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5. [인도네시아] Museum Batik Yogyakarta
바틱에어(Batik Air)라는 인도네시아 항공사가 있다. 나도 말레이시아를 갈 때 바틱에어를 이용해 본 적 있다. 당시에는 바틱이 무슨 의미일지 찾아보지 않았었지만, 인도네시아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명칭에서 바틱을 사용하는 곳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Batik Music Festival, Solo Batik Canival과 같은 축제가 있고, 수라카르타(Surakarta)의 버스 서비스는 Batik Solo Trans, 국가기념일로 National Batik Day(10월 2일)까지 존재하였다. 바틱이 무엇일지 궁금해졌다. 바틱은 인도네시아 전통 염색 기법이자 그 결과물인 직물과 문양을 통칭하는 말이다.
마침 여행을 결정한 요그야카르타에 바틱 박물관(Museum Batik Yogyakarta)이 있어 방문하였다. 뿐만 아니라 소노부도요 박물관(Museum Sonobudoyo)과 술탄의 궁전인 크라톤(Kraton)에서도 바틱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었고, 여행자 거리 말리오보로(Malioboro)에도 바틱을 판매하는 상점이 꽤나 많았다. 왜 인도네시아는 바틱에 이토록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지, 유네스코는 왜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하였는지 궁금해졌다. 우리나라에서는 한복을 평상복으로 입지 않지만, 인도네시아인들은 왜 여전히 일상에서도 바틱을 입는지까지도 찾아본 결과를 남겨보고자 한다.
✔️ 바틱은 인도네시아의 전통 문화유산이지만 지금도 일상 속에서 사랑받는 생활 문화유산이다.
✔️ 명칭: Museum Batik Yogyakarta
✔️ 홈페이지: https://www.museumbatik.com/
✔️ 주소: https://maps.app.goo.gl/ZpSeaCRh6C1wq9Ff8
상술했듯이 바틱은 인도네시아를 중심으로 발전한 전통 염색 기법이자 그 결과물인 직물과 문양을 통칭하는 말이다. 면이나 실크 천 위에 뜨거운 왁스를 사용해 무늬를 그리거나 찍은 뒤 염색을 하고, 왁스를 제거함으로써 염색이 되지 않은 부분이 무늬로 드러나게 하는 왁스 저항 염색(Wax-resist dyeing) 방식이다. 이 방식으로 제작된 천을 보통 바틱 직물이라 부르며, 디자인과 색채, 무늬 등이 매우 독특하고 다양해 바틱으로써의 정체성이 분명하다는 특징이 있다.
바틱의 문양은 워낙 다양해서 분류가 의미 없을 수 있지만, 지역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인다. 왕실이 존재했던 중부 자바의 요그야카르타와 수라카르타 등은 특정 무늬가 왕실 전용으로 지정되어 일반 대중이 착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절제된 형태의 상징성이 강한 문양이 대부분이다. 기하학적 디자인, 동일한 모티브의 반복, 단조로운 색을 선호하고, 새로운 디자인의 유입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다. 반면 다른 지역의 바틱은 보다 화려한 색채와 외래 무늬까지도 수용하면서 다채로운 문양을 가지게 되었다. 이슬람의 영향으로 아랍식 캘리그래피, 인도와 페르시아의 영향으로 공작이나 코끼리 그림, 네덜란드의 영향으로 꽃, 집, 자전거 그림, 중국으로부터는 용이나 불사조와 같은 모티브가 유입되었다.
바틱은 제작방식에 따라 손으로 그린 바틱 툴리스(Batik Tulis)와 동판을 이용해 찍는 바틱 캡(Batik Cap)으로 구분할 수 있다. 바틱 툴리스가 전통적인 방법이고 숙련된 장인이 제작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가장 훌륭한 형태로 인정된다. 어디서든 핸드메이드(Hand-made)가 높은 가치로 인정받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반면 바틱 캡은 효율적인 제작을 위해 사용하는 방식이다. 물론 현대에 와서는 인쇄를 통해 대량 생산하기도 한다.
