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무게로 기록한 제1∙2차 세계대전

#006. [오스트리아] Museum of Military History

by Muse u mad

독일을 여행하다 보면 그들이 얼마나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해 처절하게 반성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다. 베를린 도시 한복판에 유대인 추모비가 있고, 나치의 참상을 숨기지도 않고, 독일 총리는 때마다 고개 숙여 사과한다. 뿐만 아니라 독일 내에만 유대인 및 홀로코스트 관련 박물관이 17곳이 있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그래서 전범국 일본이 항상 비교대상이 된다.

오스트리아를 여행하다 보니 문득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으로 분류되는 오스트리아는 역사적 반성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공식적으로 오스트리아는 나치(Nazi)에 점령당한 첫 번째 국가이자, 포츠담 회담(1945)을 통해 전범국으로써의 배상을 면제받기는 했다. 하지만 그 이후 연합국은 오스트리아에 전범 처리와 관련한 법률을 만들도록 명령했지만, 오히려 많은 전범들이 사면을 받거나 석방되었다. 그리고 모든 배상의 책임을 독일에 떠넘겼다. 이처럼 일본과 유사한 행태를 보여왔던 이 나라의 군사사 박물관(Museum of Military History)을 보면 그 실체를 알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았다.




한 줄 요약

✔️ 제2차 세계대전 전범국으로써의 반성을 확인하지 못한 군사사 박물관에서 오스트리아가 바라보는 제1∙2차 세계대전의 인식 차이를 확인하다.


박물관 개요

✔️ 명칭: Museum of Military History (독일어: Heeresgeschichtliches Museum; HGM)

✔️ 홈페이지: https://www.hgm.at/

✔️ 주소: https://maps.app.goo.gl/7tVM7v5A23hixVwLA




자부심이 묻어나는 전시의 시작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부터 전시가 시작된다. 전시실에는 1683년 제2차 빈 공성전에서 오스만 제국을 물리친 합스부르크 왕가의 자랑스러움이 묻어난다. 여기서 막아내지 못했다면, 서유럽 전체로 침략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터라 그 자부심은 가질만해 보였다. 신성로마제국과 폴란드 등의 도움이 없었다면 승리할 수 없었던 전투였지만, 그 기록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이외에도 나폴레옹과의 전투 등 다양한 전쟁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었지만, 크게 관심이 없던 터라 잘 기억에 남지 않았다. 마리아 테레지아(Maria Theresa)라는 걸출한 황후가 있었지만, 그 이후 합스부르크 왕가는 몰락의 역사를 걷기 시작했기 때문에 박물관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전시실의 구성과 내용 모두 나를 사로잡지 못했던 것 같다. 제1∙2차 세계대전을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가 궁금해 빠르게 발걸음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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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제2차 빈 공성전을 묘사한 회화, 당시 갑옷과 무기 (출처: 박물관 홈페이지 및 본인)




생생하게 흐름을 기록한 제1차 세계대전

제1차 세계대전을 다룬 공간으로 들어오면서부터 눈길을 확 사로잡는 전시물이 있었다. 1914년 사라예보 총격 사건에 대한 전시물이었다. 프란츠 요제프 1세(Franz Joseph I.)의 후계자인 프란츠 페르디난트(Franz Ferdinand) 대공이 총격을 입을 당시 탔던 자동차와 옷, 암살범 가브릴로 프린치프(gavrilo princip)가 사용했던 권총, 당시 총격 현장의 지도와 사진, 관련 신문기사들까지 생생하게 담겨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이 한 발의 총성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하고 있었다. 사실 이 총성은 하나의 트리거였을 뿐 이미 유럽 열강 사이의 제국주의 경쟁과 민족주의 발흥이 전쟁의 본질임은 두말할 필요 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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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총격 현장 지도, 총격 당시 실제 입었던 옷, 실제 탔던 자동차


이외에도 당시 사용하던 야포와 포탄, 전투기는 물론, 공격받은 흔적이 남아 있는 벙커까지 다양한 전시물을 통해 제1차 세계대전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전쟁기간(1914~1918) 동안 동맹국과 협상국 간의 영토 지도, 발발한 전투 지도까지 전쟁의 흐름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전쟁에 대한 반성까지는 찾아볼 수 없었고 역사적 사실을 아주 건조하게 보여주기만 한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제1차 세계대전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충분히 추천할만한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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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전쟁 당시의 지도, 야포, 전투기, 포격 흔적




오스트리아는 제2차 세계대전의 피해자인가?

