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을 위한 바른 소리, 훈맹정음

#017. [인천] 국립세계문자박물관_1편

by Muse u mad

자랑스러운 한글 보유국의 자부심이 근간에 있어서일까, 우리나라에 세계문자박물관이 있다. 무려 '국립' 박물관이다. 세계문자박물관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지 궁금해 다녀왔지만, 정작 내 관심을 끌었던 것은 세계의 문자가 아닌 우리의 문자였다. 박물관에서는 문자의 발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인류에게는 말과 소리가 있었다.
문자가 없던 선사시대, 말에 표정과 손짓을 보태 인류는 생각과 감정을 전달했다.
그러나 말은 입에서 나오는 순간 사라졌다.
시간과 공간을 결코 벗어날 수 없었던 말의 한계.
소통이 필요했던 인간은 그 장벽을 뛰어넘고 싶었다.
그 열망으로 만들어진 인류의 발명품이 바로 문자였다.
(중략)
인류는 문자를 통해 소통의 범위를 점점 확대할 수 있었다.
인류에게 역사시대가 펼쳐졌다.

그러나 시각장애인들은 20세기 초까지도 역사시대를 맞이하지 못했다. 인류가 발명한 위대한 문자를 사용할 수 없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런 시각장애인들에게도 비장애인들과 동일하게 역사시대를 펼쳐준 또 다른 위대한 발명이 바로 점자이다. 문자 사용에서 소외되었던 시각장애인들에게도 문자를 사용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민본적 정신을 담았던 훈민정음이 약 500여 년이 지나 훈맹정음에서도 다시 살아난 셈이다. 뒤늦게나마 국립세계문자박물관에서 훈맹정음의 존재를 알게 되어 기록에 남겨본다.

방문 전에는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이 왜 인천에 있을까 하는 궁금증도 있었다. 훈맹정음을 개발한 송암 박두성 선생의 출생지가 인천광역시 강화군이고, 그의 생가와 묘역 모두 인천에 위치하기 때문일 것이다.

훈맹정음.jpg 국립세계문자박물관에 전시된 훈맹정음



한 줄 요약

✔️ 시각장애인에게도 문자와 역사를 열어준 훈맹정음은 오늘날 한국점자의 뿌리이자 국가문화유산이다.


박물관 개요

✔️ 명칭: 국립세계문자박물관

✔️ 홈페이지: https://www.mow.or.kr/kor/

✔️ 주소: https://maps.app.goo.gl/ZmzGyzmLWHJyXmmo6



일제강점기에 시작된 시각장애인 교육

시각장애인들의 삶은 개화기 이후 사회의 급속한 변화로 하나둘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신문과 교과서 등 인쇄매체에 의한 정보활동의 양이 증가하는 만큼 구술에 의존했던 시각장애인들은 각종 변화와 교육 기회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시각장애인 대상 교육은 서양 선교사들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당시 평양에서 선교사로 활동하던 로제타 홀(Rosetta Hall)은 4점식 점자인 뉴욕 포인트식 점자와 6점식 점자인 브라유(Braille)식 점자를 비교해 본 후, 한글 사용에는 뉴욕 포인트식 점자가 적합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이를 도입하였다. 그러나 이 점자는 한글의 특성인 초성과 종성의 구별이 없어 우리말과 글을 표현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고, 지나치게 많은 분량의 점자가 필요하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더욱이 선교사로서 시각장애인들에게 주로 성경, 기도문, 십계명 등을 읽혀 한국의 문화와 정서에도 맞지 않았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는 수립 초기부터 시각장애인들에 대한 교육을 시행했다. 서양 선교사들이 이미 시각장애인 대상 교육을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시각장애인들에게도 조선총독부의 근대성을 강조하기 위한 목적이 있었다. 조선총독부는 1913년 제생원(濟生院)을 설립하여 교육을 실시하였는데, 맹아의 경우 수신, 국어, 일본어, 산술, 음악, 침안, 체조 등을 교육했고, 농아에게는 수신, 국어, 일본어, 산술, 수예, 체조 등을 교육했다. 여기서 수신(修身)은 오늘날의 윤리∙도덕과 같은 과목이지만, 실제로는 충성심·예절·근면 같은 ‘제국 신민으로서의 도덕’을 가르치기 위함이었다. 침안(鍼按)은 침술과 안마를 합친 용어, 수예(手藝)는 바느질·자수·재봉 등을 말하는 용어로, 일본 내 맹인 교육기관에서도 전통적으로 가르쳤던 과목이다. 장애인들에게도 직업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실제로 당시 일본 시각장애인들의 대표적인 직업이 안마업이었다고 한다. 여전히 한국에서는 의료법에 의거해 안마사는 시각장애인들만 할 수 있고, 그들만 안마업을 개설할 수 있는데 그 유래가 여기에 있다.

당시 제생원 맹아부의 교사로 근무하던 박두성은 로제타 홀의 4점식 점자도, 일본어 점자를 익히는 것도 모두 적합하지 않다고 보았고, 한국인을 위한 적절한 문자 교육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특히 안마 교육을 위한 필수과목인 해부학 강의가 일본어로 진행될 때에는 시각장애인에게 있어 더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그는 시각장애인의 실력 양성을 위한 기본적 도구인 점자를 반드시 개발하겠다고 마음먹었고,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마침내 1926년 한글점자인 '훈맹정음'이 탄생하였다.




