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개인 사진전, The Light Catcher: 빛의 순간들
요즘은 정신없는 날들을 보내고 있다. 사진을 찍은 지 26년 만에 열게 된 첫 개인전 준비 때문이다. 주제에 따라 전시할 사진을 고르고, 설치 위치에 맞춰 크기를 정해 프린트와 액자를 발주해야 한다. 캡션과 작가 노트 작성, 도록 작업 등 해야 할 일이 산더미이지만 그럼에도 설레는 마음으로 기꺼이 하고 있다.
사진전에 대해서는 작년부터 이야기가 있었다. 사업자 모임에서 만나 절친이 된 H의 제안으로 그녀가 운영하는 예술심리연구소에서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늘 나에 대한 지지를 아끼지 않는 그녀는 사계절이 다 지날 때까지 쭉 지켜보다가, 내가 장인이자 예술가 타입이라며 잠자고 있던 꿈을 살며시 깨웠다. ‘내년에 사진전을 하자!’ 했던 그 제안이 드디어 현실이 되었다.
사진은 평생 즐길 취미로만 남겨둘 생각이었다. IT업계에서 뿌리를 내리던 김 과장이 어느 날 갑자기 디저트샵 사장이 되었고, 공간은 사라졌어도 베이킹을 놓지 않고 있었으므로 또 다른 경로를 탐색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베이킹이 천직이라 철석같이 믿었고, 실제로도 그 일을 하며 큰 성취감과 행복을 느꼈다. 하지만 좋아하는 마음에도 불구하고 신체의 반응이 달랐다. 사업을 목적으로 베이킹을 하다 보니 에너지 소모가 커서인지 도무지 효율이 나지 않았다. 육아와 사업 모두를 혼자 해내야 하는 것도 쉽게 지치게 하는 요인이었다. 결국 세상만사가 다 귀찮아져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모든 것에 손을 떼고 있던 올해의 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도 H는 하루의 스케줄을 조정하여 나를 만나러 와줬다. 친구가 된 후 매년 생일은 꼭 함께 하겠다는 다짐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성수동의 가정식백반집에서 건강한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우리는 깊은 대화를 나눴다. 내 힘들었던 시절의 이야기를 듣던 그녀는 참 고생 많았다고, 잘 견뎌왔다고 진심 어린 위로를 해주었다. 내 어깨를 토닥이며 눈물을 훔치던 H가 다시금 활동을 시작해 보자며 또다시 나를 일으켜 세웠다.
그 힘으로 몇몇 선생님들과 지난달부터 사업자 클래스를 함께 하고 있다. 그 수업을 들으며 진로에 대한 탐색을 다시 하게 되었고, 그 결과로 ‘사진가로 살고 싶다’는 오래되어 바랜 꿈이 빛을 보게 되었다.
과거를 되돌아보면 나는 항상 그 기로에 서 있었다. 스물한 살이 되었을 때 사진을 전공하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혔고, 서른이 되어 회사를 그만두고 스튜디오에 취업을 하려고 했지만 두려움 앞에 스스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가끔은 일본어도 못하면서 일본으로 훌쩍 떠났던 스물셋의 나처럼, 한번 더 무모한 도전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한다. 그 생각의 원인은 ‘웨딩 스냅 촬영’에 있다.
거의 모든 친구들의 웨딩 스냅 촬영은 내 담당이었다. 친구 A의 웨딩 촬영에서 보조 스냅 촬영을 하고 있으면, 친구 B가 자신의 웨딩 스냅을 부탁한다. 친구 B의 웨딩 촬영장에서 만난 친구 C도 같은 부탁을 한다. 그렇게 이어달리기처럼 촬영을 다니다 보니 이름 있는 웨딩 스튜디오는 다 가봤다. 그곳에서 실장님들이 촬영하는 것을 가까이서 보다가, 어느새 나는 반쯤 스탭이 되어 가고 있었다. 촬영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주변 정리를 하고 조명도 치고 있으니, 가는 곳마다 스카우트 제의가 끊이지 않았다. 그래서 서른의 나이에도 진로를 변경해볼까 싶은 용기가 생겼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때 진짜 용기를 냈다면, 나는 또 진로에 대한 고민으로 머리를 싸매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진 업계가 쉽지 않은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고, 훌륭한 작가들도 너무 많다. 그 속에서 과연 내가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이제야 무모한 도전을 해보겠다 용기를 낸 것은, 무엇 하나 진득이 한 것 없는 내가 유일하게 꾸준히 하고 있는 것이 사진이기 때문이다. 힘들면서도 베이킹을 계속 놓지 못한 이유도 거기서 찾았다.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겨우 찾은 일이 또 실패로 돌아갈까 봐 두려웠다. 마음과 몸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어서 부정이 인식되면 결국은 탈이 나게 된다. 어떻게든 해내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신체를 지배하고 있었지만 무의식의 두려움을 눈치챈 몸은 거짓말을 못한다.
AI로 사진도 뚝딱 만들어내는 시대에 사진가는 이제 없어질 거라고들 한다. 하지만 나는 사람들의 마음에서 희망을 본다. 디지털이 익숙한 세상에 사람들은 아날로그로의 회귀를 꿈꾼다. 디지털카메라로 필름 같은 느낌을 구현하려 노력하고, 미쳐버린 필름값에도 굳이 필름카메라를 쓰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 그 반증이다.
그래서 나는 더욱 선명하게 사진가로서의 나를 그려본다. 내가 사진을 하고 싶은 이유, 그것은 결국 사진을 통해 다정한 위로를 전달하고 싶어서이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 모습을 담아내는 사람이고 싶다. 또한 기록의 장치인 사진으로, 누군가의 역사 속에 함께 함을 영광으로 생각하는 기록가로 남고 싶다. 그리고 그 이전에, 그냥 즐거운 마음으로 순간을 영원으로 만드는 사진을 찍고 싶다.
오래된 꿈을 다시금 마주할 수 있게 해 준 H에게, 진심을 담아 고마움을 전한다.
6월 3일부터 9월 13일까지 약 3개월 간 저의 첫 사진전이 열립니다.
작은 규모의 전시지만, 마음에 빛이 필요하신 분들이라면 제 사진을 통해 작은 위로의 시간이 될 수 있도록 기쁜 마음으로 잘 준비해 두겠습니다.
6월 15일 토요일에는 같은 장소에서 플리마켓이 열립니다.
사진 포스터와 폴라로이드 액자, 전시 도록 등의 굿즈 상품을 만나볼 수 있으니 따뜻한 관심 부탁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