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을 어기지 않는 므라피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021. [인도네시아] Museum Mini Merapi

by Muse u mad

요그야카르타를 여행하면 빼놓을 수 없는 관광코스 중 하나가 므라피(Merapi) 화산 투어이다. 시내에서 북쪽으로 불과 30km 밖에 떨어지지 않았고, 다양한 투어 프로그램으로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곳이기 때문이다. 태어나 처음으로 화산 가까이에 가보고 싶기도 했고, 지프로 오프로드 투어를 한다는 점도 매력적이라 나 역시 지프투어 업체를 찾아갔다. 특별한 곳에서 자연을 즐기고자 했던 목적이었지만 생각보다 화산 폭발의 잔해가 그대로 남겨져 다크투어의 성격도 가진 곳이었다. 우연찮게 아주 작은 박물관도 들러 그 기록과 함께, 관광과 생존의 경계에 있는 므라피 화산에 대해 남겨보고자 한다.



한 줄 요약

✔️ '므라피는 약속을 어기지 않는다'는 믿음으로 생존과 관광의 경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험하다.


박물관 개요

✔️ 명칭: Museum Mini Merapi (인도네시아어: Museum Mini Sisa Hartaku)

✔️ 홈페이지: https://kebudayaan.slemankab.go.id/post/museum-mini-sisa-hartaku-the-house-of-memory

✔️ 주소: https://maps.app.goo.gl/uwvF7AC953QFc7KB7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자주 분출하는 화산, 므라피

므라피 산(Gunung Merapi)은 인도네시아어로 '불의 산'이란 의미이다. 요그야카르타 특별주와 중앙 자바주 경계에 위치한 2,968m 높이의 활화산으로, 그 의미만큼이나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분출활동이 활발하다. 분화 기록을 확인할 수 있었던 지난 300년 동안 30회 이상 분화해 평균 10년에 한 번 꼴로 화산 활동이 있었으며, 몇몇 폭발은 주변의 마을과 거주민들을 완전히 파괴하기도 했다. 다음은 므라피 산의 주요 분화 기록이다.

1768년: 당시 자바왕국의 연대기에 "하늘이 검게 변하고 낮에도 횃불을 켰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1872년: 19세기 최대 규모로, 2010년 분화가 일어날 때까지 가장 큰 재앙의 기준점이 되었다.

1930년: 공식적으로 1,369명이 사망하였고, 13개 마을이 전소, 200만 톤 이상의 화산재에 덮였다.

2010년: 322명이 사망하였고, 약 30만 명이 대피, 칼리아뎀(Kaliadem) 지역은 전면 붕괴되었다.

정확히 언제였는지, 그리고 그것이 명확한 사실인지 밝혀지진 않았지만, 약 10~11세기 경 므라피 산의 분화로 주변의 보로부두르는 한동안 화산재에 덮여 잠들어 있었다. 자바 총독으로 근무하던 스탬퍼드 래플스(Stamford Raffles)가 1814년에서야 보로부두르를 찾아 나설 때까지 약 800년 간 묻혔던 것으로 추정한다. 10~11세기 경 마타람 왕국의 거주민들이 당시 자바섬 동쪽으로 모두 이동한 것을 보면 엄청난 화산 폭발이 있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가장 최근의 큰 폭발은 2010년 10월 26일이었다. 화산재 기둥은 16km 상공까지 솟구쳤고, 화쇄류(화산 폭발 시 화산재, 암석, 가스가 뒤섞인 고온의 구름이 산비탈을 따라 빠르게 쏟아져 내리는 현상)가 내려오며 불과 6km 떨어진 칼리아뎀 마을을 덮었다. 11월 4일 더 큰 폭발이 발생했다. 화쇄류는 므라피 남쪽으로 약 15km, 서쪽으로 약 12km까지 확산했다. 요그야카르타 시내에서도 화산재가 1cm 이상 쌓였고, 약 28km 떨어진 보로부두르 사원에까지 화산재가 약 2.5cm 쌓이면서 일시 폐쇄되었다. 총 322명이 사망하였고, 130명이 부상, 28만 명이 대피하였다.

(좌) 요그야카르타 시내에 쌓인 화산재 / (우) 화산 폭발로 사망한 시체


잦은 화산 폭발로 칼리아뎀 지역에는 사람들이 대피할 수 있는 벙커를 만들어 두었지만, 강력한 분화로 흘러내리는 용암을 벙커도 막을 수는 없었다. 당시 벙커로 들어갔던 사람들도 모두 사망하였고, 현재도 벙커로 들어온 용암의 잔해를 내부에 전시해 두고 있다. 분화 전, 분화 당시, 분화 후 복구한 사진을 비교해 두어 얼마나 처참하게 변하였는지도 볼 수 있다.

(왼쪽부터) 2010년 분화 전, 분화 당시, 분화 후의 칼리아뎀 벙커의 모습




약속을 어기지 않는 므라피

Merapi tidak Pernah ingkar janji

므라피 화산 주변을 투어하다 보면, 이런 문구를 볼 수 있다. 우리말로 직역하면, "므라피 화산은 약속을 어기지 않는다."라는 뜻이다. 므라피 화산이 오랜 세월 동안 주기적으로 분화해 온 현상을 비유하는 말로, 지역 주민들은 이러한 정기적 분화를 자연의 약속으로 받아들인다는 의미이다. 지역 주민들은 므라피 산의 연기, 진동, 동물의 움직임 등으로 분화 징후를 관찰하며 살아왔는데, 그 경험을 바탕으로 므라피는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을 전해왔고, 이는 자연의 경고를 무시하지 말라는 교훈적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즉 자연은 반드시 자신이 약속한 방식으로 경고를 하는데, 사람이 그 경고를 무시할 때 문제가 생긴다는 인식을 담아낸 말이다.

