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 권력과 통치의 도구에서 지식 민주화의 발판으로

#018. [인천] 국립세계문자박물관_2편

by Muse u mad

문자가 얼마나 위대한 발명이었는지는 두말할 나위 없다. 선사시대(先史時代)와 역사시대(歷史時代)를 구분하는 기점도 문자로 기록을 남겼는지의 여부에 따르니 말이다.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도, 요하네스 구텐베르크(Johannes Gutenberg)의 활판 인쇄술도,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본인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도 그래서 역사적 가치를 높이 인정받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문자를 통한 기록이 역사의 중요한 전환점이라는 것을 앎과 동시에, 이 문자가 인류 역사에서 어떤 위대한 역할을 했는지를 알아야 한다.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은 인류 최초의 문자인 쐐기문자부터 이집트문자, 마야문자, 라틴문자, 아람문자, 만주문자, 한자, 한글 등 전 세계 문자 역사의 흐름에 있어 중요한 문자들을 모두 다루고, 활판 인쇄술과 번역, 현대 중국의 한자간화방안, 한어병음방안까지 문자의 세계사를 다룬다. 박물관이 보여주는 문자의 역사적 흐름을 통찰했을 때 느끼는 바를 전시물과 설명을 통해 풀어가 보고자 한다.



한 줄 요약

✔️ 문자는 권력의 도구에서 지식 민주화의 수단으로 변화하며 인류 역사를 이끌었다.


박물관 개요

✔️ 명칭: 국립세계문자박물관

✔️ 홈페이지: https://www.mow.or.kr/kor/

✔️ 주소: https://maps.app.goo.gl/ZmzGyzmLWHJyXmmo6



인류 최초의 기록, 동굴벽화와 암각화

동굴벽화와 암각화는 인류가 남긴 최초의 기록이다. 선사시대 사람들은 그들의 일상, 생각과 소망을 바위나 동굴 벽에 그림으로 그렸다. 지금까지 전해지는 대표적인 것으로는 쇼베퐁다르크(Chauvet-pont d'Arc) 동굴벽화, 라스코(Lascaux) 동굴벽화, 알타미라(Altamira) 동굴벽화,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울주 천전리 각석 등이 있다. 동물을 사냥하는 장면이 주로 많은데, 사냥의 성공을 축하하고 풍요를 기원하는 주술적 의미가 담겨 있다. 인류의 예술과 종교 생활의 시작인 셈이다. 인류의 사고력이 발달할수록 그림은 점차 간략해져 추상적인 기호로 변해갔고, 이는 문자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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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출처: 국가유산청) / (우) 쇼베퐁다르크 동굴벽화(출처: Wikimedia Commons)




초기 문자, 권력과 통치의 도구

인류 최초의 문자는 쐐기문자(Cuneiform)로, 기원전 3,500여 년 전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 문명에서 나타났다. 메소포타미아인들은 강가의 진흙으로 만든 점토판에 갈대를 사용하여 문자를 기록하였다. 갈대로 그린 선이 쐐기 모양으로 보이는 데서 비롯된 이름이다. 박물관에서 말하는 몇 가지 쐐기문자 유물을 살펴보자. 먼저 기원전 약 2,000년 전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수메르 회계 점토판(Sumerian accounting tablet)'이다. 우르 제3왕조 당시 관청에서 1년 동안 출납한 가축 수를 기록한 장부이다. 다음으로 '구데아 좌상(Statue of Gudea)'은 구데아왕이 신전 건립 후 신에게 바친 조각상으로, 다리 부분에 그의 통치 업적과 신에게 헌정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이미 잘 알려진 바빌로니아의 제6대 왕(재위 기원전 1792~1750년) 함무라비가 반포한 '함무라비 법전(Code of Hammurabi)'이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통일하면서 중앙집권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통치 정당성의 근거를 법전으로 마련하였다. 신으로부터 왕권을 위임받았음을 선언하였고, 악한 자들을 없애고, 강자가 약자를 억압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제정목적이 비석에 기록되어 있다. '법전'이란 용어 때문에 막연히 책일 거라 생각했으나, 함무라비 법전은 이미지와 같이 석비 형태이다. 내용만 복제한 점토판의 형태도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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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부터) 쐐기문자로 기록된 수메르 회계 점토판 / 구데아 좌상 / 함무라비 법전


