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번영에 대하여
지인을 도와 'O2O 기업이사 플랫폼' 사업을 준비할 때였다.
모기업은 매해 신년이 되면 회사의 경영 방침을 4사 성어로 정했는데, 2020년의 경영 방침은 각자도생(各自圖生)이었다. 자회사 출범과 신사업을 준비하는 입장에서 각자도생이라는 말은 생경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두렵게 느껴졌다.
각자도생(各自圖生), 제각기 살아나갈 방도를 꾀함
왜 나는 각자도생이 두렵고 어렵게 느껴졌을까?
자립은 스스로의 힘으로 삶을 살아가는 능력이란 의미가 있다. 이런 이유로 우리가 자립을 얘기하면 보통 경제적 자립 한 가지만 떠올리는 경우가 많은데, 실은 경제적인 것 외에도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교육적, 정치적 자립 등 자립은 여러 형태를 띤다.
자립과 유사한 의미로 독립(獨立)이 있다.
독립은 외부 간섭 없이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상태와 결과'를 의미하고 개인뿐 아니라 국가, 조직 등의 홀로 선 상태를 포괄하기에 자립보다는 보다 넓은 의미를 갖는다. 굳이 구분하면 자립은 '상태와 결과보다는 과정과 지향점'의 속성을 더 갖는다고 볼 수 있겠다.
과정과 지향점이란 의미에서 자립은 생의 과정 동안 '신체적, 교육적,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정신적인 자립'이 점진적으로 이뤄진다. 우선, 신체적인 자립의 경우, 양육자의 보살핌 없이도 서고 걷고 달리는 의사결정을 스스로 할 수 있을 때부터 자립하였다고 볼 수 있고 교육의 자립은 학습 능력과 정보 습득 능력을 갖추게 되어 스스로 지식을 습득하고 목표를 설정하는 청소년기에 이뤄지는 것으로 본다.
앞선 신체적 자립과 교육적 자립은 엄밀히 말하면 본인의 노력 없이도 인간의 본능과 사회적 지원에 따라 자연스럽게 이뤄지기 때문에 주관적인 의지를 강조하는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정신적 자립'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따라서,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정신적 자립'에는 개인의 주관적인 가치관과 그에 따른 노력, 역량 등이 수반되는 것을 전제한다.
자립의 반대를 누군가 혹은 어딘가에 의존하고 의지하는 상태이거나, 대중 혹은 타인의 의견과 시선으로 인해 자신만의 의사결정을 올바르게 하지 못하는 상태라고 전제가 하는 것이 옳다면 사람에 따라서는 완벽한 자립을 경험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도 틀리지 않는다.
그래서, 자립은 생각보다 낯설고 어려우며 경험하지 못한 미지의 세상일 수 있다.
언젠가는 잘리고, 회사는 망하고, 누구나 죽는다.
언젠가, 누군가의 SNS에서 이런 글귀를 본 적이 있다.
글귀를 보고는 무릎을 딱 쳤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당연하기에 입 밖으로 힘줘 말하지 않는 얘기들.
나는 이 글귀를 보고는 '자립'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었다.
이 글귀에서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의지하거나 의존하는 두 가지 존재의 소멸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하나는 부모이고, 또 다른 하나는 회사이다.
먼저, 부모는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정신적 자립'에 가장 많은 영향을 주는 존재다. 우리가 갖게 되는 초기 가치관이나 사상, 이데올로기, 신념, 종교적 관념 등은 부모가 어느 정도로 주지(主旨) 시켰느냐에 따라 상당한 영향을 받는다. 또한, 경제적 자립에 있어서도 부모의 재력은 자녀에게 큰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부모가 양육과 교육에 대한 가치관이 어떠하냐에 따라 자녀의 자립력(力)이 어느 정도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럼, 회사는 어떨까?
회사는 경제적 자립에 있어 가장 중요한 존재이면서 여러가지 양면성을 갖는다. 부모의 경제적 지원으로부터 자립할 수 있게 해 주는 반면 회사의 급여(월급과 보너스)로 개인을 꽁꽁 속박하고 직업에 대한 안정성을 제공하면서 동시에 언제 짤릴 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주기도 한다.
우리는 가정이라는 가장 작은 사회, 직장이라는 가장 보편적인 사회의 구성원으로 그들에게 의존하고 의지한다. 그리고 동시에 부모의 간섭과 회사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싶다. 그런데, 문제는 자유롭고는 싶은데 스스로 자립할 만한 힘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어쩌다가 세월은 흘러, 앞선 인용구와 같이 회사와 부모란 존재가 소멸되거나, 내가 회사에서 잘리면 나는 자립력(力)을 채 갖추지도 못한 채 다시 의존하고 의지할 곳을 찾는 고아가 되어 버린다. 이 고아란 의미는 경제적인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경제력을 갖춘 이들조차도 정신적, 사회적, 정치적으로 자립하지 못하여 어중이떠중이를 쫓아 결국은 자신의 경제력을 송두리째 갖다 받치는 자들도 있으니.
이런, 의미에서 자신의 존재를 자신의 주관과 의지로 번영코자 한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당연한 과제는 '자립'이다.
나는 자립했는가?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했다. 그래서, 자립력(力)을 기르려 애쓰며 노력하고 있다.
다행히, 성인으로서 신체적, 교육적, 정치적 자립은 어느 정도 되어 있는 듯하다. 그런데 문제는 사회적, 정신적 그리고, 경제적 자립은 아직 미숙한 상태로 남아 있다.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 글을 쓴다.
물론, 경제적인 자립에 있어서는 많은 변수가 있고 스스로 컨트롤하기 어려운 부분은 있지만 먼저 사회적, 정신적 자립을 목표로 여러 실험과 탐구를 한다.
이에 앞서 연재한
<혼자되었을 때>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 혼자되는 과정'
<삶의 해상도를 높여라> '자기 인식표 만들기'
<나와 당신, 우리 인생의 서사(Narrative)> 나만의 서사, 스토리 만들기(미래 지향)
의 정리를 통해 사회적, 정신적 자립의 방법을 찾고 연습하고 있다.
'자립의 시간은 언제일까?'
나는 완벽한 자립의 시작을 2029년 1월, 내 나이가 56세가 되는 해로 정했다.
그리고, 자립하여 어떤 삶을 살 것인지에 대한 것도 정했고, 지금은 그 자립으로 가는 과정이다.
그래서, 자립은 지향점이고 과정이며, 완벽한 모습을 갖출 수는 있지만 완전히 완성할 수는 없다.
완벽한 자립의 모습을 그리고(Visioning), 그 지향점(Goal)을 정했을 때, 나는 새로운 해방감과 자유로움을 느꼈다. 그래서, 어쩌면 자립은 그 상태에 있기보다는 어떤 시점에 달성할 지향점으로 두고 꾸준히 변화, 발전하는 과정을 즐기는 여유를 갖춰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완벽한 자립을 원한다면, 먼저 완벽한 자립을 했을 때 당신의 모습을 그려보길 바란다.
- 까칠한 펜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