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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앨리스 Oct 20. 2023

우당탕탕, 긴박했던 출산 대작전

어느 하나 쉬운 게 없다, 얘

  임신 중기가 되자 하루가 다르게 배가 불러왔다. 조금만 걸어도 숨이 가빠지고 현기증이 나서 하루종일 선 채로 근무하는 것이 여간 고된 일이 아니었다. 베이커리에서 받는 월급으로 디저트 작업실의 월세를 감당해야 했던 날들이었다.

  다올이의 존재를 알게 된 후 두 달쯤 지났을 때였다. 부동산에 매물로 내놓은 지 1년이 다 되도록 인수자가 나타나지 않던 작업실의 계약이 극적으로 체결되었다. 그리고 얼마 뒤, 베이커리도 그만두고 오로지 태교에만 집중했다. 나는 그 일로 다올이를 복덩이로 여기게 되었다. 풀리지 않던 답답한 상황들이 하나씩 해결되기 시작하니 그렇게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당시 거주하던 곳은 역까지 마을버스로도 20분이 넘는 거리여서 병원을 가는 것도 만만치가 않았다. 임신 중기에는 한 달에 한 번 정기검진을 받았는데, 코로나로 한창 예민하던 시기였던 탓에 마스크를 계속 착용하고 있어야 하는 것도 곤욕이었다. 게다가 대형 병원이라 진료 대기 시간이 1시간을 넘는 것이 보통이었으므로, 검진만 받고 오면 침대에 쓰러져 반나절을 시체처럼 꼼짝 않고 누워있었다.

  어느 날은 진료 대기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구토 증세와 함께 어지럼증이 찾아와 쓰러지기 일보 직전의 상태가 되었다. 그 후로 병원만 갔다 하면 그런 증상이 반복되어서, 접수처 간호사님들의 배려로 초음파실 침대에 누워 대기를 했다.

아침해가 뜨기 시작하면 방안이 온통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새벽 5시만 되면 엄청난 에너지로 배를 빵빵 차대던 다올이 때문에 나는 불면증을 얻게 되었다. 그 긴긴밤을 지새우면서 다올이에게 줄 손뜨개 인형을 만들기도 하고, 영화를 몇 편 몰아서 보기도 했다. 태교를 하며 드뷔시나 라벨의 음악도 많이 들었는데, 그럴 때면 다올이의 태동이 활발해져서 음악을 좋아하는 아이일 것 같다고 예상해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어둑했던 먼 하늘이 밝아오면, 방 안을 가득 채우던 아침노을의 붉은빛을 이불 삼아 폭 잠에 들었다.


  평소처럼 새벽까지 깨어있다가 아침이 되어서야 잠이 들었던 어느 날이었다. 꿈속에서 나는 비가 막 그친 숲 속을 걷고 있었다. 주변은 안개가 자욱하게 껴서 마치 요정들이 나타날 것처럼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축축하게 젖은 흙과 풀내음도 선명히 느껴지던 그 숲을 한참 걷다가, 수풀 위에 엉덩이만 보이고 앉아있던 크림색의 아기 토끼를 발견했다. 행여 도망쳐버릴까 조심스레 다가가 토끼를 얼른 품에 안았다. 하지만 내가 안았던 것은 토끼가 아니라 킹 찰스 스패니얼이라는 종의 강아지였다. 가만히 안겨 올려다보던 눈망울이 어찌나 예쁘던지, 나는 넋을 놓고 그 얼굴을 바라보다가 잠에서 깼다.