예측 가능한 분화 주기를 '약속'으로 받아들이는 그들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삶과 함께 하는 존재로써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현지 주민들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부정부패한 관료 등)과 달리, 므라피는 정직하게 행동한다는 표현까지도 사용한다고 한다.

불과 15년 전에 일어난 대분화, 그 이후에도 소규모 분화가 이어졌던 므라피 산 주변에서 사람들이 왜 계속 살아가는지 여행자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살아갈 곳이 없어서 그냥 버티는 건지, 아니면 지프투어 상품이 리스크를 감수할 만큼 돈이 잘 벌리는지 추측만 하고 있을 때, 이 문구가 가진 의미를 알게 되면서 오히려 그들에 대한 경외심이 들었다. 자연의 순리를 이해하고 그 안에서 삶을 이어가는 현지인들의 깊은 통찰력이었던 것이다.

용암이 흘러내리며 만든 협곡 앞에 놓인 문구 "므라피는 결코 약속을 어기지 않는다."




기억을 보존한 공간

2010년 분화 후, 지방정부와 주민들은 칼리아뎀 일대를 복구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다. 대신 그곳을 기억의 공간으로 남기기로 하면서 몇몇 박물관이 세워졌다. 그중 하나가 내가 방문한 Museum Mini Merapi이다. 화산으로 피해를 입은 가옥을 그대로 보존한 곳이기 때문에 규모는 매우 작지만, 그 자체를 남겨두었기 때문에 그 어떤 장소보다 현실감이 높았다. 용암에 녹아 뼈만 남은 가축, 오토바이, 시계, 헬멧, 유리병, 주방기구는 물론 용암이 굳어 만들어진 화산암들도 그대로 전시되어 있다.

(좌) 뼈만 남은 가축 / (우) 녹아버린 오토바이


(좌) 당시를 기억하는 시계 / (우) 당시 발굴된 집기를 전시해 둔 공간


박물관 벽에는 당시의 사진들도 걸려있다. 화산이 분화하는 장면, 시신을 수습하고 구조하는 장면, 화산재가 쌓인 도시의 전경 등. 자세한 설명이 없어서 아쉬운 마음도 들었지만, 당시의 현장을 관람객들이 그대로 직접 보고 느끼도록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다크투어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슴이 먹먹해졌지만, 므라피의 약속을 기억하는 취지로는 더없이 훌륭한 박물관이었다.

박물관 전경




화산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칼리아뎀 일대는 2013년부터 다시 관광이 시작되었다. 내가 했던 지프투어가 대표적인 관광상품이다. 1시간에서 3시간까지 투어를 선택할 수 있는데, 용암 지대, 분화 흔적, 칼리아뎀 벙커, 박물관, 오프로드 주행 등을 경험할 수 있다. 내 투어를 담당했던 가이드는 한국에서 약 3년간 일한 적도 있다고 했는데, 고향으로 돌아와 정착한 곳도 결국 므라피 화산 주변이라고 했다. 그 역시 므라피의 약속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었다.

화산의 분화는 크나큰 상처를 안긴다. 하지만 화산재는 비옥한 토양의 거름이 되고, 건축 자재가 되기도 한다. 므라피는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훌륭한 시멘트의 재료를 생산하는 곳이다. 내가 방문한 당시에도 채굴이 한창이었다. 또한 지역 주민은 화산의 결과로 만들어진 안산암으로 집을 짓는다. 보로부두르 사원이 100% 안산암을 재료로 지어진 것도 므라피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비옥한 토양 덕분에 곳곳에서는 농사도 짓고 있었다. 나처럼 화산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는 훌륭한 관광상품이 되어 현지 주민의 생계수단이 되기도 한다. 투어를 하는 내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웃으며 인사하는 모습에서 화산의 아픔이나 화산의 두려움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누군가는 위험하다고 느낄지 몰라도, 그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분인 것이다.

현재 인도네시아의 지질재난센터는 므라피 화산이 분화했을 때 용암, 화쇄류, 토석류가 도달할 수 있는 범위를 분석해 두고 있다. 붉은색(HZ III)은 가장 위험한 지역으로 분화 시 화쇄류, 용암 암석 낙하가 직접적으로 닿을 수 있는 구역이고, 분홍색(HZ II), 노란색(HZ I)으로 갈수록 위험수위가 낮아짐을 표기해 두었다. 므라피는 반드시 약속을 지킬 것이기 때문에 지역 주민들이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도록 준비한 것이다. 2010년 분화 당시 가장 큰 피해를 입었던 칼리아뎀 마을이 HZ III 구역에 위치하고 있다.

므라피 화산 위험지도 (출처: Mei et al. (2013). Journal of Volcanology and Geothermal Research)


므라피는 2021년과 2023년, 2024년에도 분화했다. 2010년과 같은 대규모 분화는 아니었지만 므라피는 또 약속을 지켰다. 주민들의 대피 및 주변 관광과 채석은 중단되었지만, 다행히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므라피는 약속을 어기지 않겠지만, 지역 주민들이 화산과 공존할 수 있는 수준에서만 활동이 지속되길 바라본다. 생존과 관광의 경계가 무너지지 않아 언젠가 다시 방문할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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