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긴 것 같으면서도 일주일을 돌아보면 짧고, 한 달은 그저 손가락 사이로 흘러가버리는 듯한 감각의 요즘입니다. 뭔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을 습관처럼 떠올리는 사람이라 더 그런 걸까요?
잊을 만하면 몇 년 전의 나라며 알림을 주는 어플 덕분에 전보다 추억팔이를 하는 때가 잦아졌습니다. 찍고 나서 곧바로 잊어버렸던 사진들을 훑다 보니 ‘뭘 이렇게까지 했지?’ 싶은 에피소드들이 불쑥불쑥 떠오르더라고요.
베트남에 혼자 여행 갔을 때 일인데요. 다낭에서 하노이로 넘어가는 공항에서 예상치 못한 수하물 초과 비용으로(정말 미세한 차이라 짐을 빼면 되는 상황이었는데도 막무가내로 돈을 내라고 했던 억울한 상황이었단 말이죠!) 남은 여행 경비의 대부분을 써버렸습니다. 아끼고 아껴서 온 여행에서 항의 한마디 제대로 못 하는 숙맥이었던 저는 결국 하노이 공항에서 시내까지의 셔틀버스 비용을 아끼려고 몇 배는 저렴한 일반 버스를 타기로 했어요. 구글맵 GPS도 잘 안 잡히던 시대에 공항에서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가는 일이 제 생각보다 훨씬 험난한 걸 몰랐으니까요. 원래 목적지인 버스 정류장은 알고 보니 더 이상 운행을 안 하는 곳이었고, 안 되는 영어를 써가며 다른 버스는 어떻게 타야 하는지, 그 정류장은 어디 있는지를 지나가던 몇 명에게 물어보았던지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다 이해하지 못한 길 안내를 되뇌며 걷던 중에 글쎄, 차선도 제대로 표시되지 않은 14차선(이제는 기억이 흐릿하지만 느낌상 20차선이었던 것처럼 정말 드넓은 차로였습니다.) 대로를 가로질러야 하는 상황이 닥쳤습니다. 차들이 왕왕 달리는 도로였던지라 타지에서 사고라도 당할까 봐 20분은 주저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 태연하게 나타나서 산책하듯 길을 건너던 아저씨가 있었고, 부리나케 그분 뒤에 붙어서 사시나무 떨듯 길을 건넜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무모한 무단횡단이었어요.
그런가 하면 프랑스 살 때 지하철 파업이 한창이던 적이 있었는데요, 도저히 출근 시간을 가늠할 수 없어서 한동안 공공 자전거를 타고 다녔었습니다. 아직도 기억나요. 평소와 다르게 비가 억수로 내리던 아침에 우비를 입고 출근하던 중, 생 라자르 역 사거리에서 팔을 뻗어 차에 신호를 보내면서 자전거로 좌회전했던 날이요. 앞이 흐려질 정도로 쏟아붓던 빗속에서 대체 무슨 깡으로 신호등도 없는 자갈돌 사거리 차로를 가로지르면서 자동차 옆을 달릴 생각을 했는지, 정말 출근길 파워라고 밖에 설명되지 않는 순간이었습니다. 무서워서 멈춰버리면 그대로 차에 치일 것 같아 일단 냅다 페달을 굴렸었어요. 막상 그렇게 일터에 도착하니 그때야 긴장이 풀려서 덜덜 떨리더라고요. 정말이지 다시는 그렇게 못할 것 같아요.
한번은 종종 들르는 주말 마켓에서 장을 보다가 양송이버섯 한 박스를 5유로 떨이에 판매하는 걸 보고 덥석 집어 온 적이 있었습니다. 문제는 제가 1인 가구였고, 양송이는 5kg이 넘는 양이었고, 떨이 상품이라 못해도 일주일 안에 먹어야 한다는 점이었죠. 그래서 버섯으로 혼자 해 먹을 수 있는 모든 요리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간단하게는 라면에 넣어 먹는 것부터 양송이수프, 양송이볶음밥 등… 물론 양송이파스타도 있었죠. 버섯을 좋아해서 거침없이 산 건데도 마지막엔 거의 물려서 바닥에 깔려 짓이겨진 양송이는 다 먹지 못했습니다. 장 볼 때 싼 재료가 있으면 일단 쟁이고 그것만 파먹는 버릇은 여전히 고치지 못했지만, 무슨 행사가 있던 것도 아닌데 그렇게 한 번에 많은 버섯을 혼자 먹을 요량으로 산 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어요.
딱히 호기로운 성격이 아닌데도 어떻게든 무모한 용기를 내는 순간들이 제 삶에도 곳곳에 존재했다는 게 가끔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무척이나 신기합니다. 저지르고, 다 수습하지 못할지언정 어떤 식으로라도 엮어나가고. 그런 경험을 했다는 자체가 잔가지처럼 저를 좀 더 촘촘히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그 잔가지가 또 다른 잔가지를 뻗고, 그렇게 술자리에서의 안줏거리가 좀 더 맛있어지는 거겠지요. 이 글을 쓰다 우연히 발견한 문장을 마지막으로 오늘의 편지를 마칩니다.
나중에 인생을 돌아볼 때 ‘젠장, 해 보기라도 할걸’이라고 말하는 것보다는 ‘세상에, 내가 그런 짓도 했다니’라고 말하는 편이 낫다. - 루실 볼 Lucille Ball
[해당 내용은 담파스타 레터의 일부입니다. 원문은 아래에서 확인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