  꿈이 너무도 생생해서 의심할 여지없이 태몽이라고 확신했다. 꿈해몽을 검색해 보니, 사랑받고 인기 많은 아이를 낳게 되는 꿈이라고 했다. 보통 강아지나 토끼 꿈은 딸 태몽이라길래 나는 으레 다올이가 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임신 27주 차, 입체 초음파 검사를 받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 얼굴도 성별도 궁금했는데, 다올이는 쉽사리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은 20분 정도 걸은 후에 다시 한번 보자고 했다. 달달한 것을 먹으면 아이의 움직임이 좀 더 활발하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초콜릿 우유도 하나 사서 마시고 병원 안을 열심히 걸어 다녔다. 다시 찾은 검사실에서 초음파 스캐너를 배에 대는 순간 선생님과 나는 동시에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다올이는 가운데 손가락을 활짝 펼치고 있었다. 너 정말 대단한 스웩을 가진 아이구나,라고 감탄하던 것도 잠시. 의사 선생님은 아이의 다리 가운데에도 뭔가가 펼쳐져 있다고 했다. 아들이었다. 얼굴도 다각도로 보여주셨는데, 이목구비에서 내 얼굴은 하나도 보이지가 않아서 내심 섭섭했다.


궁금했던 다올이의 얼굴. 그리고 야무진 가운데 손가락.

 

  출산 예정일은 이듬해 1월 10일이었다. 날이 점차 추워지니 출산 준비로 마음이 조급해졌다. 여기저기서 지인들이 보내준 아이옷을 작은방에 그대로 방치해 뒀다가, 당장 필요한 것들만 추려 세탁을 했다. 두 손바닥을 겨우 가릴 정도로 작은 옷들을 보고 있으니 만감이 교차했다. 그토록 소원했던 엄마가 된다는 기쁨, 혼자 잘 키울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 건강히 태어났으면 하는 바람, 그리고 얼른 만나고 싶다는 기대의 마음이 뒤범벅된 상태였다.

  고르고 골라 구매해 둔 범퍼침대는 부피 때문에 풀어볼 엄두도 못 내고 있다가, 추석에 방문한 동생들과 두 조카와 함께 조립을 했다. 레이스 캐노피와 데이지 자수가 놓아진 커버는 아들과 어울리지 않는 디자인이었지만, 그런 것이 꼭 딸의 전유물은 아니길 바랐다. 내 침대 옆에 나란히 놓인 범퍼침대를 보고 있으니 그곳에 누워 있을 다올이의 모습이 상상돼 더욱 출산이 기다려졌다.


  임산부로 지냈던 그 해 겨울은 눈이 참 많이도 내렸다. 출산 전 마지막 검진을 받고 돌아왔던 12월 29일도 그랬다. 추운 날씨에 몸은 잔뜩 움츠러들었고, 내딛는 걸음마다 악 소리가 날만큼 치골통이 몰려왔다. 둔한 움직임에 혹시나 미끄러질까 봐 긴장을 했더니 집으로 가는 길이 그렇게 멀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이러다 당장 내일 출산하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하며 집에 도착하자마자 이불속으로 숨어들었다.

  출산 예정일이 다가오자 가진통 주기도 점점 짧아지고 있었다. 그날도 배가 뭉치는 느낌에 새벽까지 잠들지 못하고 있었다. 오전 8시가 되어서야 자려고 침대에 눕는 순간, 배 아래쪽에서 갑자기 뽁 하고 뭔가 터지는 소리가 났다. 불안감에 어기적거리며 화장실로 갔더니, 다리를 타고 양수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그런데 색이 이상했다. 보통의 양수는 색이 없이 맑은데, 탁한 색을 보아 문제가 생긴 것 같았다. 급히 남동생에게 전화를 했지만 연락이 되지 않았다. 양수가 터진 후 통증은 해일처럼 몰려왔으나, 1분 1초가 다급한 시점에 도움을 요청할 곳이 어디에도 없었다.


  나는 바닥에 엎드려 배를 움켜잡고 스스로 119에 신고를 했다. 구급대원들은 바로 출동한다며 문을 열고 기다리라고 했다. 정말이지 세상에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고통이었다. 생리통이 너무 심해 종종 정신을 잃거나 응급실에 실려간 적이 있었는데, 생리통 따위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이내 출동한 구급대원들의 부축을 받고 휠체어에 올라타 구급차로 이동을 했다. 서늘한 공기가 뺨에 닿자 온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구급대원 한 분이 손을 잡아주며 금방 도착할 것이라고 안심을 시켰다. 그 사이 부재중 전화를 확인한 남동생에게서 연락이 왔고, 나는 최대한 빨리 와 달라고 부탁을 했다.

