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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앨리스 Oct 20. 2023

새로운 둥지를 찾아갑니다

택시 타고 이사하던 날

  리안이의 성장은 하루가 다르게 가속도가 붙는 것 같았다. 뒤집기만 해도 신기했는데, 어느새 배밀이로 방을 탈출하기에 이르렀다.

  16평형이라고 했던 오래된 복도식 아파트는 실평수가 10평으로 꽤나 아담했다. 리안이가 세 살 정도 되면 이사할 생각이었지만, 리안이의 활동반경이 너무 좁았던 데다 그 외 여러 가지 요소들이 이사하기를 부추겼다.


  첫째, 층간소음뿐만 아니라 벽간 소음이 심각한 수준이었다. 밤만 되면 바로 윗집에서 쿵쿵거리는 소리가 났고, 옆집 아저씨의 코 고는 소리까지 적나라하게 들려왔다. 그리고 웬 공사가 그렇게 많은지. 보수를 한다며 수도관 교체를 하던 날에는 아파트 전체가 벽을 뚫는 드릴 소음으로 들썩거릴 정도였다.


  둘째, 상식적이지 않은 이웃 주민도 문제였다. 윗집 어디선가 쓰레기를 베란다로 던져대서 나는 몇 번이고 관리사무실에 민원을 넣어야 했다. 비가 오던 어느 날은 에어컨 실외기 위에 음식물 쓰레기가 널려있었고, 또 어떤 날은 가지치기한 식물들이나 찢긴 옷가지들이 버려져있었다. 해가 쨍쨍한 날에는 밖으로 물을 뿌려 창문을 열어놨다가 베란다가 물바다가 된 경험도 있다. 관리사무실에서는 그런 짓을 하는 호실이 특정되지 않아 안내방송 밖에 해줄 수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끝끝내 안내방송 조차 해주지는 않았다.


  셋째, 교통이 너무 불편해서 아이와 함께 이동하기가 쉽지 않았다. 앞서 언급했지만 역까지는 버스를 타고 20분을 가야 했고, 코로나로 집 근처를 산책하는 것이 외출의 전부였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집 베란다 앞으로 넓게 펼쳐진 논밭뷰를 감상할 수 있어 집에 있어도 답답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사를 마음먹은 순간, 신혼부부와 한부모에게 지원되는 LH전세임대주택을 알아보았다. 서류를 제출하고 심사를 통과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한부모에 아이가 6세 미만이라 이미 자격 요건은 충분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심사 통과 후 6개월 이내 전세임대주택 조건에 맞는 집을 구하고 계약을 해야 했다. 하지만 전세임대 매물은 흔하지 않았다. 자격이 되더라도 집을 구하지 못해 혜택을 포기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날부터 나는 부동산 앱을 밤새도록 뒤지고, 부동산 목록을 뽑아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며칠 뒤 서울에 있는 부동산에서 집을 보러 오라고 연락이 왔다. 대중교통으로는 2시간이나 걸려서 막막해하던 찰나, 남동생이 흔쾌히 함께 가주기로 했다.

  처음 보게 된 집은 산 꼭대기에 있었다. 흔히 '달동네'라고 부르는, 산등성이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빨간 벽돌의 구옥 빌라들이 굳이 내부를 보지 않아도 연식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실제로 집은 산 바로 옆에 붙어 있었는데, 집주인이 20년을 넘게 거주하다가 이사를 가게 되었다고 했다.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청록색 신발장과, 같은 색의 싱크대가 옛날 외할머니댁의 풍경을 연상케 했다. 15평의 작은 집이었지만, 방이 세 개나 있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구석구석 살펴본 뒤 다른 부동산을 통해 두 집을 더 보게 되었다. 한 곳은 구조는 마음에 들었지만, 집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싱크대 수전이 말썽이길래 집주인에게 수리를 문의하자 알아서 고쳐서 쓰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곳은 주변 환경도 술집이 많아 아이를 키우기에 적합해 보이지는 않았는데, 다른 한 집도 그 근방이라길래 더 보지 않기로 했다. 처음 본 집이 오래되기는 했어도 왠지 모를 끌림이 있어 나는 그곳을 계약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집 계약과 싱크대 선택 때문에 두 번의 서울행을 해야 했다. 매번 남동생에게 부탁할 수는 없어서 리안이를 아기띠로 안고 기나긴 지하철 여행을 했다. 그럼에도 모든 것이 좋았다. 집을 보러 간 첫날 마음에 드는 집을 발견할 수 있어서, 작은 집이지만 현재보다는 더 넓은 집으로 이사 갈 수 있어서, 그리고 마치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던 것처럼 순조롭게 이뤄질 수 있어서.


