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되었을 때

존재의 번영에 대하여

by 까칠한 펜촉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 ‘에베레스트’의 높이는 해발 8,848.86m이다. 그리고, 그 에베레스트를 받치고 있는 것이 바로 해발 4,000~4,800m의 ‘파미르 고원’이다.


파미르 고원이 있어 에베레스트가 높은 건지, 높은 에베레스트를 만들기 위해 토대가 되는 파미르 고원이 생겼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중요한 사실은 파미르 고원이 없었다면 에베레스트는 평범한 산이었을 것이다.


우리의 삶도 그렇다.


우리의 인생을 받치고 있는 무언가 늘 있다. 가정(가문), 학교(학력과 학벌), 회사(기업가치) 등 이런 사회적 환경이 우리를 떠받치고 있는 토대이다. 이 토대가 굳세고 강건할수록 그 토대 위에 있는 개인은 자신과 집단을 일치시키려는 경향이 있다. 소위 아시아권 나라에서 특징적으로 보이는 집단주의적 성향이다.


이 토대 중 가정은 가장 영구적이면서 개인의 선천적 선택은 불가능하며, 학교의 경우는 대체로 반영구적이고 가정에 비해서는 선택권이 있으나, 직장에 비해서는 선택권을 쥘 수 있는 시간과 범위가 상당히 제한적이다.


이런 혈연, 지연에 비해 상당히 자유로우면서도 반대로 기준과 규율이 엄격한 집단이 회사이다. 개인은 모든 회사를 선망할 수는 있지만 선택할 수는 없고, 회사는 대개 선택권을 쥐고 원하는 인재를 뽑을 때까지 시간과 돈을 투자할 수 있다.


이런 회사는 때론, 가정이나 학교보다 훨씬 더 권능 있는 토대가 되어 주기도 하는데, 대표적으로 회사의 복지제도들이 그렇다. 여름이면 좋은 리조트를 싼 값에 예약할 수 있거나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때도 ‘대기업’ 자가 ‘중소기업’보다는 훨씬 효용성이 있어 보인다. 그리고, 소개팅을 나가서도 듣도 보도 못한 회사를 다니는 것보다 이름 몇 자대면 대부분 알만 한 회사를 다니는 게 매력 어필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다. 어떤 이들에게는 자신이 다니는 회사 그 자체가 권능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 권능은 한계 효력이 있다. 그 회사에 다니는 동안만큼만 쓸 수 있다. 물론, 이직을 하여 다른 권능을 얻을 수도 있다. 더 큰 권능을 한시적으로는 가질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한시적이라는 제한을 둔 것처럼(그 이유를 모르면 이 글을 읽지 마시고) 약발은 언제까지나 그 회사 명함을 갖고 다닐 때까지이며, 가정(가문)이나 학교(학력/학벌)처럼 영구적이거나 반영구적으로 자기소개에 넣을 수 없다.




어느 날, 어떤 이유로 개인은 ‘회사’라는 토대와 권능을 잃는다.


그리고, 잠시라도 혼자가 된다.


나를 포함하여 이런 류의 경험을 한 많은 사람들을 되새겨 보면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 첫 번째는 상실감과 수치심, 죄책감 같은 부정적인 생각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이런 류의 사람들은 100% 토대와 권능을 잃은 원인을 나 아닌 다른 사람으로 돌리게 된다. 두 번째 부류는 침잠(沈潛)에 빠지는 경우다. 특히, 고위 직급에 있었던 분들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성향이다. 모든 일이 그렇게 흘러갈 수밖에 없었음을 인정한다. 선배들로부터 그런 학습과 간접 경험이 되어 있기 때문이고 그 이후에 대한 생각도 분명하진 않지만 계획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어쨌든 혼자가 되면 외롭고 힘든 건 인지상정이다.

혼자되었을 때, 비롯서 보이는 게 있다.
홀로 된 자신의 모습이다.


혼자가 되었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세상에게 손을 흔들며 구조 신호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홀로 된 자신을 돌보는 것이다.


홀로 된 나와 함께 했던 몇 가지 기록이다.




홀로 된 자신을 돌보기 위한


첫 번째는 고립이다. (Isolation)
어디 산골짜기에 들어가자는 게 아니다. 자신을 올바로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 여러 훼방꾼들로부터 떨어지라는 얘기다. TV도 유튜브도 게임도 마찬가지고 미친 듯이 그리운 친구들에게서도 떨어져야 한다.


두 번째는 대화와 기록이다. (Conversation & Documentation)
서로 마주 보고 이야기를 주고받으라는 의미다. 무턱대고 잡담을 하라는 게 아니다. 인터뷰를 하듯 필요한 질문 리스트를 작성해서 나에 대해 묻는다. ‘좋아하는 것, 원하는 것, 되고 싶은 것’ 이런 것들과 ‘나의 가치관, 나의 장/단점, 나의 특징, 나의 부차적인 정보(노래방 18번까지)’들을 적는다.


세 번째는 질문과 보완이다. (Questioning & Feedback)
기록한 것들이 맞는지 피드백하고 조율한다. 그리고, 작성한 것 중에 나의 장/단점과 특징에 대해서는 ‘좋아하는 것, 원하는 것, 되고 싶은 것’의 관점에서 재정리해 본다.


