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 [호주] WA Shipwrecks Museum
서호주는 언젠간 꼭 다시 한번 가고 싶은 곳이다. 아름다운 대자연과 한적한 분위기, 친절한 사람들까지 말 그대로 여행할 맛이 나는 지역이다. 여기서도 박물관 몇 곳을 다녀왔지만 그중 단연 기억에 남는 특별한 박물관이 있었다. 서호주 프리맨틀(Fremantle)의 화창한 날씨를 즐기며 산책하던 중 우연히 건물 앞에 자리한 커다란 닻 하나가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유명한 항구도시를 상징하는 구조물이라기에는 분위기가 묘하게 진지했다. 바로 그곳이 서호주 난파선 박물관(WA Shipwrecks Museum)이었다.
'난파선'이라니 주제 자체가 흥미롭지 않은가?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이야기할지 알지 못한 채 들어갔지만, 바닷속에서 건져 올린 오래된 선박의 잔해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왠지 모르게 기대가 됐다. 입장은 무료였고, 내가 만족한 만큼 소액을 기부했다.
✔️ 유럽의 제국주의 역사에 숨겨진 실패의 흔적을 난파선을 통해 만나보다.
✔️ 명칭: WA Shipwrecks Museum
✔️ 홈페이지: https://visit.museum.wa.gov.au/shipwrecks
✔️ 주소: https://maps.app.goo.gl/yMfmgJ9i7Cjjeqx98
서호주는 유럽 제국주의 항해 노선의 길목에 있었다. 유럽에서 동남아시아 또는 동아시아로 향하는 배들의 대부분은 말레이시아 말라카 또는 인도네시아 바타비아(현재 자카르타)를 목적지로 하거나 이를 경유하였다. 이 항로가 개척되기 전에는 서호주 지역을 경유해야 했다. 당시 부정확한 항해 지도로는 암초를 모두 피해 다닐 수 없었고, 강한 조류나 태풍을 만나는 일도 잦아 난파는 흔한 일이었다. 16~18세기 향신료와 도자기, 은화 등을 무역하기 위해 오갔던 영국과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배들이 가장 많은 풍파를 겪었다. 특별히 난파가 많았다기보다는 그만큼 많은 동인도회사의 배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서호주박물관(WA Museum)의 난파선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총 1,650척 이상의 난파선이 서호주에서 발견되었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Zuytdorp(1712)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상선으로 1711년 8월 네덜란드에서 출항해 다량의 은화(약 25만 개)를 싣고 인도네시아 바타비아로 가던 길에 1712년 현재의 Zuytdorp Cliffs 인근 암초에 부딪혀 난파되었다. 생존자나 구조에 대한 기록은 없고, 지역 주민에 의해 일부 유물이 발견되기 시작하면서 1964년 본격 발굴이 진행되었다. Zuytdorp Cliffs는 난파선의 이름을 따 명명된 곳이다.
Zeewijk(1727) 이 역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상선으로 1726년 11월 208명의 선원과 건축 자재, 은화, 무기 등을 싣고 인도네시아 바타비아로 향하던 길에 1727년 6월 Abrolhos 제도의 Half moon reef에 의해 좌초되었다. 일부는 사망하였으나, 생존자들은 인근 섬에서 맹그로브 나무로 보트를 만들어 1728년 바타비아에 도착하였고, 최종 82명이 생환했다고 한다. 1840년 영국 탐험대가 유물을 발견하였고, 1952년과 1968년 공식 조사를 진행하였다.
SS Xantho(1872) 스코틀랜드 철제 증기선으로 프리맨틀-바타비아 항로의 승객 및 화물 수송용으로 사용되었는데, 1872년 노후된 선체에서 누수가 발생해 침몰했다. 1979년 난파 지점이 최초로 확인되었고, 1983년 본적적인 조사에 착수하였다. 박물관에 따르면 이 배는 세계 유일의 군함용 트렁크 엔진을 사용하였는데, 현존하는 유일 사례라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한다. 박물관에서 이 엔진을 복원하여 전시하고 있다.