  하지만 나는 늘 고생 끝에 원하는 것을 얻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사를 하려면 돈이 필요했고, 당장 분유값도 걱정인 나에게 그런 돈이 있을 리는 없었다. 그래도 죽으란 법은 없는지, 주민센터에서 연결해 준 덕에 굿네이버스라는 단체를 통해 이사비를 지원받을 수 있었다. 물론 세상에 공짜는 없다. 지원 이후 몇 번의 인터뷰와 사업 결과 보고서를 위한 구술서 및 서류 제출 등을 해야 했지만 그 정도의 노력쯤은 일도 아니었다.


황홀하기 그지 없던 베란다의 풍경들.

  이사 업체를 정하고 간단히 정리를 하는데, 막상 떠나려고 하니 아쉬움이 가득했다. 서울에서만 38년. 서울을 떠나서는 단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던 내가 경기도에 와서 아이를 낳았다. 그 아이가 갓난쟁이 시절을 거쳐 뒤집기를 하고, 배밀이를 하고, 기어 다니고, 잡고 서기까지 함께 했던 집이었다. 따지고 보면 고작 1년 2개월이었다. 동네에는 딱히 정이 들지 않았지만, 새벽이면 들려오던 새소리, 그리고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논밭 위의 아침노을을 바라보던 시간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아침 햇살이 황금빛으로 물든인 거실의 풍경도, 비가 오고 나면 하늘 위로 길게 걸린 무지개도, 한없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던 솜사탕 같던 구름도 너무나 그리워질 것만 같았다.


  계약 기간이 남아 있어 세입자를 대신 구해줘야 했는데, 사진을 올린 지 얼마 되지 않아 곧 집을 보러 오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그중에 한 분은 내가 그토록 애정했던 베란다의 논밭뷰를 보자마자 서둘러 계약을 했다. 그 덕분에 나 또한 어렵지 않게 이사일을 정할 수 있었다.

리안이와 함께 했던 첫 집의 안방 풍경.

  아쉬움을 뒤로한 채 이사를 하던 날. 이른 아침부터 이삿짐센터 기사님들이 분주히 짐을 싸기 시작했다. 리안이는 어리둥절해하면서도, 새로운 얼굴들이 나타나자 방긋방긋 웃어주기 바빴다. 관리사무실에 가서 관리비 정산을 하고, 집주인아저씨와 함께 집 컨디션 체크를 한 뒤 보증금을 돌려받았다. 항상 무뚝뚝하고 말이 없으셨던 집주인아저씨는 가까운 데로 가면 태워다 주려고 했더니 왜 이렇게 멀리 이사를 가냐며 아쉬워하셨다. 그동안 잘 살다 간다는 인사를 드리는 내 마음도 아쉽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더 좋은 날들이 있을 거야, 생각하며 이삿짐 포장이 마무리될 때까지 리안이와 집 주변을 걸었다.


  드디어 긴 사다리를 통해 9층에서 짐들이 내려지기 시작했다. 독립하던 날을 포함해 이번이 네 번째 이사였는데, 늘 1톤 트럭의 옆자리에 얻어 타고 다녔던지라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풀옵션에서 무옵션으로 이사하며 차곡차곡 짐이 늘었고, 때문에 이사를 도와줄 인력도 늘어 내가 탈 여분의 자리는 없었다. 짐보다 먼저 도착해야 했기에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하기에는 시간이 맞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나는 택시를 타고 이사할 집으로 출발했다. 1시간 반의 꽤 긴 여정이었는데, 택시 기사님이 신설된 도로가 있으니 금방 갈 거라고 하셔서 생각보다 일찍 도착하게 되었다.

모든 것이 신기한 아이. 바스락거리는 비닐조차도 장난감이 된다.

