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4. [수원] 국립지도박물관
미국 트럼프 정부와의 관세 협상에서 다시 한번 화두에 오른 분야가 있다. 한국에 방문하는 외국인 입장에서 구글맵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어 불편하기 때문에 구글(Google)은 고정밀 지도 데이터 반출을 한국에 요구해 왔고, 우리 정부는 분단국가라는 특수성, 즉 안보 문제를 이유로 이를 거부해 왔다는 점이다. 주요국 가운데 고정밀 지도 데이터를 구글에 제공하지 않는 국가는 중국과 이스라엘, 그리고 한국 정도라고 한다. 나 역시 해외여행 시 구글맵을 너무 잘 활용하고 있고, 국내에서도 정말 다양한 정보를 지도를 통해 얻고 있기 때문에, 한국에 방문하는 외국인을 생각하면 우리도 어느 시점에는 반출범위를 넓혀야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교통 외에도 지도는 정치, 경제, 국방 등 그 어느 분야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 곳이 없는 중요한 데이터이기 때문에 우리의 실리를 잃지 않는 방향이어야 함은 분명한 것 같다.
박물관을 취미로 삼고 있는 나에게 이 이슈는 지도에 관한 박물관도 있을지 궁금증을 던져주었다. 국토지리정보원에서 지도박물관을 운영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수원시 영통구에 위치한 국립지도박물관에 다녀왔다.
✔️ 서양 고지도 속 ‘섬 조선’에서 ‘반도 조선’으로의 변천과,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서 대동여지도로 이어진 한국 지도사를 국립지도박물관에서 짚는다.
✔️ 명칭: 국립지도박물관
✔️ 홈페이지: https://www.ngii.go.kr/kor/content.do?sq=218 (국토지리정보원 홈페이지)
✔️ 주소: https://maps.app.goo.gl/NB5vHLCFEkrBHix68
섬나라 조선? 15세기부터 시작된 대항해시대 이후에나 한국은 서양사에 등장하기 시작한다. 박물관에서 확인할 수 있는 지도 중 한국이 처음 등장한 지도는 포르투갈 출신 지도 제작자 루이스 테이세이라(Luis Teixeira)의 일본 지도이다. 1595년 제작된 이 지도에서 조선은 중국과 일본 사이에 위치한 섬으로 그려져 있다. 일본 지도를 제작할 목적이었기 때문에 조선에 대한 정보를 일본에서 수집된 정보에만 기반했기 때문이다. 1626년 제작된 영국의 지도 제작자 존 스피드(John Speed)의 지도에서도 마찬가지로 조선은 섬으로 그려져 있다. 심지어 형태도 너무 다른데, 오히려 러시아의 캄차카 반도와 비슷하다. 그러나 두 지도 모두 COREA라는 표기는 분명하게 나타나 있어 서양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 국가로서 인식은 분명하게 되어 있었다.
포르투갈인 판 린스호턴(van Linschoten)의 항해일지(1596)에서 조선은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일본의 약간 위쪽, 중국 해안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북위 34도에서 35도 정도에 코레(Core)라 불리는 또 다른 큰 섬이 있으며, 현재까지 그곳의 크기나 사람들, 무엇을 교역하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알려진 것이 없다."
반도국가 조선. 오래 지나지 않아 조선을 반도 국가로 그린 지도들이 등장한다. 네덜란드의 지도 제작자 헨리쿠스 혼디우스(Henricus Hondius)가 아시아 지도(1641년으로 추정)를 제작하면서 조선을 반도로 그렸고, 이탈리아 선교사인 마르티노 마르티니(Martino Martini)도 1655년 조선을 섬이 아닌 반도로 제작하였다. 마르티니는 중국에서 조선의 정보와 지도를 접했고 중국 지도첩에서 본 대로 조선을 긴 반도 형태로 그렸다고 한다. 그러나 지도에 나타난 조선의 모습은 우리가 알고 있는 한반도의 지형과 전혀 다르다. 단순히 길쭉하게 표현되어 있을 뿐이다. 17세기 중반까지도 조선이란 국가는 서양인들에게 미지의 국가였던 듯하다.
1653년 조선에 표류한 네덜란드인 하멜(Hendrik Hamel)의 '하멜 표류기'는 서양에 조선을 선명하게 새겨 넣은 분기점이 되었다. 1653년 바타비아(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를 출발해 일본 나가사키로 가던 하멜은 풍랑을 만나 제주도(서귀포로 추정)에 표류하였고, 13년 20일간 조선에 억류되면서 그는 조선에서의 생활상을 기록에 남겼다. 그의 기록은 1668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하멜 표류기'라는 이름으로 출간되어 미지의 국가 조선을 유럽에 소개했고,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그는 조선의 지리적 위치에 대해 "북위 34.5~44도 사이에 위치하며, 남북의 길이는 약 140~150마일, 동서의 너비는 약 70~75마일에 달한다."라고 말해 기존 지도에 비해 비교적 정확히 소개하였다. 하멜 이후, 서양의 지도에서 조선은 대륙과 연결된 반도로 분명하게 표기되었다. 그러나 반도의 모양은 정확하지 않았다. 1700년 제작된 기욤 드릴(G. de L'isle)의 아시아 지도에서는 길쭉한 직사각형 형태이고, 1729년 제작된 허먼 몰(Herman Moll)의 중국 제국과 일본 섬 지도에서는 뭉툭한 사각형 모양으로 나타나 있다. 그러나 허먼 몰의 지도에서 현재 동해에 'Sea of Corea'라 기재되어 있다는 점은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남긴다.