이집트 문자로 기록된 '로제타석(Rosetta stone)'은 이집트를 다스렸던 프톨레마이오스 5세 에피파네스(Ptolemy V Epiphanes, 재위 기원전 205~180년)가 반포한 왕실 포고문이다. 상단에는 14행의 이집트 성각문자, 중간에는 32행의 민용문자, 하단에는 54행의 그리스문자가 각각 새겨져 있다. 로제타석의 세 종류 문자는 각각 다른 독자를 대상으로 한 것이다. 성각문자는 프톨레마이오스 5세를 영원히 축복할 이집트의 신과 신관들을 위해, 민용문자는 피지배계층인 이집트 현지인들을 위해, 그리스문자는 당시 공용문자로 그리스 지배자들을 위해 새겨졌다. 세 가지 문자로 기록된 덕분에 고대 이집트 문자를 해독하는데 큰 기여를 한 유물이기도 하다.

한자(漢字)는 3,300여 년 전부터 시작된 문자로 글자 수가 수만 자 이상에 이르는 대표적인 표의문자(表意文字)이다. 한자는 수천 년 동안 점진적으로 변화해 왔는데, 갑골문(甲骨文), 금문(金文), 소전(小篆), 예서(隸書)를 거쳐 오늘날 가장 널리 사용하는 한자의 일반적인 형태인 해서(楷書)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가장 초기 형태인 갑골문은 거북의 껍질(甲)과 짐승의 뼈(骨)에 새겨진 문자이며, 대부분 상(商) 나라 왕실의 점복(占卜)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금문은 서주(西周) 시대의 대표적인 문자로, 선조의 공덕을 칭송하거나 공적을 세워 왕에게 하사 받은 책명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소전은 진(秦) 나라의 문자 통일 정책으로 제정되었고, 이후 행정문서 처리의 편의를 위해 일종의 관청 필체로 형성된 예서는 한(漢) 나라의 공식 서체가 되었다. 이후 보다 쓰기 편하고 반듯하게 가다듬어진 서체가 위진(魏晉) 시대에 형성된 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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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이집트 문자로 기록된 로제타석 / (우) 한자가 새겨진 가장 오래된 비석의 탁본(기원전 403~221 전국시대 이전으로 추정)


쐐기문자, 이집트문자, 한자 등 초기 문자를 통해 본 문자의 기능은 주로 통치의 수단이었다. 인쇄물의 제작, 보급과 문자 교육이 제한되어 있던 환경이었기 때문에 왕실과 관료, 제사장 등 소수의 인원들 중심으로만 문자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 내용도 신에게 왕권을 부여받았다는 등의 통치를 정당화할 목적, 백성들을 관리할 목적, 행정상 목적 등이었다. 이처럼 대부분의 기록과 해석을 권력자들이 독점했던 반면, 일반 평민들은 문자를 접하거나 배울 기회가 없어 정치적·사회적으로 배제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문자는 지식과 권력의 경계선을 그어주는 도구였으며, 통치 집단의 지배를 공고히 하는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지식의 대중화를 이끈 활판 인쇄술

Time-Life magazine(1997)은 구텐베르크(1400~1468)의 활판 인쇄술을 지난 2천 년 간의 가장 중요한 발명으로 선정하였고, A&E Network(1999)는 천년의 인물 순위에서 구텐베르크를 1위로 꼽았다. 미국의 역사학자인 엘리자베스 아인슈타인(Elizabeth Eisenstein)도 활판 인쇄술이 문화적·종교적·과학적 변혁을 촉진한 사회 변환의 핵심 기폭제라고 평가하였다. 우리가 먼저 금속활자를 발명했다는 역사적 순서는 잠시 뒤로 미뤄두고, 구텐베르크의 활판 인쇄술이 세계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박물관을 통해 살펴보았다.

인쇄술을 발명한 15세기 유럽은 새롭게 등장한 시민계층과 대학을 중심으로 문자와 서적 수요가 폭증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필사된 책으로는 더 이상 서적 수요를 감당할 수 없었다. 인쇄술이 발명되면서 교회의 권위에 도전하는 성서 해석이 인쇄물을 통해 유통되었고, 16세기 독일에서 시작되어 유럽 각지로 퍼진 종교개혁은 인쇄술이 없었다면 이뤄질 수 없었던 역사적 사건이었다. 신학자의 입을 통해서만 듣던 신의 말씀을 인쇄물을 통해 직접 읽을 수 있었고, 라틴어뿐만 아니라 평신도들이 이해할 수 있는 지역의 언어로 인쇄되면서 전파 속도는 급격하게 빨라졌다. 이로 인해 성서는 자국어를 익히는 중요한 교재가 되었고, 지역별로 언어를 표준화하고 고유어 사용을 촉진하면서 민족을 구분하는 민족주의의 기초가 되기도 했다.