  도착한 집의 문은 열쇠로 굳게 잠겨 있었다. 집주인에게 전화를 하자, 그 사이 주인이 바뀌었다며 부동산에서 열쇠를 찾아가라고 했다. 9월의 초입이었지만, 아직 여름의 열기는 완전히 떠나가지 못한 상태였다. 10kg에 달하는 리안이를 안고 부동산까지 왕복 20분을 걸었더니 온몸의 수분이 땀으로 다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현기증과 씨름을 하고 있는 사이 이삿짐도 도착을 했다.


  그런데 큰 문제가 있었다. 집이 경사면에 위치해 있는 데다 주차되어 있는 차들 때문에 2.5톤 트럭이 진입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전선에 걸려 2층으로 사다리차를 올릴 수도 없다며 기사님들은 매우 난감해했다. 한참의 상의 끝에 현장에서 1톤 트럭을 수배해 짐을 옮겨 싣고, 기사님들이 계단으로 하나하나 짐을 나르기 시작했다. 이사 전에 미리 짜두었던 배치도에 따라 각 짐이 일사불란하게 놓였다.


  땡볕에 아이를 안고 걸었던 탓인지 현기증은 나아지지 않았고, 나는 화장실로 달려가 구토를 하고 말았다. 컨디션의 악화로 나는 결국 이사 마무리도 전에 침대에 드러누웠다. 리안이는 뭐가 뭔지도 모르고 옷을 싸둔 비닐의 소리가 신기한지 한참을 바스락거리고 있었다. 그래, 너라도 즐거우면 됐다.

  그 정신없는 와중에 신청해 둔 이전 설치 기사님들이 속속들이 도착을 했다. 정수기 기사님을 필두로 에어컨, 인터넷, 가스 설치 기사님들이 연이어 방문해서 이사는 어느덧 막바지로 향하고 있었다.


  여기서 이삿날의 하이라이트가 펼쳐진다. 벽걸이 에어컨만 두 대라, 안방은 앵글로 설치를 하고 작은 방은 1층 실외기 옆에 설치를 했는데 밖에서 갑자기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창문을 통해 내다 봤더니, 아랫집 아주머니와 아주머니의 아들, 그리고 에어컨 기사님이 서로 언성을 높여가며 싸우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 상황을 파악해 보니 아주머니는 왜 허락도 없이 여기에 실외기를 설치하느냐는 입장, 에어컨 기사님은 여기가 아주머니 땅도 아닌데 왜 그렇게 이기적이냐며 다투고 있는 것이었다.

  이사 첫날부터 이웃과 분쟁이라니. 내가 싸움의 당사자는 아니었지만, 어찌 됐든 우리 집 에어컨 설치 때문에 일어난 싸움이었으므로 나만 쏙 빠져있을 수는 없었다. 옥신각신 다툼은 1시간 가까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냥 계시는 게 좋겠다는 다른 기사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려가서 아주머니께 미리 말씀드리지 못해 죄송하다고 이야기했다.


  아주머니도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 기사님이 실외기를 설치한 공간은 1층에서만 출입할 수 있는 곳이라 아주머니 입장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창 밖에서 얼씬거리고 있어 너무 놀라셨다고 했다. 아주머니와 아들은 이사 오는 날부터 소란스럽게 해서 미안하다며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 결국 그날의 해프닝은 아주머니네 집 실외기 옆에 나란히 설치하는 것으로 평화롭게 끝이 났다.


  퇴근 후에 들른 동생과 방금 전의 소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을 때, 1층 아주머니가 귀한 연잎밥을 세 개나 싸들고 오셨다. 아주머니는 큰 소리를 낸 것에 대해 재차 사과하셨다. 꼬장꼬장한 이웃을 만나 앞으로 피곤하겠다고 생각했던 것이 오히려 죄송해졌다.


작은 방 창문으로는 멀리 북한산이 보인다.

  이삿짐 정리와 청소 등의 할 일은 뒤로 미루고, 이사한 집에서의 첫날이 저물고 있었다. 집을 보러 왔을 때는 미처 몰랐던 사실인데, 작은 방 창문으로는 집 바로 앞의 산과 멀리 북한산이 겹쳐 보여 고즈넉한 풍경이 너무 예뻤다. 그토록 원하던 숲세권, 그리고 널찍한 주방. 원하던 모든 것을 다 갖춘 미아동의 생활도 기대가 되었다. 옆에서 이미 곯아떨어진 리안이의 쌔근쌔근 숨소리를 들으며 나 또한 이사의 고단함을 떨쳐내려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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