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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앨리스 Oct 20. 2023

네가 첫 돌이라니

애착 물건들과의 이별, 그리고 첫 수술

  리안이가 태어나고 눈 깜짝할 새에 1년이 흘렀다. 아이를 낳고 보니 매일매일이 새로운 날들이었다. 언제 이렇게 컸나 싶어 뒤돌아 보기가 무섭게 다음 날이면 또 그만큼 커있는 것이, 아이의 성장 속도는 실로 따라가기 벅찰 정도였다.

  이벤트를 좋아하는 엄마답게, 아이의 첫 돌 사진을 위해 고르고 골라 돌상 패키지를 예약했다. 너무 화려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수수하지도 않은 소품들이 포함된 패키지였다. 서비스로 첫 돌 기념 명패를 받기로 했는데 날짜를 입력하는 것을 깜빡했다. 사장님에게 아이의 생년월일을 알려드렸더니, 자신의 딸과 생일이 똑같다며 반가워하셨다. 더욱 신경 써서 보내주겠다는 말이 그렇게 감사할 수 없었다.

  돌 떡 예약을 위해 집 근처 떡집에 연락을 했는데, 소량은 주문을 받지 않는다고 했다. 그때부터 또 검색의 연속이었다. 날짜가 촉박했지만 운이 좋게도 바로 주문이 가능한 곳을 찾아 돌 떡도 무사히 마련할 수 있었다.


5분 만에 끝난 돌 촬영.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5만원권을 골라 잡은 장한 아드님.

  서울에 올라온 엄마와, 동생들과 조카들이 리안이의 돌 촬영을 함께 하기 위해 집으로 왔다. 촬영 당일 새벽부터 열이 조금씩 오르던 리안이는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첫 돌을 기점으로 돌치레라는 것을 한다더니, 이렇게 타이밍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질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처음 입어보는 한복도 불편했는지 칭얼대는 리안이를 어르고 달래 몇 장 찍어보려 했지만, 안타깝게도 건진 사진은 없었다. 그 와중에 돌잡이에서는 5만 원권을 잡은 것이 유일한 수확이라고나 할까. 그래도 가족들과 리안이의 첫 돌을 미리 함께 축하할 수 있어서 기뻤다.


  이 맘 때쯤 마지막 분유도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참에 유아식으로 완전히 넘어가 보기로 했다. 분유를 많이 찾지 않을까 싶던 나의 예측과는 달리, 리안이는 아쉬움 하나 없이 분유를 깨끗하게 끊어버렸다. 대신 유난히 애착을 보이는 쪽쪽이는 쉽게 끊기가 힘들었는지, 그것이 없으면 잠들기 힘들어했다. 늘 침을 폭포처럼 흘리는 아이라 침독 때문에 얼굴에는 빨간 수염을 달고 살았다. 아토피가 있어 유독 더 발진이 잘 올라오니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다.

   마음을 독하게 먹고 이번에는 끊어보리라 다짐한 밤. 첫날은 쪽쪽이를 달라며 1시간 넘게 서럽게 울었다. 둘째 날은 성공하나 싶었지만 역시나. 일어나서 30분을 칭얼대다가 겨우 잠이 들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 리안이는 태어나 쪽쪽이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처럼 깔끔하게 잊고 그대로 잠이 들었다. 다섯 살까지 젖병에 우유를 담아 마시던 나와는 다르게, 리안이는 모든 발달 단계를 훌륭하게 수행해나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어느 날은 자다가도 진정이 되지 않을 정도로 자지러지게 울며 깨는 일이 종종 있었다. 아마도 이앓이나 성장통 중에 하나겠거니 하고 그때마다 안고 달래주며 넘겼다.

  하루는 기저귀를 갈아주고 있는데 사타구니 부분이 불록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아무래도 이상해서 검색을 해보니 서혜부 탈장의 증상이었다. 신생아실에서 음낭수종이 있으니 잘 지켜보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음낭수종은 높은 확률로 탈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문장을 읽고 덜컥 겁이 났다.

  영유아 검진에서도 이상이 없다는 소견을 받았고 불룩하게 느껴지다가도 괜찮아지기를 반복해서 내가 너무 예민한 게 아닌가 생각했었다. 하지만 '반복적'이라는 것에 집중할 필요가 있었다. 불안한 마음으로 아침 일찍 소아과에서 진료의뢰서를 받아 미리 예약해 둔 서울대어린이병원으로 향했다.


  접수를 하고 진료에 들어가기까지 시간은 지루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아기띠 안에서 답답해하는 리안이를 안고 병원 안을 돌아다니는데 온몸에 전기장치를 붙이고 있는 아기부터 휠체어에 앉은 어린이까지, 시선을 옮기는 곳마다 아픈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탈장은 간단한 수술이라는 데도 이렇게 속상한데, 저 아이들의 부모님은 어떤 마음일까.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아이들을 위해 마음속으로 기도하는 사이 리안이의 진료 차례가 돌아왔다.

