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담파스타

원팬 파스타같은 사이

by 알담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을수록 타인과 나의 관계는 명확해지거나 흐릿해지곤 합니다. 옳고 그름을 따질 필요는 없고 그럴 수도 없겠지만, 아무래도 한정된 에너지를 고르게 분배해야 하기 때문이겠죠. 나를 지키고, 일상을 끌어가야 한다는 인생의 숙제 역시 꼬박꼬박 치러내야 하니까요. 그래서 의도적이든 본능적이든 관계의 관점에서 자신만의 기준이 곧아진다는 사실은 시간이 지날수록 분명하게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저의 경우, ‘친하다’라는 기준이 단일하지 않다는 사실을 꽤나 늦게 깨달은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친분의 스펙트럼은 부챗살처럼 기준점에서 다양한 각도로 넓게 뻗어나가는 모양이며, 그 부챗살 하나하나에서 바람이 일으켜지듯 각각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는 것을요. 그러니까, ‘친구’라는 단어는 정말 넓디넓은 감정과 복잡한 관계가 날실과 씨실처럼 촘촘히 짜여 있는 조직적 용어인 것이죠.


그렇지만 어렸을 때는 그러한 큰 틀 안의 자잘한 관계를 능숙하게 정의하기 매우 어려웠습니다. 아직도 기억이 나요. 20살 때, 아르바이트에서 만나 친해진 친구가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같은 환경에 있고 동갑내기 친구다 보니 붙어있던 시간이 많아 자연스레 단짝처럼 지냈습니다.


저는 항상 친구의 말을 들어주는 입장이었습니다. 제가 의도한 것도, 친구가 부탁한 것도 아니었어요. 자연스러운 관계였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은 친구가 볼멘소리로 이야기했습니다.


“너는 왜 나한테 고민 상담 안 해? 내가 못 미더워?”


시간이 많이 지나 정확한 문장은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 이런 느낌이었어요. 그 말을 들었을 때의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지만요. 꽤 당황해서 얼버무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 게 아니다, 각자의 친함의 느낌이 다른 거고 당연히 너를 믿고 있다. 이런 식으로 어버버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몇 년이 지나 이미 그 친구와도 연락하지 않을 만큼 오랜 시간이 흐르고 계속 입안에 씹히는 모래 같던 친구의 질문이 혀끝에서 닳아버릴 때쯤, 스스로 인정했습니다. 사실 그 친구에게 온전하게 의지하지 않았고 그래서 굳이 제 이야기를 먼저 꺼내지 않았다는 무의식적 행동을요. 분명 좋은 사이였지만 이런 결의 관계도 있다는 사실을요. 좋으면 무조건 좋았고, 싫으면 내내 싫었던 흑백의 관계성에서 새로운 채도의 색을 발견했던 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보자니 어쩌면 친구 관계는 원팬 파스타 같습니다. 한곳에 다 때려 넣고 끓이기만 하면 된다는 간편한 컨셉이지만 사실 본인만 아는 세심함이 어쨌든 필요하거든요. 가령 팬의 가장 아래 물에 잠기는 부분은 가장 늦게 익는 재료를 깔아준다거나, 웍처럼 기울어진 팬이라면 파스타가 고르게 익도록 중간중간 저어주기도 해야 하며, 혹시나 물이 너무 졸아들어 타지 않게 중간에 한 번씩 보고 물을 추가하거나 불을 조절하는 신경도 은은히 써야 합니다. 그렇지만 완성된 원팬 파스타는 어찌 됐든 하나로 어우러진 그야말로 원 팬(One pan)이 되죠. 그 안에 어떤 조리 과정이 들었든 한 가지 요리 도구로 팔팔 끓여내기만 하면 되는, 간단하게 보이는 그런 요리가요.


사실 가볍게 생각하면 한없이 간단하고, 어렵게 꼬자면 수없이 복잡해지는 게 친구 같습니다. 상대를 존중하면서 나를 잃지 않는다면 쉬워요. 그렇지만 거기에 각자가 처한 상황이라든가, 미묘하게 흐르는 감정의 긴장감이 더해지면 가끔 팬 바닥에 어떤 재료는 눌어붙기도 합니다. 겉으로 볼 땐 하나의 요리로 보이겠지만요. 그래도 그 어우러짐이 좋아서, 일상을 윤택하게 만들어줘서 잊지 않고 주기적으로 만들어 먹습니다. 인정할 건 인정하고, 중간중간 잘 섞어도 주면서요.



[해당 내용은 담파스타 레터의 일부입니다. 원문은 아래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https://dampasta.stibe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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