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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앨리스 May 24. 2024

My Wonderland

어린 왕자는 지금도 노을을 바라보고 있을까

반포 한강공원, 2019 / iPhone XS

 어린 시절의 나는 친구들과 노는 것보다 교실 뒤 한편에 있는 학급문고 앞에서 읽을 책을 고르는 그 시간을 더 좋아했다. ‘초등학생 권장도서’라고 적힌 글과 함께 반짝이는 금장 스티커가 붙어 있던 어린 왕자를 학급문고에서 처음 발견한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그때만 해도 어린 왕자가 내 인생책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인생살이 고작 10년 차가 읽기에는 그 안에 담긴 이야기가 너무도 철학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몇 장을 꾸역꾸역 읽다가 덮기를 반복하며 끝내 마무리를 짓지 못했던 기억이다.


  스무 살의 봄, 사진 동호회의 친한 오빠에게서 생일선물로 어린 왕자 책을 받게 되었다. 아기자기한 일러스트가 예쁘다고 생각하면서 펼쳐든 첫 장을 읽어 내려가다가 나는 어느새 그 속에 빠져들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한시도 쉬지 않았다. 그 안에는 시시한 어른들에 대한 풍자가 있었고, 외로움과 관계에 대한 철학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명언도 담겨 있었다. 마지막에는 눈이 퉁퉁 붓도록 울고, 책을 덮고 나서도 아주 긴 여운을 느낀 그때부터 나는 가장 좋아하는 책을 물어보면 '어린 왕자'라고 대답하곤 했다. 그 뒤로 각 나라에서 출간된 다른 언어로 번역된 어린 왕자 책을 수집하고 있으니, 어린 왕자에 대한 나의 사랑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가리라 믿는다. 


  6장에는 화자가 어린 왕자와의 대화를 통해 그의 쓸쓸하고 단순한 삶에 대해 회고하는 장면이 있다. 어린 왕자는 해질 무렵을 좋아해서 해지는 것을 보러 간다고 말한다. 거기에 화자는 해가 지길 기다려야 한다고 답한다. 하지만 어린 왕자의 별은 너무나 작아서 의자를 몇 발짝 뒤로 물러 놓기만 해도 원할 때면 언제든 해지는 것을 바라볼 수 있었다. 어느 날 해가 지는 걸 마흔네 번 - 오역인지 모르겠지만, 국내판에서는 마흔세 번으로 번역되어 있다. - 이나 보았다며, 몹시 슬플 때는 해지는 풍경을 좋아하게 된다고 말하던 어린 왕자였다.


  그래서인지 해지는 풍경을 볼 때면 나는 늘 어린 왕자를 떠올린다. 나 또한 그와 같이 해질 무렵을 좋아해서 하늘이 높고 푸른 날이면 핑크색 노을을 기대하며 들뜨곤 한다. 그리고 예상대로 노을이 예쁘게 물드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오늘의 어린 왕자는 몇 번의 노을을 감상할지 궁금해하기도 한다. 되도록이면 그가 앉은자리에서 노을을 단 한 번만 봤으면, 그래서 그가 몹시 슬프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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