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 Ethnology of Malay World Museum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중심부에 위치한 국립박물관(Muzium Negara) 옆에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두 개의 위성 박물관이 위치해 있다. 첫 번째는 말레이 민족학 박물관(Ethnology of the Malay World Museum). 이름 그대로 말레이 세계의 민속과 생활양식을 주제로 한 박물관으로, 말레이시아 뿐만 아니라 인도네시아, 브루나이, 싱가포르, 필리핀 남부 등 말레이 문화권 전반의 민족지학적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두 번째는 오랑 아슬리 공예 박물관(Orang Asli Crafts Museum). 말레이 반도의 토착 원주민인 오랑 아슬리의 전통 공예와 생활상을 소개하는 전시관이다.
개인적으로는 국립박물관보다도 더 흥미 있었던 두 박물관을 다녀온 기억을 남겨본다. 특히 민족학 박물관에서 접한 말레이 민족의 전통 민속놀이 전시는 예상외의 발견이라 더 기억에 남는다.
✔️ 말레이 민속놀이가 한국의 전통놀이와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는 사실에서 한국과 동남아시아 간의 연결고리를 상상해본다.
✔️ 명칭: Ethnology of the Malay World Museum (말레이어: Muzium Etnologi Dunia Melayu)
✔️ 홈페이지: http://www.jmm.gov.my/en/museum/malay-world-ethnology-museum
✔️ 주소: https://maps.app.goo.gl/4iR6diJzZ3nZaRvRA
✔️ 명칭: Orang Asli Crafts Museum (말레이어: Muzium Seni Kraf Orang Asli)
✔️ 홈페이지: http://www.jmm.gov.my/ms/muzium/muzium-seni-kraf-orang-asli
✔️ 주소: https://maps.app.goo.gl/K3gnGhfX6QqwwoY68
박물관의 공간은 비교적 작았지만, 말레이 세계의 생활양식, 신앙, 의례, 복식, 놀이문화 등 다양한 범주의 민속 콘텐츠를 종합적으로 소개하고 있는 곳이었다. 그들의 전통문화를 느껴볼 수 있는 계기는 되었지만 다소 진부하다는 느낌을 받을 무렵, 너무나 눈길을 사로잡는 전시물들이 있었다. 바로 민속놀이였다. 그들의 민속놀이였지만, 내가 어릴 적 하던 놀이들과 너무 비슷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놀이는 어린 시절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보편적 언어인지라 그 앞에서 한참을 관찰했다. 내가 했던 놀이가 한국의 민속놀이가 아니라 아시아 민속놀이였던가 하는 궁금증을 가진채 말이다.
1) Gasing vs. 팽이치기
Gasing은 말레이시아 전역에서 행해지는 대표적인 전통놀이로, 나무나 금속으로 만든 팽이를 돌려 가장 오래 회전시키는 사람이 승리한다. 보통 줄을 팽이에 감은 뒤 땅바닥에 힘차게 던지며 회전시키고, 일정 시간 동안 회전하는 동안 심판이 시간을 측정한다. 우리의 팽이치기와 다를 바가 없다.
또한 Gasing은 단순한 놀이만이 아니라 의례적 성격도 갖는다고 한다. 일부 지역에서는 풍년을 기원하는 농경의식이나 결혼의식 전후로 팽이를 돌리는 전통이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 정월 대보름에 팽이를 돌리며 ‘액운을 날린다’는 민속적 의미까지도 비슷하지 아니한가?
2) Galah Panjang vs. 오징어놀이
Galah Panjang은 두 팀이 직사각형 형태의 격자 공간에서 일정한 선을 기준으로 수비와 공격을 나누고, 공격팀이 수비팀에게 잡히지 않고 선을 건너 목표 지점에 도달하면 이기는 게임이다. 보통 바닥에 선을 긋거나 고무줄을 이용해 구역을 만들며, 수비팀은 각 선에 고정된 역할로 배치된다. 이것은 우리의 오징어놀이와 매우 흡사하다.
