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랏의 청소년 혁명가

#001. [베트남] Da Lat Youth Prison Museum

by Muse u mad

일명 '꽃의 도시' 달랏(Da Lat)은 동남아시아임에도 불구하고 서늘한 공기 덕분에 도시 그 자체로도 매력적이지만, 조금만 외곽으로 나가면 한적하게 자연을 즐길 수 있는 곳이 너무나 많다. 내가 달랏을 좋아하는 이유다.

이것만으로도 달랏에 갈 이유는 충분하지만, 아무리 자연이 좋아도 그 속에만 있을 수는 없는 법. 달랏에는 어떤 역사가 있는지 찾아보기로 했다. 그러다 눈에 띈 것이 'Da Lat Youth Prison Museum'. 아동과 청소년만 따로 분리한 감옥이 있었고, 그게 오래전 이야기도 아닌 불과 50여 년 전인 베트남 전쟁 때 만들어진 곳이라는 점에 흥미가 갔다.



한 줄 요약

✔️ 베트남 전쟁과 냉전 시대의 참상을 베트남의 청소년 혁명가들을 통해 바라보다.


박물관 개요

✔️ 명칭: Da Lat Youth Prison Museum (베트남어: Nhà lao thiếu nhi Đà Lạt)

✔️ 홈페이지: https://www.baotanglamdong.com.vn/

✔️ 주소: https://maps.app.goo.gl/aDh4M8BQVKvdWSTQ6



왜 청소년 교도소가 필요했을까?

Youth Prison이 운영되던 시기는 베트남 전쟁이 한참이던 1971~1973년으로, 미국과 남베트남은 공산주의 혁명세력에 대한 탄압은 물론, 이들의 확장과 성장을 예방하는데 주력했다. 북베트남 학교에서는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주입하였고, 청소년도 혁명의 동력으로 삼았기 때문이었다. 사회주의 사상 주입의 핵심 조직이었던 '호찌민청년개척단(Hồ Chí Minh Young Pioneer Organization)'이 대표적인 예시이다. 냉전기 동남아시아에서 청소년은 단순한 미성년자가 아니라, 장기적 이념 재상산의 핵심 집단으로 인식되었다. 이는 미국과 남베트남 정부뿐 아니라 북베트남 역시 공유하던 인식이었다.

나이가 어리다는 점 때문에 잘 의심받지 않아 전단 살포, 무기 은닉, 연락병, 물자 수송 등을 담당했고, 이로 인해 미국과 남베트남 정부는 청소년이 오히려 더 위험하다는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 북베트남에서도 청소년이 혁명활동에 참여하는 점을 홍보함으로써 북베트남 전반에 혁명의 기폭제로 삼고자 했다. 실제로 남베트남 정보기관과 미군 심리전 문서에는 "학생과 청소년은 군사적 위협이 아니라 정치적 위협"이라는 표현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즉 이들은 즉각적인 전투력보다는 장기적 체제 전복의 씨앗으로 간주되었다.

이 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남베트남이 만든 것이 Da Lat Youth Prison이었다. Youth Prison의 공식 명칭은 '달랏 어린이 교육센터(Da Lat Children's Education Center)'였다. 실상을 감추기 위한 포장지였을 뿐 실제로 교육을 목적으로 운영된 적은 없다.

베트남 전쟁 시 고엽제(Agent Orange) 피해자




휴양지 달랏에 어울리지 않는 교도소

프랑스 식민지 시절부터 휴양지로 개발된 달랏에 감옥이 세워진 이유가 궁금해졌다. 보통 감옥은 거주민이 많지 않은 외진 곳에 세우는데 반해, 이미 달랏은 프랑스가 행정기관과 고등교육기관을 설립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추정컨대, 1,500m에 달하는 고산지대에 위치해 교통수단을 이용하지 않으면 외부와 고립되는 특성, 이미 고등교육기관이 설립된 곳에서는 정치적 색채가 강한, 즉 교육을 통해 독립적인 정치적 정체성을 가진 청년들이 다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달랏이 전쟁의 중심지역은 아니었기 때문에 외부에 노출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는 점도 하나의 이유였을 것이다. 이러한 조건은 프랑스 식민지 시기 인도차이나 전역에서 반복적으로 활용된 통치 방식이었고, 남베트남 정권은 이를 그대로 계승했다.

폐가 같지만 박물관 맞다. 입구에 도착해서 놀라지 마시길.




감옥 속 일상, 그리고 저항과 투쟁

수용자 중에는 20세 이상도 일부 있었다고 하지만, 대부분은 만 12~17세 청소년들이었고, 이 좁은 공간에 최대 600여 명이 수용되었다고 한다. 약 30㎡ 감방에 60~100명이 수용된 셈이다. 과밀 수용으로 인해 인간다운 삶을 살지 못했음은 분명할 뿐 아니라, 각종 고문이 자행되었다. 거꾸로 매달기와 채찍질, 뜨거운 전구로 얼굴을 지지고, 쇠고랑을 채우고, 독가스 살포와 물고문까지 어른들도 견디기 힘든 고문이 아이들에게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자행된 고문과 고문기구


베트남 정부가 공개한 생존자 증언 기록에 따르면, 이러한 고문은 단순한 정보 획득 목적이 아니라 이념 전향을 강요하기 위한 체계적 수단이었다.

