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0. [인도네시아] Borobudur
인도네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무슬림을 보유한 국가이지만, 인도네시아 자바섬의 중부 마겔랑(Magelang)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불교 사원이 있다. 역사의 흐름에 따른 종교의 변화로 이해되지만, 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바로 보로부두르(Borobudur)이다. 심지어 캄보디아에 있는 앙코르와트(Angkor Wat)보다도 큰 규모이다. 요그야카르타(Yogyakarta)에 머물면서 아침마다 울려 퍼지는 아잔의 소리를 듣고, 거주지 곳곳에 모스크가 자리 잡은, 그리고 거의 모든 여성이 히잡을 둘러쓰고 다니는 지역에서 이질적 종교 문화를 마주할 수 있다는 점이 신기하기 그지없었다. 주변에는 프람바난(Prambanan)이라는 거대한 힌두교 사원까지 존재하고 있어 서로 다른 종교들이 공존하게 된 배경이 궁금했다. 물론 가장 큰 호기심은 보로부두르라는 이 거대한 사원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였다.
멀리서부터 보이는 보로부두르의 모습은 웅장함 그 자체였다. 이집트 카이로나 멕시코 테오티우아칸에 있는 피라미드에 갈 때 이런 감정을 기대하고 가겠구나 싶었다. 너무나 더운 날씨였지만 화창했던 덕에 건축물은 물론 조각상 모두를 꼼꼼하게 볼 수 있겠다는 기대감을 안고 발걸음을 옮겼다.
✔️ 보로부두르는 이슬람 국가 한복판에 살아 있는 불교 문명의 역사이자 문화재를 일으켜 세우기 위한 국제 협력의 상징적 모델이다.
✔️ 명칭: Borobudur
✔️ 홈페이지: https://borobudur.injourneydestination.id/
✔️ 주소: https://maps.app.goo.gl/5QtH9WK2wDB919nL8
이슬람 국가에 불교 사원이 존재하는 이유는 역사적 배경으로 살펴봐야 한다. 인도네시아는 일찍이 인도와의 교류가 있었던 덕에 5세기 경부터 상좌부 불교(대승불교)가 전파된 것으로 추정된다. 671년 당나라의 승려 의정(義淨)이 인도로 가는 길에 수마트라 팔렘방(Palembang)을 거점으로 건국된 스리위자야(Sriwijaya) 왕국에 약 6개월간 머물며 산스크리트어를 배우고 준비하였다는 기록에 근거한다. 동력선이 없던 당시에는 계절풍을 기다리며 체류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기간 동안 준비했던 것이다. 스리위자야는 인도와 중국을 잇는 해상 루트의 중간 기착지 역할을 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불교와 관련된 사람들과 지식이 모였을 것으로 보인다. 당시 의정은 팔렘방에 1천여 명에 이르는 승려들이 불법을 공부하고 있었다고 기록한다.
수마트라와 말레이 반도를 거점으로 성장한 스리위자야 왕국이 있었다면, 8세기부터는 자바섬 중부와 동부를 중심으로 마타람(Mataram) 왕국이 성장하기 시작했다. 보로부두르가 있는 바로 그 지역이다. 당시에는 불교계 세력인 샤일렌드라(Shailendra) 왕가와 힌두교계 세력인 산자야(Sanjaya) 왕가가 마타람 왕국 내에서 대립하고 있었는데, 서로의 세력이 강성할 때마다 왕가가 뒤바뀌었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배척하기보다는 공존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도 요그야카르타 주변으로 보로부두르, 멘둣(Mendut), 파원(Pawon) 등의 불교 사원과 프람바난(Prambanan), 삼비사리(Sambisari), 이조(Ijo) 등의 힌두교 사원이 나란히 세워져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두 종교가 대립하며 성장했기 때문일까? 불교 국가라 할 수 있었던 스리위자야 왕국보다, 불교와 힌두교가 공존했던 마타람 왕국에 보로부두르와 프람바난이라는 거대한 종교적 상징물이 남아있다.
샤일렌드라 왕조는 대승불교 세력을 등에 업고 8세기 중반에서 9세기 중반까지 약 100년 동안 마타람 왕국의 왕가로 존재하였다. 특히 8세기 후반에서 9세기 초반까지의 약 50여 년은 스리위자야 왕국까지 겸해 마타람-스리위자야 연합왕국을 이루고 해상 대제국을 이루었다. 이처럼 가장 강력한 치세에서 샤일렌드라 왕조는 보로부두르를 건설했다.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780년에서 840년 사이에 완공된 것으로 추정한다. 보로부두르라는 명칭도 여러 가지 유래가 있을 뿐 정설은 없다고 한다. 우리에게 흔히 알려진 것은 고대 산스크리트어 Vihara(사원) + Buddha(부처) + Uhr(고지)로부터 유래해 '언덕 위의 불교사원'이란 의미를 갖고 있다는 설이다. 또한 자바의 지명에서 왔다는 설도 존재한다. 서기 842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석판에는
Bhumisambharabhudara(부처의 열 단계의 덕이 있는 산)라는 용어가 나오는데, 보로부두르라는 이름은 이 용어의 뒤편 bharabhudara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이다.
