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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앨리스 Oct 20. 2023

아토피와의 전쟁

지난한 눈물의 나날들

  리안이는 태어난 지 5개월 만에 아토피 진단을 받았다. 보통 6개월 이전에는 아토피로 확진을 하지는 않는다고 하는데, 조금 이른 편이긴 했지만 아토피의 확률이 높을 것이라는 말에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태열이 있는 편이었고, 늘 쪽쪽이를 입에 물고 있어 침독 때문에 얼굴이 울긋불긋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목욕을 거르지 않고, 이불도 매일 갈아주고, 옷도 자주 갈아입히며, 로션도 꼼꼼히 발라주었다. 이처럼 여러모로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아토피 진단을 받게 되니 속상함과 미안함이 몰려왔다. 그 마음들은 뾰족한 화살이 되어 결국 나에게로 향했다.

  아토피에 좋다는 제품들과 케어 방법 등을 닥치는 대로 찾아보았다. 여러 제품을 비교해 보며 보습력에 좋다는 바디워시와 로션, 크림까지 구비를 했다. 자면서도 끊임없이 뒤척이며 얼굴 여기저기 상처를 내는 통에, 손톱도 바짝 자르고 신생아 졸업 후 깊이 넣어뒀던 손싸개를 다시 꺼냈다.


  이유식을 시작하고 나서부터 리안이의 아토피는 더욱 넓은 부위로 퍼지기 시작했다. 특히 얼굴이 가장 심했는데, 늘 입주변부터 턱까지 빨갛게 발진이 올라와있어 보는 사람마다 아이 얼굴이 왜 그러냐는 질문을 했다. 나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아토피'라고 대답해야 하는 것이 마음 아팠다. 사람들이야 지나가는 한 마디였겠지만, 매번 같은 대답을 해야 하는 나의 입장은 그 누구에게도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아이의 아토피는 임신 기간 동안 좀 더 건강한 음식을 챙겨 먹지 못한 스스로의 질타로 이어졌다.


  태열이 심한 아이들의 경우 22도 정도의 선선한 실내온도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고 알려져 있다. 이른 계절부터 에어컨을 틀어 온도 조절을 해주고, 보습제도 종류별로 바꿔가며 발라주고, 청결 관리도 열심히 해줬지만, 나아지기는커녕 오히려 발진과 습진은 더욱 퍼지기만 했다. 병원에 가도 스테로이드제만 처방해 줄 뿐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했다. 그마저도 정말 심할 때만 한 번씩 사용했는데, 나아질만하면 다시 벌겋게 원상복구 되는 것의 반복이었다.


아토피가 심해지던 생후 6개월의 리안.

  틈만 나면 아토피에 대한 정보를 백방으로 수집하기에 바쁘던 어느 날, 나는 블로그에서 리안이와 동일한 병변을 가진 아이를 발견했다. 주된 내용은 한방치료에 관한 것이었다.

  서늘한 온도로 인해 심부 온도가 낮아지면 열을 발산할 수 없어 피부 온도를 높이기 위해 마찰열을 필요로 한다고 했다. 그것이 곧 가려움증이고, 긁다 보면 발진과 습진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연결된다는 설명이었다. 아토피의 발진 증상이 나타나면 또 열심히 보습 관리를 해주게 되는데, 이는 오히려 흡수되지 않고 열 발산을 방해한다는 것이었다. 피부가 진정될 때까지 따뜻하게 입혀 보온을 해주고 심부 온도를 높이는 것이 치료의 핵심이었다.

  또한 아토피는 너무 자주 씻게 되면 피부 보호막이 손상되어 오히려 더 건조해진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모든 정보가 다 옳은 것은 아니었지만, 아이의 피부가 나아질 수만 있다면, 그래서 조금이나마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무엇이든 시도해보아야 했다. 계절이 지나 넣어두었던 긴팔 옷을 꺼내 입혀주었더니, 잠도 혼자서 푹 자고 앞뒤로 벌겋게 올라왔던 발진들이 빠르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전에는 늘 자다가 깨서 안겨있으려고 했는데, 추워서 그랬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무지함에 아이를 고통에 빠뜨린 것 같아 더욱 마음이 아팠지만, 땀이 배출되기 시작하면 차츰 나아진다는 말에 희망을 걸기로 했다.