네 번째는 우선순위 정렬이다. (Priority Alignment)
대화와 기록을 통해 남겨놓은 건 나에 대한 메타 데이터(Meta Data)이다. 메타 데이터는 내가 나에게 얼마나 무지한 지를 정리해 놓은 데이터이다. (메타인지는 별도로 자세히 다루려 한다.). 이번 단계에서의 핵심은 ‘좋아하는 것, 원하는 것, 되고 싶은 것’의 우선순위 나열인데 ‘좋아하는 것’부터 작성을 하면 ‘되고 싶은 것’에 매칭하지 않거나, ‘되고 싶은 것’이 될 수 없는 현상을 발견할 것이고, ‘되고 싶은 것'을 먼저 작성하면 '원하는 것' 일부와 '좋아하는 것'의 많은 부분을 삭제해야 하는 현상도 마주할 것이다. (**이 부분은 사실, 삶의 균형과 관련된 이야기다. ‘좋아하는 것, 원하는 것, 되고 싶은 것’ 사이에 절묘한 상관관계가 있다면 너무나도 좋겠지만, 그런 어디까지나 'flow' 수준에 도달한 분들이나 가능할 것 같다. 행복심리학을 다루는 학자들은 '좋아하는 것'을 원초적인 행복의 1단계로 바라보기 때문에, '되고 싶은 것' 만을 위해 자신의 욕망을 지나치게 통제하면 일상의 행복을 느끼기 어렵게 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 세 가지 사이의 균형이 정말로 중요하다.)


다섯 번 째는 행동과 변화관리이다. (Action & Change Management)

예상했겠지만, 마지막은 행동이다. 위에 네 가지 모두, 행동이 전제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모든 것은 이 행동을 위한 빌드업 과정일 뿐이다. 행동은 따로 기준이 없다. 실천 여부와 목표 달성 여부만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행동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변화관리이다. 변화관리는 경영기획에서 흔히 쓰는 방법론 중 하나로 전략의 실행 후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전략을 조정하고 최적화(Adjustment & Optimization)하는 단계이다. 이 변화관리를 통해 보다 솔직하고 꾸밈없는 나와의 대화를 지속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번 글은 혼자된 40대 이상의 직장인들을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생각하며 썼다.


내 나름대로 몇 달간 ‘혼자되는 과정’을 연습하여 몇 자 적은 것이지만, 심리학 서적과 사회학 서적을 보며 나름 느낀 바를 정리하였기에 언 듯 보면 비슷한 얘기도 있을 것이다.


이 글은 어떤 과정에 대한 벤치마킹과 자기 수양의 방법을 공유하자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40대 이상의 직장인이 토대와 권능을 잃었을 때는 이미 커리어의 전환기에 접어들었음을 반드시 인식해야 하고, 소위 인생의 2막이란 것을 빌드 업 하기 위해 어떤 인식과 준비가 필요한 지 공감대를 모아 봤으면 하는 마음에서 작성했다.




40대 이상은 이제 커리어의 전환기에 접어 들었다.


내가 원한다고 해서 내 직무를 계속 이어갈 수 없는 그런 처지에 들어섰다는 말이다. 때문에 고등학교 때 문/이과를 나누고 대학 시절 사회생활을 준비하 듯 인생 2막을 준비해야 한다. 이는 인생의 2막에도 우리의 현재 직업과 직무를 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하긴 어렵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유럽은 가능하겠지만, 그만큼 유창하게 외국어를 공부하는 것보다 인생 2막을 위한 새로운 기술 연마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필자이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건 대학이나 인생 1막의 직업은 100% 계획한 대로 이뤄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은데, 이건 ‘점수에 맞춰서 대학을 가고, 되는대로 직업을 선택한 결과이기도 하겠지만…’ 어쨌든, 인생 2막의 직업은 거의 100% 내 의지로 선택하고 계획하는 게 좋다. 이미 1막의 인생을 살아봤기에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잘 알뿐 아니라, 2막이 경우도 사실 우리가 살았던 혹은 살고 있는 1막의 인생에 연장선에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나는 1막의 인생을 살아가면서 2막의 인생을 준비해야 하고, 어떤 지점에서는 1막과 2막의 인생이 중첩되어 가다 자연스럽게 2막으로 넘어갈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일대학교의 심리학자 퍼트리샤 린빌(Patricia Linville)은 한 사람의 자기 이미지가 여러 개일수록 그 사람이 어떤 일에 성공하거나 실패하더라도 그에 따라 행복이 좌우될 가능성은 매우 적어진다고 했다.


소위, 자아복잡성(Self-Complexity)에 대한 연구 결과인데, 거창하게 들리지만 나는 “What is your another job 혹은 What is your next job that will make you joyful and happy”라는 얘기이다.




현재의 내 직업과 직무가 언제까지 유효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지금의 직업보다 새로운 직업이 더욱 기대된다. 그리고, 완벽히 2막의 커튼이 새로 올랐을 때도 여전히 나는 ‘내 삶의 정체성’을 스스로 결정하고, 여러 가지 모습의 의미 있는 직업인으로서 삶을 살아가고 싶다. 진심으로 간절하게.


Like me?, Like me! 는 지속적으로 나를 알아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때론 종교, 철학, 사회, 심리학적으로 때로는 진화, 생물, 화학, 물리학적으로…


인생의 중대한 변곡점에서 늘 상 ‘나는 뭐 하는 인간인가…’라는 질문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런 성찰의 순간에 작성했었던 많은 글들이 기록으로 남겨져 있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부터는 그 순간들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기록하여 남기기로 했다.


그 기록물과 생각도 계속해서 연재해 나가겠다.


오늘도 당신의 삶이 헛되지 않고, 내일이 늘 기대되는 당신이 되길 진심으로 기원하다.



- 까칠한 펜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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