보로부두르의 형태: 깨달음의 길을 형상화하다
사원을 위에서 내려다보면, 전통적인 불교 만다라(Mandala) 모양이다. 만다라는 '원'을 뜻하는 산스크리트어이며, 종교적 의식을 수행할 때 사용하는 정해진 양식 또는 규범에 따라 그려진 도형을 의미하는데, 이는 불교는 물론 힌두교 예술의 핵심 형상이다. 기본적인 형태는 네 개의 입구와 원형 중심점이 있는 정사각형으로, 외부에서부터 내부로 세 개의 의식 영역을 의미하고, 중앙의 구체는 무의식 또는 열반을 의미한다.
보로부두르는 불교 이론에 따라 여러 층으로 지어졌다. 불교 우주론에 따라 우주는 세 개의 주요 영역으로 나뉘는데, 3층으로 지어진 보로부두르의 각 층은 각각 카마다투(Kamadhatu), 루파다투(Rupadhatu), 아루파다투(Arupadhatu)를 의미한다. 첫 번째 층인 카마다투는 욕망을 조절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삶을 의미하고, 두 번째 층인 루파다투는 욕망을 조절할 수 있지만 여전히 형상에 얽매인 사람들을 의미한다. 세 번째 층인 아루파다투는 열반(涅槃; Nirvana)과 공(空; Sunyata)의 세계를 의미하는 것으로, 불교에서 말하는 최종 목표 중 하나이다. 즉 보로부두르를 오르는 것은 그 자체로 순례이자, 더 높은 차원의 깨달음으로 향하는 여정으로 설계한 것이다.
200만 개의 돌로 쌓아 올린 세계 최대의 단일 불교 건축물
보로부두르 규모는 압도적이다. 높이 35m에, 건축물 밑면 한 변의 길이는 118m으로 1.4헥타르에 달한다. 이집트 기자 평원에 있는 피라미드 중 세 번째로 큰 멘카우레(Menkaure) 피라미드의 밑면 108m보다도 더 큰 규모이다. 앙코르와트는 광대한 부지에 걸쳐 다양한 건축물들이 있어 단지 규모로 보면 앙코르와트가 클지 모르지만, 보로부두르는 피라미드 형태의 단일 건축물 그 자체로는 세계 최대의 불교 건축물이다.
총 200만 개 이상의 석재가 사용되었는데, 그 규모는 55,000m³가 넘는다. 모두 메라피 화산 인근에서 채취한 안산암(Andesite)이다. 더 놀라운 점은 시멘트나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고 맞춤 기술로만 쌓아 올렸다는 것이다. 20세기 들어 복원할 당시에는 이 방식을 채택할 수 없어 부득이 접착제를 사용하였다고 한다. 보로부두르 벽면에는 총 2,672개의 부조가 새겨져 있으며, 504개의 부처상, 72개의 스투파(사리탑; Stupa)가 존재한다.
첫 번째 층 카마다투에는 160개의 부조가 있는데, 현재는 모두 보로부두르 사원 박물관에 보존 중이다. 두 번째 층 루파다투는 총 328개의 불상과 1,300개의 부조로 이루어져 있는데, 총길이는 2.5km이며, 1,212개의 패널로 구성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층 아루파다투에는 총 72개의 스투파가 있고, 대부분의 스투파 안에는 불상이 자리 잡고 있다. 중앙에는 가장 큰 스투파(높이 42m, 지름 9.9m)가 위치한다.
10~11세기 무렵 인근에 있는 메라피(Merapi) 화산의 분화로 인해 보로부두르는 화산재에 묻혔다. 화산 폭발로 마타람 왕국의 거주민들이 자바섬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보로부두르는 자연스럽게 버려졌다. 특히 인도네시아가 점점 이슬람화 되면서 불교 성지로써의 기억은 잊힐 수밖에 없었다. 약 800년 간 잿더미 속에 잠들어 있던 보로부두르를 깨운 사람은 1814년 자바 총독으로 있던 영국의 스탬퍼드 래플스(Stamford Raffles)였다. 싱가포르의 개척자로 알려진 그가 당시에는 자바 총독으로 근무 중이었다. 그는 자바섬 내륙에 성소가 묻혀있다는 전승을 듣고 탐사를 지시한다. 1885년 감춰진 기단을 식별했고, 1890년에는 감춰진 기단 전체를 전수 촬영하면서 보로부두르는 공식화되었다.
20세기 들어 본격적인 복원이 시작되었는데, 1907년 네덜란드인 테오도르 반 에르프(Theodoor Van Erp)가 대규모 복원 작업을 시작하였고 1911년에 완료하였다. 이 복원은 이후 사원을 보호하는데 큰 역할을 했지만 복원 과정에서 많은 조각품들이 원래 위치로 돌아가지 못한 아쉬움이 남았다. 1956년 유네스코는 다른 전문가를 파견해 사원을 평가하였는데, 누수로 인한 피해가 심각해 사원 아래 언덕이 침식되어 기단과 부조까지 파괴될 위험이 있는 상황이었고, 사원의 장기적 보존을 위해서는 재복원이 필요하다고 결론 내렸다. 1968년부터 1983년까지 인도네시아 정부와 유네스코의 협력으로 2차 복원이 이루어졌는데, 이 당시 어쩔 수 없이 건축물 하단부를 석축으로 덮어버렸는데 이 때문에 현재는 아쉽게도 첫 번째 층 카마다투를 더 이상 보기 어렵다. 이 외에는 완벽한 복원 덕분에 보로부두르는 1991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다.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자주 분화하는 메라피 화산 덕에 2010년에도 보로부두르에는 다시 한번 화산재가 쌓이는 풍파를 겪는다.
