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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앨리스 May 17. 2024

시들지 않는 우아한 위로

핑크빛 안스리움의 생명력이 내게 준 힘

안산 본오동의 집 베란다, 2021 / iPhone 8+

  어릴 때부터 우리 집은 늘 식물원 같았다. 여기저기 눈 돌리는 곳마다 꽃화분과 난초, 그리고 온갖 관엽수들이 자리를 잡아 초록색이 가득했던 풍경이 기억난다. 타고난 식집사인 엄마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나 또한 식물 키우는 것을 좋아한다. 옹기종기 모여 서로의 자태를 뽐내는 꽃과 식물들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자꾸만 마음이 간다. 


  한 겨울에 태어난 아이가 백일을 맞이하자 봄이 찾아왔다. 따사로운 봄햇살을 맞으며 아기띠를 메고 집 근처로 산책을 나가면 나의 발걸음은 언제나 꽃이 가득한 화원으로 향했다. 알록달록한 색감을 눈으로 즐기다가 시야에 들어온 핑크 안스리움은 동향임에도 하루종일 빛이 잘 들던 우리 집 베란다에 자리를 잡았다. 통풍이 잘 되는 토분에 옮겨 심고, 공중 분무를 좋아한다는 안스리움을 위해 생각날 때마다 물을 뿌려주었다.


  봄볕을 가득 받고 때때로 빗물 샤워도 하던 안스리움은 연둣빛 새잎도, 핑크빛 포엽도 열심히 올려주었다. 아이가 커가는 동안 안스리움도 함께 무럭무럭 커가고 있었고, 그 사이 계절은 여름의 문턱을 밟았다. 이른 아침, 여름의 뜨거운 빛이 찾아오기 전 화분에 물을 주면서 안스리움의 시든 꽃대를 잘라냈다. 그때 베란다 벽에 떨어지던 빛과 안스리움 포엽의 붉은빛이 절묘하게 잘 어울려 사진을 찍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작년 10월, 점점 추워지던 날 안스리움은 딱 한 송이의 꽃만을 피웠다. 조건만 잘 맞는다면 1년 내내 꽃을 볼 수도 있다지만, 함께 한 3년 내내 날씨가 추워지면 초록의 잎만 유지하던 녀석이라 조금은 특별하게 여겨졌다. 그 겨울, 내가 내면의 힘든 일들을 묵묵히 이겨내는 동안, 안스리움은 그 한 송이의 꽃으로 우아한 자태를 잃지 않으며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화분에 물을 줘야 하는 날이면 나는 그 꽃을 보며 힘을 얻곤 했다. 겨울이 다 지나고 나면 너 또한 우아한 날개처럼 활짝 피어나게 될 거야. 마치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 같기도 했다.


  또다시 봄이 되었고, 마음의 파도는 잔잔해졌다. 언제고 풍랑은 다시 찾아오겠지만, 아무튼 현재의 상태는 평온하다. 그리고 놀랍게도 겨우내 나의 곁을 지켜줬던 그 꽃은 여전히 시들지 않고 그대로다. 안스리움의 꽃이 오래간다고는 해도 7개월을 지지 않는 것은 조금 이상하기도 하지만, 지지 않는 생명력으로 나에게 끊임없이 힘을 주고 있어 그저 고맙기만 하다. 언젠가는 두 장의 포엽을 가진 꽃을 피운 적도 있는 녀석은 조금 특이해서 더욱 특별하다. 아이가 태어나며 함께 해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나의 핑크 안스리움처럼, 나 또한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끈질긴 생명력으로 잘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무너져도 시간이 지나면 훌훌 털고 또다시 일어나 씩씩하게, 그러면서도 우아하게 걸어 나가고 싶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역경을 이겨낸 사람만이 해줄 수 있는 가장 따뜻한 위로를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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