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카르타 변천사: 순다 끌라빠, 자야카르타, 바타비아

#023. [인도네시아] Maritimes Museum

by Muse u mad

해상 무역의 거점이 되었던 도시마다 같은 이름의 박물관이 있다. 해양 박물관 Maritime Museum. 그만큼 어느 나라든 바다의 중요성을 알고 있고 바다와 관련해 하고 싶은 얘기가 많은 듯하다. 자카르타 역시 과거 해상 실크로드의 주요 거점 중 하나였고,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등의 열강들도 자카르타를 시작으로 인도네시아를 점령했기 때문에 하고 싶은 말이 많을 것이라 생각했다.

해양 박물관인 만큼 순다 끌라빠 항구 근처에 있었고,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OC: Vereenigde Oostindische Compagnie)가 창고로 쓰던 건물을 개조해 박물관으로 사용 중이었다. 2018년 발생한 화재 때문인지 대단한 전시품이 있어 보이진 않았지만, 다른 어떤 박물관 못지않게 역사적 흐름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는 곳이었다. 16세기 이후 자카르타는 네 가지의 도시 이름을 가졌었는데, 이 역사를 박물관에서 잘 설명하고 있었다. 순다 끌라빠부터 자야카르타, 바타비아, 자카르타로 이어지는 도시의 변천사를 살펴본다.



한 줄 요약

✔️ 순다 끌라빠에서 자야카르타, 바타비아를 거쳐 지금의 자카르타가 되기까지, 자카르타 명칭의 변천은 인도네시아 해상 무역, 식민 역사, 근대국가 설립과 민족 정체성 회복의 과정을 요약한다.


박물관 개요

✔️ 명칭: Maritimes Museum (인도네시아어: Museum Bahari)

✔️ 홈페이지: https://museumbahari.org/

✔️ 주소: https://maps.app.goo.gl/JsKpUbfCTUZFffsh6



자카르타의 시작: Sunda Kelapa

순다 끌라빠라는 순다왕국(Kerajaan Sunda)의 '순다'에서 온 명칭이다. 순다왕국은 약 7세기 경에 자바섬 서부에 수립된 후 16세기까지 존속한 국가이다. 순다왕국은 순다인의 국가로 순다어를 사용했으며, 현재도 자바 서부 보고르(Bogor)와 반둥(Bandung) 등의 지역은 여전히 순다인이 다수를 차지하고 순다어를 병행해 사용한다.

순다 끌라빠는 순다왕국의 주요 항구 중 하나로, 아시아와 인도, 중동 지역까지 잇는 해상 네트워크를 연결하면서 번성하였다. 16세기 전부터 현 인도네시아의 팔렘방(Palembang), 말루쿠(Maluku), 마카사르(Makassar), 탄중프라(Tanjung Pura) 지역의 배는 물론, 중국, 인도, 사우디아라비아, 페르시아, 류큐 지역의 배들도 순다 끌라빠 항구를 방문했던 기록이 남아있다. 이들의 목적은 무역이었지만, 자연스럽게 선교사도 함께 왕래하면서 중국의 불교, 인도의 힌두교, 중동의 이슬람교 모두 전파의 힘이 강해졌고 사원과 학교까지 건립하였다. 무역을 넘어 문화와 종교, 지식이 함께 교류하던 장소이기도 했다.

순다 끌라빠는 1513년 포르투갈 선박이 방문하면서 큰 변화를 맞게 된다. 포르투갈은 아시아에서 향신료를 찾기 위해 말라카(Melaka)를 거쳐 순다 끌라빠에 방문했었는데, 당시 관리자였던 토메 피레스(Tomé Pires)는 그의 저서 수마 오리엔탈(Suma Oriental)에서 "끌라빠는 순다왕국의 가장 크고 질서 정연한 항구로, 그곳의 법은 엄격하고, 무역은 공정하며, 사람들은 정직하다."라고 기록하였다. 단순한 지역 항구가 아닌 이미 국제적 무역항이었음을 알 수 있다.

포르투갈은 향신료 무역의 거점을 확보하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이미 국제적 무역항으로 성장한 순다 끌라빠를 차지할 생각을 했다. 당시 순다왕국은 중부 자바에서 점차 세력을 키우던 이슬람 국가 데막 술탄국(Demak Sultanate)을 견제하고 싶던 시기였고, 포르투갈은 향신료 무역 독점권을 얻고 싶었던 이해관계가 맞아 1522년 동맹을 체결하게 된다. 이에 데막 술탄국은 크게 반발했고, 데막의 장군 파타힐라(Fatahillah)가 나서 포르투갈의 순다 끌라빠 진입을 저지하고 1527년 격퇴한다. 이 승리를 기념해 데막 술탄국은 순다 끌라빠의 이름을 자야카르타로 바꾼다. 하지만 현재도 순다 끌라빠는 자카르타의 항구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소규모 선박들이 운항하고 있다.

https://maps.app.goo.gl/BXbFkhGfz63cxQdL9




민족 정체성의 표현: Jayakarta

자야카르타는 산스크리트어로 '승리를 얻은 도시'라는 의미이다. 파타힐라 장군은 데막 술탄국의 감독을 받으며 자야카르타를 통치하였다. 현재 자카르타의 코타 투아(Kota Tua) 지역에 있는 파타힐라 광장도 이 장군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하지만 자야카르타라는 이름은 오래가지 못했다.

