌며 고개 돌리지 않고 소위 ‘마이웨이’를 걷는 것입니다. 무엇이 건강한 방법인지는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자명합니다만, 원래 삶이란 게 맘처럼 쉬이 흘러가지지만은 않으니까요.


얽히고 설켜 사는 사회 속에서 나뿐 아니라 남에게도 건강한 관계를 매일같이 유지하기란 마음과 신체의 체력을 끌어다 쓴다 해도 어려운 일입니다. 가끔 불가항력에 의해 어그러지기도 하는 법이거든요. 그럴 때는 더 이상 심각하게 매어 생각하지 말고,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마법의 단어를 써보도록 합시다.


그러니까, 고수 페스토처럼 말이죠. 친구가 기꺼이 손질해 건네준 고수 한 단을 어떻게 먹을까 고민하다가 페스토를 만들었거든요. 바질 페스토를 먹고 싶던 찰나 고수를 받았으니, 고수로 페스토를 만든 거였어요. 고수를 가려 먹지는 않지만 애호가까지는 아니었던지라, 고수를 집에 많이 들이지는 않아서 제 기억에 아마 처음 만든 고수 페스토였을 거예요. 페스토가 있으니 당연히 파스타를 말았죠. 식탁에 올리자 애인이 ‘바질 페스토 파스타야?’ 하더군요.


그렇게 만든 고수 페스토는 고수의 푸릇하고 톡 쏘는 향이 올리브오일과 파르미지아노 치즈에 융화되어 본연의 풋풋함을 부담스럽지 않게 즐길 수 있는 맛이었어요. 쌀국수에 넣어 먹는 고수와는 다른 매력이더라구요. 바질의 플로럴하면서도 버터 같은 풍미와는 확연히 다른 쌉싸래하면서도 까실까실하고 향긋한 맛이 좋았어요.


영화가 인상깊긴 했나 봅니다. 저 대사를 곱씹으니 자연스럽게 고수 페스토 파스타가 떠올랐으니까요. 고수 페스토를 굳이 일부러 찾아 먹자는 틀에 박힌 이야기는 아니고요. 어쩌다 바질이 떨어지면 고수로도 페스토를 만들어 시도해볼 수 있다는 작은 제안에 가깝습니다. 아니면 뭐, 사실 딜로도 페스토를 만들 수도 있는걸요! 물론 각각의 맛은 달라요. 그렇지만 그 나름의 풍미가 있답니다. 그냥 그렇게 다른 맛도 있는 거죠. 인간관계가 너무 무겁다 싶으면 위험부담이 적은, 평소와는 전혀 다른 선택지의 요리를 시도해 보세요. 고수 페스토 파스타를 바질 페스토 파스타보다 자주 먹는 사람들은 뭐가 다를까요? 사실 뭐 그다지 다른 게 없을 거예요. 단순히 취향이 다른 것일 수도 있고, 그냥 바질 페스토가 질렸을 수도 있고요. 그러니까 고수 페스토보다 바질 페스토가 아무래도 더 활용하기 편하다거나,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나누지 말고, 고수 페스토라는 것도 있구나, 이런 선택지도 선택할 수 있구나 하고 가볍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어쩌면 고수 페스토로 내 세상이 살짝 넓어질 수도 있는 거니까요.


[해당 내용은 담파스타 레터의 일부입니다. 원문은 아래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https://dampasta.stibe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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