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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앨리스 Oct 20. 2023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

육아,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건가요?

  출산 5일 후, 드디어 퇴원을 하게 되었다. 예약해 뒀던 산후조리원은 이미 취소했고, 나는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혼자 아이를 키워야 하는 입장이 된 나에게 200만 원이 훌쩍 넘는 산후조리 비용은 너무 큰 부담이었다.

  남동생과 함께 퇴원 수속을 밟은 후, 다올이를 데리러 신생아실로 갔다. 간호사님은 신생아 관리 요령이 적힌 안내지, 그리고 분유 한 통과 함께 겉싸개에 꽁꽁 싸인 다올이를 내 품에 안겨주었다.


  집에 가기 전 출생신고를 위해 잠시 주민센터에 들렀다. 다올이는 내 성을 따라 '김리안'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밟을 리(履), 편안할 안(侒). 파란만장 인생을 살고 있는 엄마와는 다르게 인생의 모든 길이 평온했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몇 날 며칠을 고심한 끝에 고른 이름이었다.

  출생신고를 마치고 생계급여 신청도 할 수 있다는 안내를 받고 있는데, 차에서 다올이와 함께 대기하고 있던 남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핸드폰 너머로 자지러지는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오자 나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처럼 뛰어 나갔다. 혹시 시간이 오래 걸리면 그 사이 먹이라고 젖병에 모유도 챙겨뒀는데, 양이 부족했던 모양이었다.

  집으로 향하는 동안 남동생은 평소보다도 더욱 조심스럽게 운전을 했다. 한 겨울에 며칠 집을 비운 탓인지, 도착했더니 냉골도 그런 냉골이 없었다. 얼른 보일러를 올려놓고 짐을 정리하는 동안 남동생은 침대 위에 뻗어 버렸다. 그리고 다올이는 그런 외삼촌 배 위에 누워 쌔근쌔근 잠이 들었다.


  남동생이 돌아가고 다올이와 단 둘이 남은 나는 그 뒤로 4일간 혼돈의 시간을 보냈다. 너무 작은 몸은 안을 때마다 부서질 것 같았고, 수유를 할 때면 30분은 아이를 안고 꼼짝없이 앉아있어야 했다. 두 시간에 한 번씩 먹는 신생아의 수유 타임을 고려하면, 자유 시간은 어림도 없는 이야기였다. 먹이고 재우고, 또 먹이고 씻기고를 무한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밤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푹 잘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고작 4일 만에 사람이 그렇게나 피폐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육아라는 이름의 거대한 산맥에 이제 막 발을 들여놓은 햇병아리 엄마는 결국 맥없이 주저앉았다. 백기를 들고 흔드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도대체 무슨 자신감이었을까. 엄마가 된다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이미 세상으로 생명을 소환해 놓고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뉴스에 수도 없이 보도되는 나쁜 엄마들 중에 하나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그 길로 정부지원 산후도후미를 알아보았다. 곧장 산후도우미 이모님이 출동을 했고,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것 같아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역시 전문가는 남달랐다. 원인도 알 수 없이 수시로 울어대던 아이는 이모님의 손이 닿으면 마법에라도 걸린 것처럼 순해졌다. 제일 걱정이었던 목욕도 상세하게 알려주셔서 어설프게나마 씻길 수 있게 되었다.

  3주의 시간은 무섭도록 빠르게 지나갔다. 이제 정말 모든 것을 혼자 해내야만 한다. 사실 나에게도 그것은 엄청난 부담감이었지만, 미처 부담을 느낄 겨를도 없었다. 신생아와 함께하는 24시간은 눈 한번 깜짝하는 찰나의 순간과도 같았다.


  리안이가 된 다올이는 순한 것 같으면서도 예민했다. 신생아들은 잠들면 그냥 그대로 푹 자는 줄만 알았는데, 참 단순한 생각이었다. 리안이는 안고 있으면 세상이 끝나도 모를 것처럼 자다가도, 손에서 내려놓기만 하면 울었다. 모유를 먹고 나면 하루에 10번도 넘게 설사를 해서 태어난 지 한 달 만에 모유를 끊어야만 했다.


  분유에 대해서도 할 말이 너무나 많다. 병원에서 받은 분유를 먹였더니, 리안이는 수시로 왈칵 분수토를 했다. 다른 분유로 바꿔도 증상은 나아지지 않았다. 정보의 바다를 뒤져 찾아낸 독일 수입 분유를 먹여봤더니 다행히도 잘 맞는지 더 이상 분수토는 하지 않았다. 때때로 트림을 하다가 살짝 토하는 일은 있었지만, 그 정도는 신생아에게 흔한 일이니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유전자는 이런 것인가. 국산 분유는 하나도 맞지 않는 리안이를 위해 그 뒤로 나는 해외직구로 분유를 준비해둬야 했다.