목욕을 할 때마다 어성초를 우리기 위해 수고해 준 오리 씨.

  아빠는 어성초 우린 물로 목욕을 하면 아토피에 좋다며 한약방을 하는 친구분을 통해 말린 어성초를 보내주셨다. 목욕 때마다 세 군데 물을 받아 씻겨야 해서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었지만, 이런 극성이 통한다면야 더 한 일도 마다하지 않고 할 수 있었다. 어성초를 한 번 우리고 버리기에는 또 아까워서, 한 번 더 우린 물을 식혀두고 가재수건을 적셔 아토피 부위를 틈틈이 닦아 주었다. 다행히도 입 주변 침독에는 꽤 효과가 있었다.


  발진이 퍼졌다가 나아지기를 수차례 반복하는 사이 첫돌이 지나 한의원을 찾았다. 아토피가 꽤 진행된 상태라는 진단을 받고, 이때부터 한약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한방연고와 한약 외 처방약까지. 매주 방문을 해야 했기에 한 달에 아이의 약값과 진료비로만 수십만 원의 돈을 지불했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세 달이 지나도 리안이의 피부는 나아지지 않았다. 코로나와 농가진까지 겹쳐 오히려 피부 상태는 더욱 악화되기만 했다.


  한방 치료에 너무 많은 기대를 했던 탓일까. 실망만 가득 안고 방법을 바꿔보기로 했다. 이사 후 찾은 소아과는 피부과 진료를 함께 볼 수 있었는데, 그곳 의사 선생님은 스테로이드가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했다. 일단 잠을 잘 자야 하는 시기에 가려움 때문에 자지도 못하고 고통이 심하다면, 차라리 스테로이드제로 빠르게 진정시키는 것도 방법이라고 했다.

  그 말은 정말 맞았다. 밤잠을 설치는 것이 비단 아이뿐만은 아니었다. 자다가도 여기저기 긁는 소리만 들리면, 채 뜨지도 못한 눈을 비비며 보습제를 발라주고 긁지 못하도록 달래던 나 또한 지치기는 마찬가지였다. 의사 선생님은 항히스타민제와 달맞이꽃종자유가 포함된 에보프림이라는 이름의 소아용 아토피 치료제를 처방해 주었다.


  이후의 변화는 더디지만 분명하게 나타났다. 점차 긁는 빈도수가 줄어들고, 입 주변 피부가 회복되기 시작했다. 쪽쪽이를 끊고 이가 다 나서 침을 흘리지 않게 되니 피부의 재생 속도는 눈에 띄게 빨라졌다. 선생님의 권유로 알레르기 검사도 했는데, 달걀흰자와 호두에 대한 알레르기가 확인되어 식재료에도 주의를 기울였다. 밀가루는 알레르기 반응이 없었지만, 당분간은 제한해 보는 게 좋겠다는 의견에 따라 되도록이면 직접 만든 음식들을 먹였다. 3주에 한 번씩 약을 받으러 가야 했지만, 매주 한의원에 가던 때를 생각해 보면 눈부신 발전이었다.

두 돌 무렵의 리안. 눈에 띄게 피부가 깨끗해졌다.

  두 돌이 되기 전, 리안이는 항히스타민제를 완전히 끊을 수 있게 되었다. 에보프림은 부작용 위험이 적어 아직까지 유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또한 하루 두 알에서 한 알로 줄였다. 의사 선생님은 이런 추세라면 성인이 되기 전에 아토피가 완치될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현재의 리안이는 아주 약간의 증상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피부 병변이 사라진 상태다. 이제는 눈물겹던 아토피와의 전쟁에서 승기를 잡게 될 날도 머지않았음을 느낀다. 과거의 사진을 꺼내볼 때마다, 깨끗해진 얼굴로 환한 미소를 보여주는 리안이의 볼을 쓰다듬으며 기적 같은 변화에 감사하게 된다. 정말 고생 많았다,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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