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 [호주] Sydney Jewish Museum
시드니에서도 유대인들이 건립한 박물관을 마주했다. 처음에 든 생각은 '전 세계에 참 많이도 세운다'였다. 그들의 디아스포라(Diaspora)와 홀로코스트(Holocaust) 역사를 모르는 바 아니고, 다시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역사적 기억을 유지하는 공간도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이렇게까지 노력하는 민족이 또 있나 싶다. 물론 그들이 고통받은 단면만 보면 얼마든지 지지 입장을 보내지만, 국제사회에서 유대인이 보이는 최근의 행태는 세계인의 인권이 아닌 자신들만의 인권이 중요하다고 외치는 것 같아 씁쓸한 기분이 든다. 피해자로서의 정체성(유대인들도 스스로 Holocaust Mentality라 칭함)이 때로는 자기 방어적 태도로, 때로는 약한 상대에게 공격적으로 변하는 역설적 상황을 만들어 내는 것 같다. 이스라엘 내 반전 여론도 상당하기 때문에 모든 유대인에게 일반화하려는 것은 물론 아니다.
이런 복잡한 심정을 느끼고 있던 차에 Sydney Jewish Museum을 마주했고, 그들은 무엇을, 어떻게, 어떤 목적으로 기록해 두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인권과 역사적 책임이라는 주제를 유대인 테두리 안에 가두었는지, 아니면 확장된 시각으로 풀어냈는지, 그리고 그들의 현재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있는지 궁금해 이 박물관 앞에 멈춰 섰다.
✔️ 유대인만의 테두리 안에서 인류 보편적 미래를 말하는 곳
✔️ 명칭: Sydney Jewish Museum
✔️ 홈페이지: https://sydneyjewishmuseum.com.au/
✔️ 주소: https://maps.app.goo.gl/cUTbnDCncE8KtV8T7
영국 본토에서 이주해 온 죄수들로 시작된 호주의 역사는 잘 알 것이다. 영국에서도 핍박받았던 유대인 죄수들의 이주가 첫 시작이었고, 골드러시로 인해 더 많은 유대인들의 이주가 이루어졌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이 대거 호주로 이주했다. 1946년부터 1961년까지 무려 26,000여 명의 유대인이 호주로 이주해 시드니에는 이스라엘 다음으로 많은 생존자가 정착했다고 박물관은 말해준다. 호주는 다문화, 다인종 국가로 형성되었기 때문에 유대인들 역시 새로운 삶을 안정적으로 개척할 수 있었고, 전 세계 어디나 마찬가지로 그들은 공동체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1992년 이 박물관을 설립했다.
유대인은 그들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기 위한 수단으로 박물관을 선택했다. 단순히 전시물을 보여주는 공간만이 아니라 교육적 기능과 민족 커뮤니티로써 기능도 함께 할 수 있으니 꽤나 괜찮은 방법으로 보인다. 그 노력으로 전 세계에 유대인 및 홀로코스트 관련 박물관은 총 168곳에 달한다. 미국에 무려 42개가 있고, 이스라엘 29개, 독일 17개 등 총 41개국에 산재해 있다. 한국에는 아직 없지만, 중국, 홍콩, 일본 등 유대인 인구가 얼마 없는 동아시아에도 존재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박물관의 필요성은 충분히 공감하지만, 이렇게까지 많을 필요가 있는지에 대한 의문은 박물관을 나설 때까지 풀리지 않았다. 그들의 과거에서 비롯된 현재 세대에 대한 죄책감, 선조들의 고통을 의미 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의무감, 누구보다 역사적 기억을 기록하고 기념하고자 하는 민족적 특성 등이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극히 현실적인 두 가지 가설을 떠올려본다.
첫째, 감소하는 유대교 인구와 낡아가는 회당들에 대한 대응일 수 있다. 실제로 시드니 유대인 박물관은 원래 유대교 회당이었다. 유대 공동체는 회당의 종교적 기능이 약해진 자리에 박물관을 세움으로써 사회적·문화적 중심 공간으로 탈바꿈시키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보다 중요한 두 번째 이유는 유대인이 겪은 디아스포라와 홀로코스트가 인류의 보편적 과제와 맞닿아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유대인만의 고통을 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권, 정의, 반전(反戰), 차별 금지 등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가치로 담론을 확장해 왔다. 이는 단지 역사교육의 기능을 넘어서 박물관이 국가와 사회가 공적으로 책임지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해 준다. 유대교 회당이거나 유대인만의 주제를 다룰 경우 그것은 ‘민족적 공간’에 머물지만, 보편적 의제를 전면에 내세우면 박물관은 ‘공공 정책의 대상’이자 ‘국가적 공간’이 되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박물관 설립은 역사 보존이라는 명분과 함께 정책적 실리까지 겸비한 전략적 선택이라고도 볼 수 있다. 실제로 시드니 유대인 박물관도 2024년 5월부터 정부의 지원을 받아 확장 개발에 착수했으며, 이 글을 작성하는 2025년 6월 현재는 휴관 중이다.