  분유와 실과 바늘 관계인 젖병은 또 어떠한가. 젖병은 다 똑같은 줄 알았던 나의 무지함을 비웃기라도 하듯, 온갖 종류의 추천 상품들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분유를 먹을 때 늘 쌕쌕 거리는 특이한 소리를 내며 몸을 꼬는 리안이었는데, 영유아 검진 때 물어봤더니 아직 폐가 덜 발달되어 그럴 수 있다는 답을 들었다. 하지만 나중에야 그것이 배앓이라는 것을 알았다. 공기층을 밖으로 배출시켜 배앓이 방지에 좋다는 젖병과 함께, 발달에 맞춰 젖꼭지도 단계별로 구매했다. 엄마가 되니 알아야 할 것이 너무 많아 따라가기도 벅찼지만, 서른여덟 늦깎이 엄마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신생아 돌연사 같은 기사들을 보고 나면 한 동안은 이불 두께 하나에도 신경이 쓰였다. 실제로 지인이 아는 누군가의 아이가 술에 취한 아빠 옆에서 자다가 압사를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여서, 나는 아이와 잠자리를 따로 했다. 피곤함에 곯아떨어졌다가 혹여라도 그런 사고가 발생할까 봐 겁이 났기 때문이었다.

  아이가 뒤집기를 시작할 무렵엔 수시로 잠에서 깨어 아이의 상태를 살폈다. 목도 제대로 못 가누는 아이가 자다가 뒤집힌 상태로 숨이 막힐까 봐 걱정하는 내가 스스로도 걱정될 정도였다.

  조금 크자 매트 위에서는 통 자려고 하지를 않아서 결국 침대를 빼앗기고 말았다. 자꾸 엎드려 자고 싶어 하는 아이의 콧구멍이 막히지는 않았나 늘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똑바로 눕혀놔도 2초 컷, 뒤집지 말라고 좁은 틈새에 끼워놔도 기어코 뒤집고 마는 기술자라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나는 미어캣처럼 아들내미 콧구멍 염탐꾼이 되어 아침을 맞이하기 일쑤였다.


  태어나고 6개월이 될 무렵까지는 무슨 정신으로 육아를 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B형 간염, 디피티, 폴리오, 뇌수막염, 폐구균, 로타바이러스... 맞아야 할 예방접종은 어찌나 많던지. 아기띠에 적응도 채 하지 못했을 때는 병원에 데리고 가는 것도 수유 타이밍을 지켜 철저한 시간 계산 아래 움직여야 했다.

  잠투정이 심한 편이었던 리안이는 쪽쪽이를 물려주면 있는 짜증 없는 짜증을 다 부리다가도 결국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처럼 쪽쪽거리다가 잠이 들었다. 회사에서 체육대회나 이벤트를 할 때면 있는 불만 없는 불만을 터뜨리다가 막상 제일 열심히 해서 항상 1등을 놓치지 않았던 나와 성격마저 빼다 박은 것 같았다.


  이 시기의 나를 되돌아보면 사람의 몰골이 아니었던 것 같다. 늘 유분으로 떡져있던 머리, 아이의 침과 토 자국으로 여기저기 얼룩진 티셔츠, 수면부족으로 퀭한 눈 밑. 리안이가 잠시 잠든 사이 씻기라도 할라치면 샤워기 소리에 잠이 깨서 울어대는 통에 비눗물을 채 헹구지도 못하고 뛰쳐나가는 일이 빈번했다.

  리안이가 하루종일 울고 보채는 날에는 어르고 달래다가 나 또한 지친 마음이 펑! 하고 터져 엉엉 울어버렸다. '엄마'라는 이름의 무게에 짓눌려 작은 사람 앞에서 처참히 무너져 내리는 내가 너무 밉기도 했다. 나중에서야 아이도 급성장기를 거치느라 많이 힘들다는 사실을 알았다. 살림도, 육아도, 일도.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해야 하는 것이 넘을 수 없는 허들처럼 부담으로 다가왔지만, 그때마다 엄마니까 할 수 있다고 마음을 다 잡았다.


멀리서 동이 터오면, 베란다에서 이런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늘 힘든 점만 있지는 않았다. 수유 시간 때문에 새벽에도 두 번 정도는 일어났어야 했는데, 덕분에 새벽노을을 원 없이 구경할 수 있었다. 베란다에서 바라보던 새벽노을은 정말 황홀하기 그지없었다. 어느 날은 리안이를 품에 안고 지저귀는 새소리를 함께 감상하며 행복에 젖어들기도 했다.