  분만센터에 도착해 상황을 설명하고 잠시 대기하는 동안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급히 달려온 주치의 선생님은 양수 상태를 확인하고는 아기가 태변을 봤다고 했다. 시간을 지체할 경우 태변 흡입이 계속되면 생명이 위독할 수 있다며, 바로 제왕절개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보호자가 없다는 말에 의사 선생님은 매우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수술동의서에 직접 서명하고 수술을 할 수 없는지 물었지만, 그건 불가능하다는 답만이 돌아왔다. 남동생이 도착할 때까지 수술 준비를 미리 해두고, 태아의 심장 박동을 모니터링하며 기다리기로 했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5분 주기였던 진통은 점점 짧고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너무 아프면 눈앞에 별이 반짝한다는 것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수술실 옆 침대에서 옆으로 누워 시계를 보고 있었는데, 시곗바늘이 진통의 시작을 알릴 때마다 애꿎은 시계를 원망했다. 배에 주렁주렁 달아놓은 모니터링 기계는 다올이의 불규칙한 심장박동을 끊임없이 들려주고 있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나는 두려워졌다. 출산이 코 앞인데, 모든 상황들이 빨간 사이렌을 울리며 나를 압박하는 것만 같았다.


  3시간이 지난 후에 남동생이 겨우 도착했고, 그제야 나는 분만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분만 테이블에 누웠을 때, 그 차가웠던 느낌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턱뿐만 아니라 손까지 덜덜 떠는 나를 진정시키며, 의사 선생님은 본격적으로 다올이를 세상으로 데려올 준비를 시작했다. 작은 천 너머는 매우 분주했지만, 정작 나는 아무런 감각도 느끼지 못했다.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누군가 아기가 나온다고 외쳤다. 그리고 곧 세상의 빛을 본 다올이의 우렁찬 울음소리가 들렸다.

  "네가 다올이구나!"

  첫 만남. 그 순간은 내 인생에 있어 한 획을 그은 명장면이었다. 양수에 퉁퉁 불은 빨간 덩어리 같은 모습이었지만, 그럼에도 감격스러웠다. 38주를 나와 이어져 있던 생명이 드디어 탯줄을 끊고 독립을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또르르 흐르는 눈물을 닦을 틈도 없이 나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입원실에서 깨어났을 때 눈앞에는 남동생이 있었다. 남동생은 고생했다는 말과 함께 병원 1층 매점에서 필요한 것들을 잔뜩 사다 날라주었다. 마취가 깨자 수술 부위가 말할 수 없이 아파왔다. 곧이어 간호사님이 와서 페인버스터라는 진통제를 달아주고는, 고통을 참을 수 없을 것 같으면 버튼을 누르라고 알려주었다. 출산을 하고 난 후 오로가 쏟아져 나와 패드를 착용하고 있어야 했는데, 차마 남동생에게 갈아달라고 할 수는 없어 첫날은 간호사님에게 부탁을 했다.

  이후 병실에 있어도 딱히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는 남동생은 돌려보내고 혼자 힘으로 화장실도 가고, 유축도 해서 나르고, 수유콜이 올 때마다 다올이를 만나러 갔다. 품 안에서 꼬물거리며 배냇짓을 하던 얼굴이 마치 태몽 속 그 강아지의 얼굴 같아서, 한참을 눈도 못 떼고 바라보던 것이 기억난다.


드디어 만난 나의 다올. 반갑다, 정말.

  2020년 12월 30일, 오전 11시 58분. 그렇게 새해를 하루 하고도 반 남기고 다올이는 예정일보다 2주가량 일찍 세상에 나왔다. 태변의 이슈로 걱정을 했지만, 다행히도 의사 선생님은 크게 문제가 없어 보인다는 소견을 주었다. 여러모로 스펙터클 했던 출산의 그날. 하지만 나는 무사히 출산을 했다는 안도감에 사로잡혀 그보다 더 스펙터클한 육아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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