유대인과 유대교의 역사, 호주 유대인의 이주 역사 등 그들이 버텨낸 인고의 세월을 다시 한번 체감할 수 있었다. 이들의 역사는 워낙 잘 알려져 있어 여기에 다시 적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오히려 내가 남기고 싶은 점은 박물관을 나오면서 느꼈던 무언가 찝찝한 감정이었다.
시드니 유대인 박물관은 '역사가 목소리를 내는 곳(Where history has a voice)'을 슬로건으로 삼고 있다. 인류 전체의 도덕성, 사회적 정의, 민주주의, 인권 증진에 대해서도 강조한다. 그렇지만 이 박물관은 유대인의 과거와 현대의 반유대주의(Antisemitism) 외에 다른 문제에 대한 목소리는 내지 않고 있었다. 어쩌면 모든 유대인 관련 박물관이 그럴지도 모른다. 박물관 주제가 유대인이기 때문에 사실 당연하기도 하다. 그럼에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과 함께 대학살을 겪은 집시(Gypsy; 공식 표기는 Roma), 동성애자, 장애인을 함께 다루지 않은 점, 현대의 난민 문제, 무엇보다 팔레스타인의 고통을 다루지 않았다는 아쉬움은 남는다.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박물관의 역할을 다 하지 못하는 곳은 많을 것이다. 유독 유대인 박물관에만 높은 기준을 들이대는 것도 잘 안다. 그럼에도 끝이 보이지 않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상황과 중동 전쟁으로 확장도 불사하는 그들의 모습을 빗대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이미 대중은 유대인을 피해자로서도 기억하지만, 현재는 가해자로서의 모습도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양면의 모습 중 한 단면만 보여주는 것 같아 못내 아쉬웠던 것이다.
시드니 유대인 박물관의 전시 완성도는 매우 높았다. 한 벽면 가득 담긴 생존자와 희생자의 이름은 이곳이 기억의 공간임을 강하게 전달했다. 당사자의 유품 전시와 영상∙녹취 형태의 증언을 조합한 구성은 진실성과 감정 전이 모두에 효과적이었다. 디오라마가 전혀 없어서 정돈된 느낌을 받기도 했고, 역사적 사실을 따라가는 데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그들의 역사를 배우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박물관임에도 틀림없다. 유럽도, 이스라엘도 아닌 호주 시드니에서 만난 유대인의 역사도 흥미로웠다.
그렇지만 여전히 'Creating a museum for the future'라는 메시지가 머리에 남았다. 박물관 홈페이지에 담은 설립 목적이다. 미래를 위해 박물관을 만든다고 하지만, 그 미래가 유대인만의 미래인 것 같은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언젠가는 팔레스타인 국민도 미래를 위해 나치(Nazi)와 등치 된 유대인의 만행이 전시된 박물관을 세울 것이라는 역설적 상상이 떠올랐다.
박물관에서 X-ray 검문을 경험한 건 처음이었다. 총기를 소지한 큰 덩치의 흑인 경비원이 직접 가방을 열어보면서까지 검사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입장방식에 나도 모르게 위압감을 느꼈다. 그만큼 반유대주의가 심각한 상황인가 보다. 그래서일까 전시물도 훌륭하고 내부도 쾌적했지만, 관람객은 우리 가족 외에 손에 꼽을 정도밖에 없었다(물론 평일이기도 했고 그 시간대에만 그랬을 수 있다). 분위기도 좋고 맛있는 카페가 있어 오히려 그 공간이 더 기억에 남는다.
전 세계에 걸쳐 너무나 많은 유대인 관련 박물관이 있어 다 소개할 수 없다. 혹시라도 궁금하시면 아래 웹사이트에서 리스트를 찾아보시길 바란다.
https://jmuseums.org/dire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