  낮잠을 자는 아이의 자그마한 발, 쌔근쌔근 숨소리, 그리고 잠에서 깨어 엄마를 보자마자 눈 맞추며 웃어주는 그 얼굴. 나의 힘듦은 그것으로 어느새 눈 녹듯 사라지고, 아이에 대한 사랑의 감정으로 가득 채워졌다.

  육아는 그렇게 아름답고 여유롭지 않다는 주변인들의 말처럼, 정말 하루가 1초 같이 느껴지는 날들이었다. 하지만 나는 매일 그 찰나의 틈을 기록하며, 나중에 장성한 리안이에게 아기 시절을 이야기해 줄 생각으로 설레었다.


 리안이가 태어나고 100일. 20년 가까이 사진을 취미로 했으니 직접 찍은 사진을 남겨주고 싶었다. 먼저 리안이를 재워놓고 케이크 시트를 구웠다. 틈틈이 어린 왕자 콘셉트의 아이싱 쿠키도 만들었다. 테이블에 올릴 꽃바구니는 실크플라워를 직접 골라 하나하나 꽂아 완성했다. 백일떡은 여동생이 직접 만들어다 줬다. 그렇게 준비한 백일상은 꽤 그럴듯했고, 동생들, 조카들과 함께 옹기종기 모여 사진을 찍었다. 리안이는 기억하지 못할 어느 날이겠지만, 기념이 될만한 사진 하나 쯤은 꼭 남겨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직접 만든 어린왕자 컨셉의 케이크로 백일상을 차렸다.

 

  리안이는 자면서도 옹알이를 할 만큼 수다스러운 아이였다. 쪽쪽이를 빨면서도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은지. 에고에고에고, 혹은 에옹에옹에옹 같은 소리를 내는 리안이에게 나는 김에옹 씨라는 별명도 붙여주었다. 눈만 마주치면 옹알이를 하는 리안이 덕분에 대화를 하는 것 같아 재미있었다. 쪽쪽이에 유독 애착이 강했던 리안이는 치발기처럼 쪽쪽이의 플라스틱 부분을 딱딱 소리를 내며 가지고 놀다가, 잠이 오기 시작하면 뽁! 하고 소리가 나게 멀리 뱉어 놓고 꿈나라로 날아갔다. 그 비거리가 상당해서 나는 종종 쪽쪽이의 비행 비결을 궁금해했다. 여기저기 뱉어 놓은 탓에 항상 의외의 곳에서 쪽쪽이를 발견하고는 리안이와 함께 꺄르륵 거리며 웃기도 했다.

  양말과 손싸개를 씌워 놓으면 늘 한 짝은 벗어놓고 자던 리안이의 모습도 떠오른다. 기저귀를 차고 돌아 누워 자던 그 보동보동한 뒷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바라만 봐도 세상 모든 걱정이 눈 녹듯 사라지게 하는 힘이 있었다.

  리안이는 까꿍 놀이를 유난히 좋아했는데, 덮어 놓은 수건을 얼굴까지 끌어올리고는 숨었다 나타났다 하며 나를 웃겨주었다. 얼굴이 다 보이는 레이스 커튼 뒤에 숨어서도 까꿍 놀이를 하며 꺄르르르 하는 웃음소리가 그렇게 듣기 좋았다.


  엄마가 되겠다는 결심. 그리고 싱글맘으로서의 생활. 모두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내 결심을 단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다. 오히려 주변의 수많은 걱정들에, 더욱 보란 듯이 잘 키워내고 싶었다. 그런 걱정들이 무색하게, 리안이는 영유아 검진에서 키와 몸무게가 상위 70%에 들만큼 건강한 아이로 무럭무럭 성장했다.

  물론, 침대 위에서 늘어지게 자는 잠이 그립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훌쩍 떠나는 여행도, 조용히 혼자 즐기는 커피 타임도 그리운 것이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리안이가 없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맹세코 한 적이 없다.

 

  리안이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긴 터널을 홀로 걷는 것 같던 힘든 순간에 찾아온 기적이었다. 인생에 가장 큰 보물이 뭐냐고 묻는다면 지체 없이 '리안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힘에 부치고 지치지만 언제나 그것을 상쇄시키는 것은 나의 아주 작은 거인이었다. 엄마가 세상의 전부인 아이. 그리고 그런 기간은 그리 길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적금하듯 하루하루의 소중한 순간들을 쌓아가고 있다.

  할 일이 태산같이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안이와 더 많이 눈을 맞추고, 많이 안아주고, 많이 놀아주며 교감을 나누는 것이 지금은 그 어느 것보다도 더 중요한 일이 되었다. 나도 엄마가 처음이라 서툴지만, 리안이와 함께 하루하루 더욱 성장해 나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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