바틱 기법의 기원에 대해서는 정확한 정보를 찾기 어려웠다. 바틱은 자바어로 점이나 얼룩이 있는 천이라는 의미의 암바틱(Ambatik)에서 유래한 용어이다. 13세기에서 16세기 경 자바섬 중부에서 번성했던 마자파힛(Majapahit) 제국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근대 이전에 바틱은 왕실 예술이었기 때문에 왕실 인사의 의복을 제작하기 방법이었으나, 왕실의 고위 인사들이 왕실 밖으로 드나들면서 대중의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초기에는 술탄이 존재하는 요그야카르타 등 자바 중부 지역을 중심으로 발전하였고, 다른 지역에서는 대중들이 이를 자유롭게 모방하면서 보다 다채롭게 발전하였다. 대중화되면서 주부들은 여가시간에 바틱 제작에 힘을 쏟기도 했다. 식민지 체제 하에서 19세기말부터 바틱은 유럽 및 국제시장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초기 바틱 툴리스 방식에서 점차 바틱 캡 방식, 합성염료의 사용, 대량 인쇄 방식으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서구의 영향력이 강화된 20세기 초반부터는 바틱의 위상이 약해지기도 하였다. 서구문화가 선호되고 전통은 경시되는 상황에서 초대 대통령인 수카르노마저 공식 석상에서 서구식 복장을 고집하면서 이 경향성을 강화시켰다. 1970년대 들어 수하르토 정권은 바틱을 포함한 전통예술 부흥에 힘을 쏟았다. 바틱을 공식 복장으로 인정하며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들이 바틱 셔츠를 입기 시작하였고, 이는 모든 인도네시아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현재 인도네시아인들에게 바틱이 전통 의복이자 일상복으로 녹아들게 된 계기가 되었다.
유네스코는 2009년 10월 2일 인도네시아 바틱을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하였다. 왕실은 물론이거니와 일반 대중들도 신생아 옷부터 장례용 천, 일상복 전반에 사용하는 등 인도네시아인의 삶 전반에 깊이 관여하는 기술이자 문화적 표현이라 보았기 때문이다. 또한 그 제작방식과 문양의 독특함에는 인도네시아의 정체성이 담겨 있고, 지역사회에서 세대 간 전승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단지 전통적 생산품이라기보다는 인도네시아의 국가 정체성과 문화적 브랜드, 산업자원으로써 분명하게 기능하고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유네스코에 등재된 10월 2일을 국가 기념일(Hari Batik Nasional)로 지정하였다. 이 날에는 정부기관, 학교, 기업 등에서 바틱 의상 착용을 권장하며, 바틱의 다양성과 역사에 대한 전시, 체험행사 등을 개최한다. 이를 계기로 정부 등 많은 기관에서는 매주 금요일을 바틱 착용의 날로 지정하여 일상 속에서도 바틱을 입도록 유도하고 있다.
하지만 문화유산 등재과정에서 말레이시아와의 분쟁도 있었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는 언어, 인종, 문화적 역사를 상당 부분 공유하기 때문에 바틱의 기원이나 소유권과 관련해서도 분쟁이 있어 왔다. 대한민국의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강릉단오제가 중국과의 문화적 분쟁을 촉발시켰던 것과 유사한 상황이다. 말레이시아가 먼저 바틱을 유네스코 유산에 등재하려 한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인도네시아는 이를 막기 위해 서둘러 유네스코에 무형문화유산으로 신청하였고 등재에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유네스코가 바틱을 오롯이 인도네시아만의 유산으로 인정한 것은 아니다. 바틱을 기술적으로 가장 발전시키고, 가장 광범위하게 이용하고, 보호 노력이 가장 활발한 곳이 인도네시아이다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평상시 한복을 입은 모습을 거의 보기 어렵다. 설과 추석 때조차도 마찬가지이다. 점점 일상 속에서는 멀어지고 전통으로만 남는 것 같다. 하지만 인도네시아에서 바틱은 일상 속에 깊이 들어와 있다. 바틱 의상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을 길거리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으며, 항공과 철도 승무원들도 바틱을 유니폼으로 채택하고 있다. 요그야카르타의 여행자 거리인 말리오보로에는 바틱 전문 의류매장이 줄지어 있고, 시내 곳곳에 로드샵도 있고, 쇼핑몰 내에도 바틱 매장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전통복장인 만큼 고령층만 입는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젊은 친구들도 입고 다니는 것을 적지 않게 보았다. 즉 우리의 한복이나 일본의 기모노, 중국의 치파오가 특정 시기나 특정 행사 때 민족성을 드러내는 복식인 반면, 바틱은 인도네시아의 일상에 자리 잡은 현실적 복장인 것이다.