"저는 여자 교도소 독방에 수감되어 있었습니다. 2㎡도 안 되는 작은 감방은 낮인지 밤인지도 거의 알 수 없었고, 항상 축축하고 냄새나는 곳이었습니다. 매일 손바닥에 쏙 들어오는 쌀 한두 줌과 작은 물 한 컵을 받았습니다. 매일 여러 차례 매질을 견뎌야 했습니다. 때로는 쇠 채찍으로, 때로는 전기 채찍으로, 때로는 철조망 채찍으로, 때로는 팔꿈치로, 때로는 못이 박힌 군화로… 정신을 잃었다가 다시 깨어났습니다."
(출처: https://www.baotanglamdong.com.vn/)


박물관 전시의 대부분은 수감생활을 재현한 디오라마였다. 끔찍한 고문과 생활상을 다양하게 볼 수 있었지만, 달랏이 고산지대임을 생각하면 밤이슬을 견뎌야 하는 천장 없는 독방은 가장 힘든 곳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했다. 이러한 전시 방식은 미화 없는 재현을 지향하는 베트남 전쟁기 박물관들의 공통된 특징이다. 관람객의 감정적 거부감을 감수하면서도 국가 폭력이 개인의 일상에 어떻게 침투했는지를 그대로 보여주려는 의도가 읽힌다. 국가 폭력이 작동하는 방식은 시대와 이념을 초월해 유사한 형태를 띤다는 점에서, 문득 서대문형무소에서 고초를 겪은 독립운동가들, 민주화운동으로 수없이 고초를 받은 열사들도 함께 떠올랐다.

Youth Prison의 수감생활


극심한 고문에도 대부분의 수감자들은 굴복하지 않았다고 한다. 공산당에서 탈퇴할 것을 종용받았지만 끝까지 저항하였고, 남베트남 정부 행사에 공개적으로 거부하는 것은 물론, 간수 폭행, 자해, 탈옥을 끊임없이 시도했다. 13명으로 조직된 집단 탈옥이 성공해 람동 지역의 혁명부대에서 활동한 적도 있다고 한다. 저항과 투쟁 후에는 더 심한 고문을 받았겠지만 수감자들 사이의 결속력은 오히려 더 강해졌을 것임에 분명하다. 그리고 단순히 공산주의를 지키기 위함이라기보다는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행동이었을 것이다.

간수 폭행 및 탈옥 시도




박물관이 된 감옥

1973년 6월까지만 감옥이 운영된 것을 보면, 미군이 철수하면서 이 수용소도 함께 운영을 중단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일본의 태평양전쟁 패배만이 우리의 독립 계기가 아니듯이, 청소년 혁명가들의 끈질긴 저항과 투쟁이 이 수용소의 폐지를 이끌어내지 않았을까 싶다.

베트남 정부는 이 건물을 2009년 국가혁명역사유적지로 공식 지정했다. 실제 수감자 및 유족들이 박물관 조성에 참여해 역사적 진실성을 높였다.




Episode

약 2시경에 방문했지만, 관람객은 아무도 없었다. 건물 외관은 너무 낡아서 폐가 같았다. 어쩔 줄 몰라 두리번거리던 중 나를 본 직원이 그제야 전시실 문을 모두 열어 여기가 박물관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때까지 관람객이 단 한 명도 없었다는 건지 의심이 들었지만. 방치된 듯한 외관 자체가 의도된 연출은 아닌 듯 했고, 베트남 전쟁기 기억 유산이 소외되어 있다는 사실에 안타까웠다.

입장료로 큰돈을 내밀었지만, 잔돈이 없다고 입장료도 덜 받았다. 안내 팸플릿을 주었지만 모두 베트남어라 읽을 수 없었다. 다행히 전시물에는 영어가 있었지만, 설명이 친절하진 않았다. 쓱 훑어본 디오라마의 퀄리티도 높지 않았다.

입장 전까지 그 어느 하나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전시물에 담긴 스토리를 따라가면서 참혹한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실재감에 더해 미국이 벌인 가장 부도덕한 전쟁이었던 베트남 전쟁, 그리고 냉전의 역사가 배경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더욱이 우리의 독립 투쟁과 민주화 항쟁의 역사까지 떠올리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겉모습은 다소 초라한 박물관이지만, 그 안에는 무고하게 억압받고 죽어간 베트남 청소년들을 떠올리게 하는 기억의 공간이었다.




Appendix. 호찌민과 베트남 전쟁에 대한 기록

호찌민과 베트남 전쟁 역사를 기록한 곳을 몇 군데 더 남겨본다. 대한민국도 참전한 전쟁이자 고엽제 피해자가 여전히 남아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위해서...


1) 호찌민 전쟁 박물관 https://maps.app.goo.gl/GbCU7tmLCMzNJ3qU8


2) 디엔비엔푸 승전 박물관 https://maps.app.goo.gl/jo7LNLTcYrArJE6R9


3) 구찌땅굴 https://maps.app.goo.gl/WorWTjJWNpMD1VAv7


4) 호찌민 박물관 https://maps.app.goo.gl/qfkmDg15cMsT5Hdy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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