현재의 한반도 형태. 그럼에도 조선을 정확하게 그리려는 시도는 계속되었는데, 1737년 프랑스의 지도 제작자 당빌(D'Anville)은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조선을 현재 한반도와 유사한 형태로 그렸다. 서양 최초로 그려진 한반도 전도이다. 여기서 한반도 서쪽은 황해(Hoang Hai)로, 동해는 따로 표기하지 않았지만 동해안 해변에 울릉도(Fan-ling-lao)와 독도(Tchian-chan-lao)를 명확히 표기하여 조선의 영토임을 나타내고 있다. 더욱이 두만강과 압록강보다 위쪽을 중국과의 경계로 그리고 있어 간도가 우리 영토였음을 보여주는 근거로도 활용되고 있다. 당빌의 지도 이후, 1751년 제작된 보공디(Vaugondy)의 중국제국도에서도 한반도는 동일한 형태로 그려졌고, COREE라는 국호로 표기되어 있다.
우리의 지도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두 가지가 있다. 가장 유명한 대동여지도와 우리가 그린 첫 세계지도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이다. 먼저 1402년(태종 2년)에 제작된 세계지도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이다. 대사성 권근, 좌의정 김사형, 우의정 이무, 검상 이회 등 4명이 만든 이 지도는 중국과 일본의 여러 지도를 바탕으로 제작된 것으로, 동아시아 지도 중에서는 최초로 유럽과 아프리카가 등장한다. 각 나라의 이름과 수도의 위치, 주요 지명을 표시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와 중국의 지리정보가 상세히 표기되어 있다. 가로 158cm, 세로 168cm로 당시로서는 매우 큰 크기로 제작되었으며, 지도의 중앙에는 중국이 위치하고 그 옆에 조선이 자리하여 세계 중심을 중국으로 보는 세계관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혼일(混一)이란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화(華)와 주변의 오랑캐인 이(夷)를 하나로 아우른다는 혼연일체의 뜻이고, 강리(疆理)란 변두리 지경을 다스린다는 뜻이다. 그리고 역대국도(歷代國都)란 알아야 할 역대 왕조와 다스려야 할 세계를 말하는 것으로 종합해 보면 중국을 중심으로 한 전 세계 역사지도라는 뜻이다.
이 지도의 원본은 일본 료코쿠대학에 소장되어 있고, 모사본만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국립지도박물관에 있는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도 복사본이었다. 임진왜란 때 일본이 약탈했다는 주장이 존재하지만 명확한 근거가 없고, 유네스코의 '문화재의 불법적인 반출입 및 소유권 양도의 금지와 예방 수단에 관한 협약'(1970)에서도 소급 적용은 불가하기 때문에 반환받을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기만 했다.
다음으로 누구나 알고 있는 고산자 김정호(古山子 金正浩)의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이다. 박물관에 들어서자마자 로비에 걸린 대동여지도를 볼 수 있다. 김정호는 조선 후기 나라와 백성을 위한 지도 제작에 뜻을 두었던 실학자이자 지리학자이다. 1834년 그는 전국의 축적을 동일하게 적용한 전국지도인 청구도(靑丘圖)를 편찬하였는데, 이 청구도는 가로 462cm, 세로 870cm로 현존하는 가장 큰 고지도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동여지도는 이 청구도를 대폭 보완한 것으로 1861년 목판본으로 완성하였다. 전체 목판은 126매이고, 면 수는 227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국내외에 30여 점이 소장되어 있으며, 목판본, 필사본 등 다양한 형태로 전해지고 있다.
대동여지도가 높이 평가받는 이유에 대해서 박물관은 다음과 같은 특색을 설명한다.
1. 목판본으로 만들어 필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류를 막을 수 있었고, 대량 생산의 길을 터 놓았다.
2. 지도표를 사용하여 지도의 주기 내용을 간결화하고 고지도를 근대화시켰다.
3. 분합이 자유롭게 22첩으로 만들어 상하를 연결하면 도별지도도 되고, 전부를 연결하면 전국지도가 되도록 제작하여 이용하기 편리하도록 하였으며, 접으면 책 크기만 하여 휴대하고 다니기에 편하도록 제작하였다.
4. 전통적인 고지도 제작양식인 배수(裵秀; 중국 진(晉)나라 지도 제작자)의 제도육체(製圖六體; 축척, 방위, 거리, 고하, 각도, 지형 등)와 방안도법을 이용하였으며, 확대축소할 때에는 서양의 과학기술을 가미하여 고지도의 정확성을 기하였다.
5. 다른 어느 고지도보다 주기 내용이 많아 풍부한 정보량을 담고 있다.
6. 10리마다 점을 찍어 여행할 때 이정(里程)을 쉽게 알 수 있도록 하였다.
김정호는 각 고장의 정치, 경제, 문화, 지형 등 지역의 특성을 종합적으로 기술한 지리지 편찬에도 힘썼다. 지리지(地理誌)는 특정 지역에 대한 자연환경, 사회, 역사, 문화 등 다양한 측면을 체계적으로 기록한 책이다. 그는 국토정보를 효율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도와 함께 지리지도 이용해야 한다는 신념이 있었는데, 지도는 한눈에 이미지로 파악할 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지만 정보를 수록하는데 한계가 있고, 지리지는 많은 정보를 체계적으로 수록할 수 있지만 한눈에 이해할 수 없는 단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호는 동여도지(東輿圖志), 여도비지(輿圖備志), 대동지지(大東地志) 등의 지리지를 편찬하였다. 동여도지는 호구, 전세, 군진, 성곽, 군병, 창고, 곡식, 봉수, 역참, 역원, 진도, 교량, 목장 등 42개 항목을 자세히 조사하여 기록한 것이며, 여도비지는 전국 각 군현의 경도와 위도를 기록해 놓은 유일한 책이다. 대동지지는 대동여지도와 함께 이용할 수 있도록 편찬된 지리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