17세기 과학혁명도 인쇄술의 영향이 컸다. 정확성을 요구하는 과학의 데이터는 인쇄술을 통해 복제되어 널리 전파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18세기 계몽 사상가들의 사상도 책으로 전파되면서 근대사회를 규정하는 합리적 사고방식 역시 확산될 수 있었다. 또한 인쇄술로 대량 생산된 책은 국민들의 사고방식을 동질화시킴으로써 봉건체제에서 벗어나 중앙집권적 지배권력이 성장하는 밑거름이 되기도 하였다. 이후 신문, 잡지와 같은 정기 간행물이 발행되기 시작했고, 산업혁명 이후 인쇄와 배포 속도가 빨라지면서 인쇄물은 대중 여론의 형성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또 하나의 권력으로 성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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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구텐베르크가 사용했던 인쇄기(복제품) / (우) 서양 최초로 금속활자로 인쇄한 성서(1454년 추정)


우리가 자랑스럽게 알고 있듯이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는 우리나라이다. 1377년 세계 최초 금속활자로 인쇄된 '백운화상 초록 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 抄錄 佛祖直指心體要節)'과 1447년 최초 한글 금속활자로 인쇄된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이 박물관에도 전시되어 있다. 직지심체요절은 고려후기 승려인 백운화상 경한이 부처와 고승들의 법어, 대화, 편지 등을 모아 간행한 것으로, 경전에 의존하지 않고 직관적으로 마음을 깨닫는 선불교적 가르침을 담은 내용이다. 총 2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현재 전해지는 것은 하권 1책만이고,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안타깝게도 구한말 주한프랑스공사인 콜랭 드 플랑시(Collin de Plancy)가 수집해 가져간 이후 현재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월인천강지곡은 세종이 직접 지은 불교 찬가로, 훈민정음 창제 직후 국문 문학의 효시 중 하나로 손꼽힌다. 월인천강은 '달빛이 천 개의 강에 비친다'는 뜻으로, 달은 부처의 자비와 깨달음을, 천 개의 강은 중생의 마음을 비유한 것이다. 부처의 지혜와 자비가 모든 백성에게 고르게 스며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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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직지심체요절 금속활자 인판(복원품) / (우) 월인천강지곡(복제품)




문화의 차이, 권력자와 대중의 차이를 극복케 한 번역

번역은 다른 언어를 자신의 언어로 바꾸는 과정에서 비롯되는 문화권과 문화권 사이의 의사소통이다. 인류는 번역으로 다른 문화권에서 만들어진 여러 문화적 성취물을 공유하였다. 번역을 통해 종교와 사상은 다른 국가와 지역들로 확산되었고, 동서양의 문학, 과학, 의학 등은 지역의 한계를 넘어 새롭게 발전할 수 있었다. 문자는 소수의 권력자들만이 독점하거나 문화가 발전한 국가 중심으로 사용되었던 수단이었으나, 독점된 지식이 더 넓은 범위의 대중에게 퍼지는 역할을 번역이 하게 된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성서 번역이다. 중세 유럽에서 성서는 라틴어로만 기록되었고 성직자들만이 해석권을 독점하였다. 그러나 16세기 독일의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는 성서를 자국어로 번역해 일반 신자들이 직접 읽고 이해할 수 있게 하였고, 이는 교회의 권위에 균열을 내며 종교개혁을 촉발시켰다. 신앙과 지식의 접근을 평등하게 만드는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이다.

불교 경전도 마찬가지이다. 산스크리트어로 시작된 불교 경전은 중국에서 한자로, 우리나라에서 다시 한글로 번역되어 대중화될 수 있었다. 불교 찬가 월인천강지곡을 한글로 지은 것도 백성에게 부처의 가르침을 전달하고 싶은 세종대왕의 헤아림이 있었다. 일본 또한 메이지 시대에 활발한 번역 활동을 통해 서구 문명을 능동적으로 수용하면서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근대국가로 도약하였다. 전 세계적으로 공산주의 물결이 휩쓸게 된 것도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저작인 '공산당 선언', '자본론' 등이 각 국가의 언어로 번역되면서 일반 대중의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번역은 전통의 구속에서 벗어나고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는 길이었으며, 새로운 지식과 경험을 손쉽게 받아들여 국가와 지역 간의 차이, 권력자와 대중의 차이를 최소화하는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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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부터) 루터가 번역한 '구약성서'(1524) / 세조가 번역한 경전 '아미타경언해'(1558) / 프랑스어로 번역한 '춘향전'(1892)