훈맹정음(訓盲正音, ⠚⠛⠑⠗⠶⠨⠻⠪⠢)

우리나라 점자의 창제자는 송암 박두성(松庵 朴斗星) 선생으로, 1913년부터 1935년까지 제생원 맹아부의 교사로 재직했던 인물이다. 교사를 시작할 당시에는 로제타 홀의 4점식 점자를 사용하고 있어 그는 큰 불편함을 느꼈고, 스스로 전 세계적으로 공인된 브라유식 6점식 점자로 전환하기 위한 연구를 시작했다. 1920년부터 제생원의 학생들과 함께 연구를 시작했고, 일제의 탄압을 피해 비밀리에 1923년 조선어점자연구위원회를 설립해 본격적으로 연구를 이어갔다. 그는 점자를 개발함에 있어 첫째, 점자는 배우기 쉬워야 하고, 둘째, 점의 수가 적어야 하며, 셋째, 서로 혼동을 일으키지 않아야 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1923년부터 1926년 8월까지 모두 12개의 안을 제안했고, 이들 중 최적의 안을 채택하여 ‘훈맹정음’이라 하고, 훈민정음 반포 480주년 기념일인 1926년 11월 4일 발표하였다. 참고로, 당시에는 훈민정음을 반포일을 10월 9일이 아닌 11월 4일로 알고 있었다.

당시 일제의 검인정교과서 탄압에도 불구하고 이 한글점자로 조선어(한국어)를 가르치기 위한 교과서인 '조선어독본(朝鮮語讀本)'을 점자 출판하였고, 1931년부터는 성경의 점자 원판 제작에 착수하여 1941년에 점자로 된 신약성서를 완성하였다. 1935년에 치러진 부면협의회(일제강점기 시절의 지방의회) 선거에서는 처음으로 한글점자 투표가 가능해져 시각장애인들의 사회참여가 확대되었다. 광복 후 제헌국회에서도 이 한글점자 투표를 승인받았다. 그가 마련한 교재용 점자자료는 70여 종에 달하는 등 평생을 점자 보급과 일반 글자를 점자로 옮기는 점역(點譯)에 헌신하였고, 덕분에 우리나라는 특수교육 분야에서 획기적인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다. 그가 시각장애인들의 세종대왕이란 칭호를 얻게 된 이유이다. 그의 유언을 들으면 얼마나 점자를 소중하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다.

점자책은 쌓아두면 점자 부분이 납작해져 읽을 수 없게 된다. 그러니 점자책은 쌓아두지 말고 꽂아둬라.


박두성은 훈민정음해례본과 같이, 훈맹정음의 해례본인 '한글점자'도 발간한다. 즉 훈맹정음의 원리와 내용에 대한 해설서이다. 이 책은 박두성이 쓴 서문 1장과 본문 13장으로 이루어졌으며, 본문은 제1장 점자, 제2장 한글점자, 제3장 점자를 배우려면, 제4장 수학부호와 화학식기호, 제5장 음악부호, 제6장 외국어점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훈맹정음_2.png
한글점자.png
(좌) 훈맹정음 인쇄본 / (우) 한글점자(훈맹정음의 원리와 내용을 해설한 책의 원고)


이와 같은 박두성의 공로를 인정하여 정부는 1962년 국민포장을 수여하였으며, 1992년에는 은관문화훈장을 추서하였다. 인천광역시는 1992년 중구에 송암 생가 기념비를 세웠고, 1999년에는 미추홀구 시각장애인복지관에 송암 박두성 기념관을 설립하였다. 또한 서울특별시 종로구 국립서울맹학교 내에도 박두성의 추모비가 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점자는 한국점자(Korean Braille)이다. 훈맹정음을 토대로 여러 차례 개정된 점자이다. 시대의 변화에 맞춰 수학, 과학, 외래어, 컴퓨터 및 음악 기호 등을 반영한 종합적인 점자 체계로 발전시켰고, 1994년 한글점자연구위원회가 한글 점자 통일안을 발표하면서 현재의 표준이 마련되었다. 훈맹정음이 그대로 쓰이고 있진 않지만, 오늘날 한국점자의 뿌리임에는 틀림없다.




국가유산으로 등록된 훈맹정음

훈맹정음은 2020년 12월 4일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한글점자 훈맹정음 제작 및 보급 유물’은 송암 박두성이 1926년 11월 4일에 반포한 훈맹정음과 관련된 유물 8건 48점, '한글점자 훈맹정음 점자표 및 해설 원고’는 한글점자 육필 원고본, 한글점자의 유래 초고본 등 한글점자의 유래, 작성원리, 그 구조 및 체계 등을 파악할 수 있는 유물 7건 14점이 등록되었다. 국가유산청은 훈맹정음에 대해 일제강점기 시각장애인을 위한 고유언어 문자라는 점에서 문화적 가치가 크고, 당시의 사회적·문화적 상황을 반영할 뿐만 아니라 근대 시각장애인사를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국가등록문화유산 등록 가치가 높다고 밝힌다.

한글점자 훈맹정음 점자표 및 해설 원고(국가유산청).jpg
한글점자 훈맹정음 제작 및 보급 유물(국가유산청).jpg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훈맹정음. (좌) 점자표 및 해설 원고 / (우) 제작 및 보급 유물 (출처: 국가유산청)


이 유산은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이 아닌 국립한글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한글박물관은 증축 공사 후 2025년 10월 재개관할 예정이었으나, 지난 2월 발생한 화재 때문에 국립한글박물관의 재개관 일정은 확정되지 않았다. 다행히 손실된 문화재가 없다고 하니 훈맹정음 또한 재개관 이후에는 실물을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다.


국립한글박물관 https://maps.app.goo.gl/5kuLNVErrDaYDQxB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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