가장 유명한 난파선이 바로 인도네시아 지명과 동일한 바타비아(Batavia)이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이 대형 상선은 1629년 6월 Abrolhos 제도 앞바다에서 난파되었다. 대부분이 인근 산호섬에 올라 가까스로 생명은 구했지만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선장이 70여 명의 인원을 데리고 구조를 위해 이 섬을 먼저 떠난 사이, 남겨진 생존자들은 예로니무스 코르넬리스(Jeronimus Cornelisz)를 지도자로 선출하였다. 하지만 그는 생존자 모두의 생명에는 관심이 없었다. 부족한 식량을 나누면 모두가 함께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해 식량과 무기를 장악해 선원들을 살육하기 시작했다. 명령에 거부했다는 이유로, 열병에 걸렸다는 이유로 살인을 시작하더니, 충성심을 시험하기 위해 살인을 강요하는 단계까지 나아갔다. 결국 9월에 선장이 돌아와 코르넬리스를 교수형에 처한 뒤 이 참사는 마무리되었지만, 이미 120여 명이 무참히 살해당한 뒤였다. 역사학자 마이크 대시(Mike Dash)는 이 과정을 상세히 집필해 <Batavia's Graveyard(한국어 번역판은 '미친 항해')>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 잔해는 1963년 발견되었고, 약 20여 년에 걸쳐 수습 및 복원되었다. 박물관에는 수습된 선체의 일부와 당시 사용하던 대포, 도자기, 동전 및 생존자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 박물관은 단순히 난파선의 잔해와 기록을 담은 곳만은 아니다. 난파선 덕분에 유럽 제국주의의 역사까지 되짚어본 계기가 되었다. 우리에게는 유럽의 제국주의 확장과 식민국가의 피해만이 인식되어 있지만, 난파선의 역사를 보면 식민주의적 야망이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일으켰는지, 그리고 그들의 제국주의 이면에 있는 실패의 상징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인식하게 해 준다.
Batavia의 비극은 단지 한 척의 배가 좌초했다는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 꿈을 안고 Bavatia에 승선했지만 학살당한 수많은 사람들의 흔적이 남아 있었고, 극한에 몰린 사람들의 윤리적 태도까지 비판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기 때문이다. 문명 밖 바다에서는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호주는 제국주의 국가가 아니었지만, 파손된 선체, 깨진 도자기, 녹슨 닻과 대포, 생존자들의 증언 등 유럽의 실패한 파편을 박물관에 기록했다. 실패로부터 배울 수 있다는 교훈을 당당하게 말하는 듯하다. 역사적 성공의 기록을 담아내는 대부분의 박물관들과는 달리, 이 박물관은 실패의 흔적을 역사적 콘텐츠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매우 특별하다.
우리나라에 거의 유일하게 실패의 역사를 담은 곳도 떠올랐다. 거제시에 있는 칠천량 해전공원이다. 이순신 장군의 승전만 주목하는 수많은 박물관들과 달리, 원균의 무능으로 발생한 대참패를 기록해 둔 공간이다. 이와 같은 실패의 흔적도 잊지 않고 교훈으로 삼을 수 있도록 더 많은 박물관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박물관을 계기로 난파선 박물관이 더 있는지 찾아보았다. 해양박물관은 수없이 많고, 그 안에서 난파선을 다루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이보다 훨씬 많은 박물관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는 난파선만을 중심으로 다룬 박물관을 리스트업 한다. 언젠간 한번 가보겠다는 심정으로.
1) Shipwreck and Beachcombing Museum Flora https://maps.app.goo.gl/EYyeHLJPVsGCVM5d8
2) Shipwreck Museum https://maps.app.goo.gl/RU4Jq3XSA3va8WMf8
3) Great Lakes Shipwreck Museum https://maps.app.goo.gl/FBFfFK4CkLkMHN888
4) Key West Shipwreck Museum https://maps.app.goo.gl/KfHoMuTJvkgYzhK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