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오븐 요리에 빠져 있습니다. 원래 토스트 정도만 가능한 본가에서 물려받은 미니 오븐뿐이었는데, 얼마 전에 컨벡션 오븐을 새로 샀거든요. 덕분에 처음으로 마들렌도 구워보고, 오븐값이 아깝지 않도록 다양하게 활용 중이랍니다.
오븐을 사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습니다. 친구가 홈파티 음식으로 커다란 스타우브 꼬꼬떼를 오븐에 넣고 아주 오랫동안 천천히 꼬꼬뱅을 끓이는 모습을 본 이후로요. 열 보존율이 높은 주물 냄비를 오븐에 넣고 그대로 조리해서 응축된 맛이 인상적이었어요. 사실 그런 이유는 둘째 치더라도 어쩐지 가정식 분위기가 풍기는 그 자체의 따뜻한 느낌이 좋았지요.
확실히 불 앞에 서서 직접 조리하는 시간은 줄고, 그저 모든 재료를 와르르 냄비에 부은 후 오븐에 넣으면 그만이라 요리가 간편해졌습니다. 단지 오븐 안에서의 시간만 길게 들이면 될 일이었어요.
주방에서와는 반대로 사실 최근에는 퍽 의욕이 없습니다. 뭘 하긴 하는데 가시적인 성과는 없고, 그렇다고 뭐가 뛰어나게 나아진 것 같지도 않습니다. 원래 성장은 계단식이라지만 제 계단 폭은 넓게만 느껴져 올라가기도 전에 지치는 느낌이 듭니다. 주변을 바꾸고 싶어 발버둥 쳤다고 생각하는데 결국 제자리 뛰기였고 이 이상의 용기는 무리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는데 위축되고, 그렇게 생각에 잠기다 보면 초조해집니다.
시간이 갈수록 돈보다 시간이 아까워지는데 명확하게 잡아둘 방법이 없는 것 같습니다. 불안해하다 보니 그렇게 또 일주일이 가고, 월요일의 다짐은 일요일이 되면 온데간데없습니다.
지친 내 상황을 인정하고 잠깐은 아예 다 놓아버릴 수도 있는 건데, 또 그럴 패기는 없습니다. 의욕에 불탈 땐 다시는 지치지 않을 것처럼 달리면서요. 이쯤 되니 회복탄력성이 떨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듭니다.
그래도 그 와중에 오븐으로 만든 토마토소스를 듬뿍 올린 파스타에 위안을 받습니다. 최근에 저렴하게 구한 토마토로 소스를 잔뜩 끓여 얼려두었는데요. 확실히 시판 소스보다 신선한 풍미가 돕니다. 한 번 소스를 만들어 두면 이다음에는 파스타 면만 삶아 소스만 끼얹으면 되니 식사 준비에도 부담이 없고요.
얼마 전 울적하던 때에도 요리할 힘이 없어 토마토 파스타를 먹었습니다. 마음이 가라앉으면 어쩐지 더 감정적으로 되어버려서, 오븐에서 오래오래 자박하게 끓인 소스를 긁어 먹으면서 이 소스처럼만 일상을 보내자고 스스로 위로했어요. 상황이 뒤집힐 기미도 보이지 않고, 주저앉아 쉴 용기조차 없다면 그냥 최소한의 루틴만 유지하면서 그저 조용히, 끈기 있게 버텨보자고요. 팔팔 끓일 의지가 없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오븐에 그냥 넣어버리자고요. 끓는 소리가 들릴 듯 말 듯 간헐적으로 낮게 터져 나오고, 그렇게 반나절이든 종일이든 견디다 보면 어쩌면 가스불에 끓인 것보다 맛의 결이 더 촘촘해질 수도 있으니까요. 친구 역시 저에게 노잼시기라고 명료한 진단을 내려주었으니, 이대로 조금 더 오븐 안에서 끓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해당 내용은 담파스타 레터의 일부입니다. 원문은 아래에서 확인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