16세기말 유럽에서 향신료는 금보다도 비싼 전략적 자원 중 하나였는데, 특히 인도네시아의 말루쿠 제도가 세계 최대의 산지였다. 동남아시아에 먼저 진출했던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이 향신료 무역을 독점하면서 네덜란드는 향신료 무역에서 배제되었고, 네덜란드 상인들은 인도양으로 가는 항로를 찾아 항해를 시작하게 된다. 이를 위해 1602년 네덜란드 정부는 무역권, 군사권, 외교권, 조약권까지 위임하는 준정부기관 성격의 동인도회사(VOC)를 설립하여 향신료 무역을 지원한다. 자야카르타의 전략적 위치를 깨달은 VOC의 총독 얀 피터손 쿠엔(Jan Pieterszoon Coen)은 1619년 자야카르타를 공격해 점령하였고, 새로운 식민 도시를 건설하게 된다. VOC의 아시아 본부를 이곳에 설치하고, 이름을 바타비아로 바꾼다.

자야카르타는 자카르타의 원형이자 승리라는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많은 곳에서 사용되고 있다. 따로 예를 들지 않더라도 자카르타와 관련해 조금만 검색해 봐도 대학, 병원, 거리, 호텔, 은행, 쇼핑몰, 정부기관, 모스크 등에서 자야카르타라는 이름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바타비아가 식민의 이름이라면, 자야카르타는 독립 이전 인도네시아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브랜드이기 때문일 것이다.




식민지가 된 자카르타: Batavia

VOC는 자야카르타를 점령한 후, 로마에 맞섰다고 알려진 네덜란드인의 기원인 바타비(Batavi)족의 이름을 따 Batavia로 명명한다. 용감하고 독립적이었던 그들의 조상 이름까지 차용한 것을 보면, 얼마나 이 지역을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다.

VOC의 통치 아래 바타비아는 국제 무역항으로 급성장한다. 일본과 중국에서 동남아시아, 인도, 중동, 아프리카, 유럽까지 펼쳐진 거대한 해상 네트워크의 중요 거점 중 하나로 기능했고, 향신료는 물론 비단, 차, 커피, 담배, 도자기 등이 유통되었다.

VOC는 차근차근 바타비아를 아시아 거점으로 키워가기 위해 개발을 시작한다. 카스틸 바타비아(Kasteel Batavia) 성 건립과 성벽을 건설해 방어체계를 갖췄으며, 칼리 베사르(Kali Besar) 운하를 주축으로 그리드형 운하를 만들어 항구, 창고, 세관, 시장으로 이어지는 경제와 수송 체계를 갖추었다. 이 해양 박물관이 VOC가 사용하던 창고였으며, 1628년 건설되어 유일하게 남아 있는 도개교인 칼리 베사르 다리(Jembatan Kota Intan)는 현재도 운하에 남아있어 당시를 추억하게 한다. 칼리 베사르 운하 양 옆에는 네덜란드 무역회사, 로테르담 국제 신용협회, VOC 총독부의 행정청사 등으로 사용하던 건물들이 지금도 남아있다.

20251003_081606.jpg 18세기 초 제작된 바타비아의 모습 (그림 중앙에 Kali Besar 운하가 뚜렷하게 보인다)
20251003_070750.jpg 1628년 건설되어 현재 유일하게 남아 있는 도개교인 칼리 베사르 다리(Jembatan Kota Int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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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타비아 시설 오가던 상선




현재의 자카르타: Djakarta > Jakarta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일본은 1942년 인도네시아에서 네덜란드를 몰아냈고, 네덜란드식 식민지 명칭인 Batavia 대신 Djakarta로 명명하였다. 식민 이전에 사용하던 Jayakarta의 인도네시아어 표기법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민족말살정책을 편 일본이 자카르타의 도시 이름을 인도네시아어로 바꿨다는 것이 의아했지만, 당시 일본은 대동아공영권 선전의 일환으로 인도네시아 민족 부흥을 표방하며 자주적인 이름으로 바꾸도록 허용했다고 한다.

1945년 독립 후에도 인도네시아는 수도를 Djakarta로 유지했다. 그러나 1972년 그동안 유지했던 네덜란드식 철자 표기법을 폐지하고, 현대 인도네시아식 철자로 통일하면서 현재의 명칭인 Jakarta가 되었다. 네덜란드 식민 언어의 흔적을 모두 지우고 근대적 국가 정체성을 확립하게 된 것이다.

20251002_213233.jpg Jakarta Kota 역 근처의 'Jakarta' 상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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