보로부두르가 겪은 풍파는 화산뿐만이 아니었다. 504개의 불상 중 300개 이상의 불상이 훼손되어 있는데 대부분 머리가 없는 형태이다. 자연적 풍화와 파손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모든 피지배국가들이 겪었듯이 서구 열강의 약탈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불상 전체를 옮기기보다는 머리만 탈착하는 것이 쉬워 암시장에서 거래하기 좋았다고 한다. 그래서 당시 지배국이었던 네덜란드도 현재 14점의 불두(佛頭)를 보관 중이다. 또한 네덜란드는 1896년 시암(태국) 국왕의 방문 때 보로부두르 조각을 공식적 선물로 제공하기도 했고, 그 조각들이 현재 방콕에 있는 국립박물관에 전시되어 있기도 하다.
유네스코는 발굴과 복원 당시부터 보로부두르의 가치를 매우 높게 평가했다. 인도네시아 정부와 함께 보로부두르 보존 캠페인(Save Borobudur Campaign)을 시작하였는데, 국제협력 복원사업 중 가장 성공적인 모델로 꼽힌다. 단순한 문화재 복원이 아니라 세계유산 보호라는 개념을 실질화한 첫 대규모 국제 프로젝트이자, 훗날 유네스코 세계유산 제도가 탄생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1968년 인도네시아 정부는 유네스코에 보로부두르 복원 기술 지원을 요청하였는데, 부분 보수로는 한계가 있다고 평가한 유네스코는 보로부두르 종합 보존 프로젝트를 공식 안건으로 채택하여 1973년 캠페인을 시작했다. 복원 공사에는 직간접적으로 일본, 독일, 미국, 프랑스 등 총 27개국과 유네스코는 물론 유엔개발계획(UNDP) 등 5개의 국제단체가 참여한 대규모 국제 협력사업이었다.
1983년 복원이 마무리되었고, 당시 유네스코 사무총장은 보로부두르는 세계인의 협력이 만들어낸 평화의 상징이라 선언하기도 하였다. 복원 후 8년간의 공사 데이터를 종합해 공식 보고서(The Restoration of Borobudur)를 출간하여 역사적 기록은 물론, 대규모 복원사업의 매뉴얼과 같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실제로 앙코르 와트, 아부심벨, 모헨조다로 등 대형 보존 프로젝트의 청사진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성공적인 복원 작업 덕분에 1991년 'Borobudur Temple Compounds'라는 이름으로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되었다.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먼저 등재된 세계유산이었고, 동아시아(한국, 중국, 일본)에서도 1987년 등재된 만리장성 정도 밖에는 세계유산이 없었던 시기였다. 이는 동남아시아의 불교문화가 세계유산으로 공식 인정받는 전환점도 되어 1992년 앙코르 와트, 2019년 미얀마의 버간 유적지도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Epilogue 1. 불교 사원으로 견학 오는 무슬림
종교가 다를지라도 역사적 가치가 높은 건축물에 대한 국가적 보존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가장 신기했던 점은 무슬림 학생들이 보로부두르로 견학을 온다는 점이다. 내가 갔던 당시에도 정말 많은 수의 학생들이 견학을 와 있었는데, 히잡과 같은 복장에서 그들이 무슬림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전혀 배타적으로 대한다는 인상을 받지 못했고, 우리가 불국사와 석굴암에 수학여행을 가서 마주하는 학생들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다른 어떤 이슬람 국가보다 유연하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인도네시아는 이질적 종교가 어떻게 공존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모범 국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쿠란의 가르침도, 이슬람의 문화도 잘 모르지만 흔하게 알고 있는 엄격한 모습의 이슬람이 아닌, 인도네시아와 같은 유연한 이슬람의 모습이 보다 모든 종교인들 간 공생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식이 아닐까 싶었다.
Epilogue 2. 세계 3대 불교 사원
소위 세계 3대 불교 사원이라 하면, 여기에 소개한 보로부두르와 더불어, 캄보디아의 앙코르 와트(Angkor Wat), 미얀마의 버간(Bagan) 유적지를 꼽는다. 막연하게 가고 싶었던 곳 중 하나를 경험하고 나니 반드시 모두 가봐야겠다는 의지가 솟구친다.
캄보디아 앙코르 와트(Angkor Wat) https://maps.app.goo.gl/B3DNSyvf8c8ZT5SA8
미얀마 버간(Bagan) 유적지 https://maps.app.goo.gl/ZnnLcnqVZsSr5GKD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