3) Batu Seremban vs. 공기놀이
Batu Seremban은 작고 가벼운 조약돌(또는 천에 콩을 넣은 주머니)을 5개 사용하여 손등과 손바닥을 번갈아가며 던지고 받는 놀이이다. 우리의 공기놀이와 거의 완벽히 동일하다. 현재의 플라스틱 공깃돌 전에 우리도 조약돌을 주워 직접 사용했고, 공깃돌 하나부터 다섯까지 난이도가 높아지는 규칙, 손의 움직임, 점수 계산 방식까지 매우 유사하다.
4) Konda Kondi vs. 자치기
Konda Kondi는 두 개의 나무 막대를 사용하는 놀이로, 짧은 막대를 땅에 올려두고 긴 막대로 튕겨 멀리 날린 뒤, 거리를 측정하거나 상대방이 막대를 잡으면 교체되는 형식의 게임이다. 경기자는 상대가 튕긴 막대를 잡으면 승리하며, 못 잡을 경우 거리 측정에 따라 점수를 계산한다. 한국의 자치기는 거리를 측정하는 방식이라면, 말레이시아에서는 상대방의 막대를 잡는 방식을 병행하고 있을 뿐 우리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우리는 한국사 교과서를 통해 동남아시아와 교류가 있었다는 사실을 거의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처럼 민속놀이가 비슷하다는 점은 놀라움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우연일 수는 없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적지 않은 교류가 이어져 왔음이 분명해 보인다. 신라 때부터 페르시아와 교역의 역사가 있는데, 동남아시아와는 교류가 없었다고 단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의 연결고리를 통해 과거에 어떤 사실이 있었을지 추정해 보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즉 현재와 과거가 대화해 풀어낼 수 있는 좋은 역사적 주제이지 않을까 싶다. 또 다른 박물관에서 이 연결고리를 발견해 보고 싶어졌다.
원주민을 기억하다: Orang Asli Crafts Museum
민족학 박물관을 나와 바로 옆에 있는 오랑 아슬리 공예 박물관에 들렀다. 오랑 아슬리는 말레이시아 토착 원주민을 의미하는 말로, 그들의 전통 공예를 중심으로 박물관이 구성되어 있다. 사람인지, 동물인지, 외계인인지 알 수 없는 스타일로 조각된 나무 공예품의 독특함에 우선 눈에 들어왔다. 또한 우리의 하회탈처럼 다양한 표정을 가진 가면도 눈길을 사로잡았다. 짓궂게 생긴 가면도, 공포스럽게 생긴 가면도 있는데 이는 축제 또는 의식의 목적에 따라 제작된 것이라 한다. 말레이시아 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되어 있다.
이 공예품보다 더 인상 깊었던 것은 말레이 반도에 남아있는 원주민 현황과 그들에 대한 설명이었다.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현재의 말레이족이 당연히 원주민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선입견 때문이었다. 왜인지 Orang Asli를 말레이족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디에나 있는 소수민족의 다양성을 감안하지 못한 무지를 또 탓해본다.
2024년 기준으로 Orang Asli는 약 21~22만 명 있다. 말레이시아 전체 국민의 0.7% 정도이다. 크게 3개 그룹(Negrito, Senoi, Proto-malay)으로 구분되고 총 18개의 소수민족으로 나뉜다. Orang Asli의 현대화 및 동화 정책을 추진하는 부처를 별도로 두어 관리하고 있지만, 이들 역시도 여타 소수민족과 같이 언어 및 문화 단절과 정체성 상실 등을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이 박물관은 규모도 매우 작지만 Orang Asli의 문화를 제대로 알기 어려울 정도로 설명도 부실했다. 그러다 보니 원주민의 공예와 문화가 현재도 이어지고 있는지, 아니면 이미 단절된 과거인지도 잘 알기 어려웠다. 단순히 기억해야 할 공간으로 남겨둔 것 같은 아쉬움이 들었다. 바로 직전 방문한 민족학 박물관은 지금도 살아 있는 문화의 연속성을 보여주다 보니 더 대조되었던 것 같다. 호주에서도 원주민 애보리진(Aborigin)의 작품을 문화적 연속성도, 주제적 연관성도 없이 의무감으로 여기저기 박물관에 전시하는데, 이것과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들의 문화를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그 문화를 앞으로 어떻게 보존할지는 박물관에 쏟은 정성에서도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