무엇이 전통패션을 일상에 녹아들게 했을까? 무엇보다 편의성과 실용성이 뛰어나다. 열대기후인 인도네시아에서는 얇고 가벼우며, 통기성이 좋은 소재, 그리고 세탁이 용이한 재질이 사랑받을 수밖에 없는데, 이런 면에서 바틱은 더할 나위 없이 최적의 기능성 소재이다. 재질을 만져보는 순간 한국의 여름에도 너무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어 나도 두 벌을 충동구매하고 말았다. 두 번째로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인식 속에 바틱은 정장과 같은 격식과 캐주얼 의류와 같은 대중성의 균형을 갖추고 있다. 정부 고위인사들이 공식 석상에서 바틱 의상을 입기도 하고, 왕실의 결혼식에서도 입는 등 격식을 지닌 복장임에 분명하다. 그런데 대중들도 일상에서 편안하게 바틱을 입고, 다수의 공공기관과 기업에서 매달 바틱 데이를 운영하며 캐주얼한 복장으로 출근해도 된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처럼 대중성도 분명하게 지니고 있다. 세 번째로 가격대와 디자인의 다양성이다. 장인이 손으로 그리며 만든 바틱 툴리스 방식은 매우 고가이지만(우리 화폐 가치로 10~20만 원이 훌쩍 넘는 것들도 많다), 바틱 캡 방식이나 인쇄된 바틱은 대량 생산이 가능해 매우 저렴하다(1만 원 이하 의류들도 많다). 또한 디자인이 워낙 다양하고, 최근에는 현대적 패턴으로 재해석한 제품들이 출시되면서 젊은 세대들에게도 사랑받는 아이템이 있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바틱은 국가 동질성을 연결시키는 매개체이다. 수없이 많은 섬으로 이루어진 국가이기 때문에 지리적 분절감이 있고, 2억 8천만 명에 이르는 대규모 인구와 인종, 종교, 역사적 배경의 다양성으로 인해 한 국가의 국민이라는 동질성을 느끼게 할 필요성이 있는데, 그 매개체 중의 하나가 바틱인 것이다. 요약하자면, 열대기후에 적합한 실용성, 포멀함과 대중성을 넘나드는 유연함, 디자인과 가격대의 다양성, 국가 동질감의 매개체 역할 등이 바틱을 일상 속에 자리 잡게 했다고 볼 수 있다.
Epilogue
요그야카르타의 바틱 박물관은 판매와 체험을 하는 상업적 공간이다. 장인이 만든 고가의 바틱 툴리스 의류를 구매할 목적이거나 직접 체험을 해보고 싶다거나 다양한 바틱 문양과 동판, 캔팅 도구들을 보고 싶다면 추천할 수 있지만, 역사적, 문화적 관심으로 방문한다면 실망할 수 있다. 이럴 경우에는 소노부도요 박물관이나 크라톤 왕궁 내 왕실 바틱 박물관으로 향하길 바란다. 또는 자카르타나 페칼롱안 지역에 가면 교육적 목적의 박물관이 있다.
1. Museum Batik Indonesia https://maps.app.goo.gl/e16st3WFpzZcjT4t6
2. Museum Batik Pekalongan https://maps.app.goo.gl/mwuRd1WC2vNnRxN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