  의사 선생님은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손으로 누를 때마다 장이 왔다 갔다 한다며 서혜부 탈장이 맞다고 했다. 일찍 잘 발견했다며, 수술은 간단하니 걱정하지 말라는 따뜻한 말도 전해주셨다.

  튀어나온 장이 서혜관이라는 곳에 끼는 감돈 상태가 되면 장의 괴사, 또는 패혈증 등의 합병증이 생긴다고 한다. 그럴 때는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는 말을 들으니 차라리 일찍 발견하게 된 것이 천운처럼 느껴져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수술 날짜를 정하고 수술 전 검사로 혈액검사, 소변검사, X-ray, 심전도검사까지 하는데, 주사를 맞아도 울지 않던 씩씩한 리안이도 처음 받는 검사에 잔뜩 겁을 먹고 대성통곡을 했다. 채혈실에서 악을 쓰고 버둥거려 결국 오른팔에 바늘을 추가로 꽂을 수밖에 없었다. 그 작디작은 팔 위에서 바늘을 들었다 놨다 하는 모습에 결국 나 또한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검사를 다 마친 뒤 병원을 빠져나와서야 겨우 숨이 쉬어졌다. 반나절이 평생처럼 느껴지던 날이었다.


  이후 수술 전 검사결과 확인과 수술동의서 작성을 위해 한 차례 더 병원 방문을 해야 했다. 수술 방식은 뚫려있는 것이 정확히 확인되는 부분만 절개하는 방법과 육안으로 확인되지 않는 구멍까지 미리 확인할 수 있는 복강경,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어차피 해야 하는 수술이라면 추후 재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은 피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복강경으로 진행하기로 결정하였다.


수술 당일 아침, 대기를 하다가 잠이 들어 버렸다.

  수술 당일 아침에는 리안이가 태어나던 날처럼 펑펑 함박눈이 왔다. 참 예쁘게도 눈이 내리던 대학로의 낭만을 즐길 여유도 없이 아이를 안고 병원으로 향했다. 입원 수속을 마치고 당일입원센터로 가서 환자복으로 환복을 한 후 대기를 하는 사이, 앙증맞은 손등 위에는 링거 바늘이 꽂혔다.

  세 시간쯤 지났을까. 드디어 수술실에서 호출이 왔다. 엄마 코트를 덮고 쌔근쌔근 잠이 들었던 리안이는 주위를 둘러싼 인기척에 놀라 잠시 깼는데, 마취를 하자마자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입원실로 돌아와 기다리는 동안 눈앞에는 인사할 틈도 없이 수술실로 그대로 실려 들어가던 아이의 모습이 계속 아른거려 눈물이 줄줄 흘렀다. 하지만 계속 울고 있으면 리안이에게 정말 무슨 일이라도 생길 것 같다는 생각에, 무사히 수술이 끝날 것이라 믿으며 울음을 뚝 그쳤다. 엄마라는 이름은 없던 힘을 만들어서라도 바로 서게 만드는 마법 같은 단어였다.


눈 쌓인 마로니에 공원의 풍경.

  영원 같던 시간이 지나고, 리안이는 다시 내 품으로 돌아왔다. 마취가 완전히 깨기 전까지 1시간 정도 더 재우라고 해서 곤히 자는 아이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손을 꼭 잡아 주었다. 리안이가 깬 뒤에 담당 교수님의 설명을 들었는데, 양쪽 다 구멍이 뚫려 있어 결론적으로는 복강경을 하길 잘했다고 하셨다. 평균 수술 시간이 40분 정도인데, 리안이는 양쪽을 꿰매느라 2배의 시간이 걸렸다. 작은 몸으로 얼마나 힘들었을까.

  나 또한 지친 몸으로 퇴원 수속을 밟고 병원을 나섰는데, 그새 눈이 그친 하늘에는 노을이 예쁘게 물들고 있었다. 수술이 무사히 끝나고 긴장이 풀리니 그제야 길 건너의 눈 쌓인 마로니에 공원도 눈에 들어왔다.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고 자기 위해 누워서 하루를 되돌아보니, 지금의 시간이 새삼 소중하게 느껴졌다. 리안이가 옹알거리다가 쌔근쌔근 잠에 빠져드는 그 소리를 듣는 것도 너무나 행복했다. 그리고 장난꾸러기여도 좋으니, 그저 건강하기만 바라게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수술 이후 리안이는 자다가 자지러지게 울며 깨는 일이 없었다. 그간 밤마다 이어지던 울음의 이유가 비로소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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