지식 민주화의 사례: 중국의 한자간화방안과 한어병음방안

중국의 한자는 배우기 너무 어렵고 읽고 쓰기도 힘들어 20세기에 들어서도 중국 내 문맹률은 여전히 낮았다. 근대화를 위해서는 교육을 통해 국민의 문맹률을 낮추고 문해력을 향상하는 것이 필수였기 때문에, 중국은 이를 국가적 과제로 지정하고 한자간화방안(漢字簡化方案, 1956)과 한어병음방안(漢語拼音方案, 1958)을 잇따라 제정하였다. 마오쩌둥은 '문자는 반드시 개혁해야 하며, 세계 문자와 함께 병음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라고 주창하였다.

한자간화방안은 한자의 모양을 단순화하여 보급률을 높이자는 취지였다. 1956년 공포할 당시 2,200자의 간화자 목록을 포함하고 있었으며, 획수가 복잡한 글자들을 간략화하여 사용하도록 했다. 예를 들어 [學→学], [國→国], [廣→广]이 대표적인 간화 사례이다. 우리가 흔히 간체(简体)라 부르는 것에 간화도 포함되어 있다. 사회주의 건설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대중이 빠르게 문자 생활에 참여하도록 하는 목적이었던 만큼, 1949년 약 80%에 달하던 문맹률(유네스코 조사 기준)은 간화자 도입 이후 1982년 34%(세계은행 조사 기준)로 떨어졌고, 2020년 중국 국가통계국 기준으로 문맹률은 2.67%에 불과하다. 획수가 줄어들면서 활자 인쇄가 단순화되고, 인쇄물의 발행 속도가 향상되어 지식과 정보의 보급 속도도 빨라졌다. 디지털 환경에서도 간화자는 표준으로 자리 잡아 정보화 시대의 언어 기반이 되었다. 다만, 홍콩, 대만, 해외 화교 사회에서는 전통 한자를 유지함으로써 문화적 분열을 낳기도 했고, 역사적 연구에서는 여전히 기존 한자인 번체자(繁體字)가 필요하여 이중 체계를 불가피하게 유지할 수밖에 없는 한계도 있다.

한어병음방안은 발음 표기를 통일하기 위한 새로운 음차 체계였다. 로마자 알파벳을 활용하여 중국어 발음을 표기하는 방식으로 병음(拼音)이라 불렸다. 성모(초성) 21개, 운모(중성, 종성) 35개, 성조(4성 체계, ā, á, ǎ, à) 표기를 명확히 구분하여 표준 중국어 발음을 누구나 쉽게 학습할 수 있도록 했다. 예컨대 북경(北京)은 병음으로 Beijing이라 쓰며, 성조 부호까지 표시하면, Běijīng이 된다. 이는 문맹 퇴치뿐 아니라 외국인 학습자와 국제 학계에서 중국어를 표준화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오늘날 디지털 환경에서 한자를 입력할 때 가장 흔히 사용하는 방식이 바로 이 병음 입력법이다.




훈민정음 창제와 훈맹정음의 개발도 두말할 나위가 없다. 훈민정음해례본 서문에서도 밝히듯, 세종은 어리석은 백성이 이루고자 할 바가 있어도 제 뜻을 펴지 못하는 백성을 안타깝게 여겨 쉽게 익힐 수 있는 글자를 만들었음을 분명히 한다. 훈맹정음의 개발자 박두성 선생도 '한글점자' 서문에서 사람은 누구나 배우고 글을 쓸 권리가 있으나, 시각장애인은 그러한 권리를 누리지 못했기에 시각장애인이 세상과 소통하고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목적임을 밝혔다.




Epilogue

프랑스와 중국에도 문자와 관련한 박물관이 있다. 프랑스는 이집트 상형문자 해독의 선구자인 장프랑수아 샹폴리옹(Jean-François Champollion)의 생가를 리노베이션해 멕시코, 메소포타미아, 중국, 이집트 등 전 세계 초기 문자 문명의 기원과 확산 과정을 소개하는 곳이다. 중국문자박물관은 한자만을 다루는 곳으로, 한자의 기원과 발전, 각 시대 문자의 특징을 보여주는 국가급 전문 박물관이다.


1) 프랑스 샹폴리옹 세계문자박물관(Musée Champollion - Les Écritures du Monde)

https://maps.app.goo.gl/AvSmQXAk9RZYXGX19


2) 중국문자박물관(中国文字博物馆)

https://maps.app.goo.gl/kmgRsjkUejQR45ze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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