제2차 세계대전도 궁금해졌다. <1918~1945년: 공화국과 독재>란 이름의 전시실에 포함되어 있었다. 나치가 오스트리아를 병합한 안슐루스(Anschluss) 관련 기록물로부터 시작해 당시 사용했던 다양한 무기들, 스탈린그라드 전투, 빈 공습 등에 대해 전시하고 있었다. 홀로코스트에 대한 언급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 전시실과 비교해 공간도, 전시물의 수도 매우 적었다. 박물관을 나온 뒤 홈페이지도 찾아봤지만,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설명도 제1차 세계대전에 비하면 상세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제1차 세계대전도 승전국과 패전국이 있지만, 패전국만의 귀책사유가 있다고 보기는 어려운 전쟁이다. 모든 유럽국가가 제국주의 물결에 휩싸여 있었고, 민족주의적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다 보니 서로 간의 이해관계로 묶인 협상국(영국, 프랑스, 러시아)과 동맹국(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이탈리아) 간의 대립이 직접적인 전쟁의 배경이었다.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승전국과 패전국 모두 제국주의라는 폭력적 지배이념과 상호 민족적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한 귀책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은 추축국(독일, 이탈리아, 일본)이 분명한 원인을 제공한 전쟁이다. 특히 나치 독일은 유대인을 비롯해 집시, 장애인 등 엄청난 학살을 저지른 만행으로 지금까지도 역사 앞에 고개를 숙이고 있다. 그렇다면 오스트리아는 어떤 위치였는가? 전쟁 전에 이미 독일에 강제 병합을 당했기 때문에 오스트리아 또한 독일의 한 세력으로써 참전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다만 강제 병합의 이력 때문에 오스트리아는 스스로를 '피해자'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포츠담 회담에서 전범국으로써의 배상을 면제받기도 했고, 1943년 연합국 측은 강제 병합이 무효라 선언하기도 했다.

오스트리아가 피해자라는 주장은 과연 사실일까? 1938년 병합 당시 독일군은 오스트리아 국민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는데, 국민들이 환영한 덕에 '꽃의 전쟁'이라 불릴 정도로 무혈입성이었다. 당시 7백만 명의 오스트리아인 가운데 약 55만 명이 나치 당원일 정도로 나치는 오스트리아에게도 경외심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오스트리아인인 히틀러가 고국으로 돌아왔으니 금의환향이기도 했다. 지지를 했던 만큼 충성심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을까, 오스트리아는 나치 독일 못지않은 악랄한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이히만의 재판'으로 유명한 아돌프 아이히만(Adolf Eichmann)도 오스트리아 출신이고, 나치 독일의 비밀경찰조직인 게슈타포의 수장이자 독일군 총사령관까지 지냈던 에른스트 칼덴브루너(Ernst Kaltenbrunner)도 오스트리아인이다. 나치 친위대 소속 말살부대원의 3분의 1이 오스트리아인이었고, 그들은 6개의 죽음의 수용소 중 4곳을 통제했으며, 6백만 명의 유대인 희생자 가운데 거의 절반을 살해하는데 크고 작은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들 역시 강력한 반유대주의자였고, 책임을 회피할 수 없는 것이 분명한 사실이다.




전시실의 차이는 역사 인식의 차이가 아닐까?

오스트리아는 여전히 제2차 세계대전의 피해자 내러티브를 고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전쟁에 대한 책임의식을 독일만큼 강하게 갖고 있지 않고, 이를 잘 드러내지도 않는다. 이러한 역사 인식이 이 박물관의 전시실에도 그대로 드러나 있다. 역사적 팩트상 제1차 세계대전은 오스트리아만을 전범국으로 몰기 어려운 반면, 제2차 세계대전은 전범국이 분명하기 때문에 전시실에도 차이를 둔 것 아닌가 싶다. 역사를 사실대로 기록하면 오스트리아 또한 명백한 전범국임을 밝히는 꼴인 것이다. 일본과 다르게 최근에는 반성과 재평가의 목소리도 있다고 하지만, 박물관만 보고 온 나에게는 그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은 아쉬움을 남겼다.

물론 이 박물관이 전쟁 역사에 대한 반성을 목적으로 설립된 것은 아니다. 이미 19세기 중반에 건립되어 합스부르크 왕가의 군사적 영광을 기록하고자 했던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무너진 제국과 전쟁의 역사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박물관 또한 시대적 관점을 반영하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선택적으로만 기억하는 공간이 아니어야 한다는 말이다.




Appendix. 제2차 세계대전 관련 박물관

이 기회에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어떤 박물관이 있을지 찾아보았다. 역사적 반성이 분명한 독일, 가장 큰 피해를 입은 폴란드 두 곳을 기록에 남겨둔다. 특히 독일의 나치당사 박물관은 나치의 본산인 뮌헨에서 가해자의 시선으로 자국의 과오를 반성하는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원폭 피해를 입은 일본의 히로시마 평화기념자료관도 있지만, 여기는 100% 피해자 입장만을 견지하는 곳이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보기 어려워 제외한다.


1. 독일 나치당사 박물관 (NS-Dokumentationszentrum München)

https://maps.app.goo.gl/2DUhTqbSHg6uagLW7


2. 제2차 세계대전 박물관 (Muzeum II Wojny Światowej w Gdańsku)

https://maps.app.goo.gl/cNno5XhCjBZyasU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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