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 예찬
고작 1시간을 겨우 달려 낼 줄 아는 주제에
달리기에 대해서 할 말은 주렁주렁 많이 달립니다.
달리는 동안엔 별생각 없다가도
달리고 나면 쓸 말은 주저리주저리 길어집니다.
지난 고양 하프마라톤 대회에서 10km를 달리며 느꼈던
달리기와 인생의 은유에 대해 적어보려 합니다.
글쓰기와 마찬가지로,
달리기와 인생살이 모두 초보자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그냥 제 생각입니다.
지난 글의 말미에
돈 주는 것도 아닌데 사람들이 왜 이렇게 뜀박질을 해 내는지 모르겠다고
백 번을 뛰어도 설명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사실
달리기가 주는 무언의 자아성찰과
그 외에 달리기가 가진 어떠한 철학적, 정신적 효용을 제외하더라도
달리면
살도 빠지고
체력도 늘고
하체 근육도 크고
피부도 좋아지고
심폐 지구력도 상승합니다.
돈 안 줘도 뛸만한 이유를 대라면 10가지는 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달리기를 시작한 사람들이
달리기가 주는 철학적 사유도 누린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글의 흥분은 이쯤 가라앉히고
달리기가 인생에 어떤 은유를 제시하는지
제 느낀 바를 적어보고자 합니다.
우선,
달리는 행위 자체가 전하는 은유는 무엇인가 고민해 봤습니다.
달리기는 한번 길에 나가 뛰기 시작하면
집에 올 때까진 걸음을 멈출 수 없습니다.
걸을 수도 있고, 중간에 버스를 탈 수도 있지만,
갑자기 길에 멈춰 그 자리에서 하루를 마감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포기해선 안된다는 암묵적 동의가 더해진 마라톤 대회에선
모두 4개의 옷핀으로 고정한 배번표를 품고
대부분 목표한 거리를 쉬지 않고 뛰어냅니다.
그리고 몇몇은 나름의 이유로 잠시 걷기를 택합니다.
아주 조금은 달리기를 포기하고 버스에 탑승하기도 합니다.
이는 사실 우리 인생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주변을 잘 살펴보면
하루를 48시간처럼, 몸이 2개인 것처럼 자기 삶을 일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쉬지 않고 삶을 앞으로, 미래로 이끕니다.
그러다 보면 정강이가 당기기도 하고, 발목이 아프기도 하고,
전날 먹은 찌개가 좀 얹히기도 할 겁니다.
그럼 잠시 쉬어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평생을 뛰어갈 순 없으니 잠시 호흡을 가다듬는 시기를
다들 보냅니다.
그런데 사람들마다
정강이가 좀 심하게 당기기도 하고,
호흡은 좀처럼 돌아오지 않고,
같은 언덕도 더 가파르게 느끼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들은 고통을 참지 못하고 제자리에 멈춰 서기도 합니다.
제자리에 멈추어 서 있으면 달리기는 마무리가 되지 않습니다.
길가에 앉아서는 내일을 맞이할 수 없습니다.
두 발을 어떻게든 내디뎌야만 합니다.
그러나 달리기와는 다르게
인생엔 정해진 결승점이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제자리에서 머물고자 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듯합니다.
고양종합운동장에 도착하면 물도 먹고 메달도 준다니
마지막 1km는 젖 먹던 힘까지 뛸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인생은 어떻게 된 게 1년이 남았는지 10년이 남았는지 알 수 없고
알 수 없는 끝에 가보면 '죽음'을 맞이한다는데,
50년이고 100년이고 마라톤을 했는데 사진 찍을새도 없이 죽어야 한다니,
도저히 억울해서 인생이란 마라톤은 달리기가 싫어집니다.
이것이 제가 느낀 첫 번째 달리기의 은유입니다.
누구나 각자의 목표를 가지고 삶을 살고
나름의 이유로 삶의 속도를 늦춥니다.
또 나름의 이유로 제자리에 머물기도 합니다.
달리 결승점이 없는 마라톤인 탓에
마라톤보다 훨씬 달리기 힘듭니다.
그것이 우리가 지금 사는 삶이 아닌가 합니다.
두 번째로,
배번표가 우리에게 전하는 은유입니다.
배번표는 마라톤 대회에 참여한 사람들이 속한 그룹과 이름, 배번이 적혀있는 a4용지 크기의 종이를 말합니다.
타 스포츠와 비슷하게 마라톤에도 과학기술의 발전은 기록의 단축으로 이어져 왔습니다.
선수들의 러닝화엔 탄소판을 심어 강한 반발력을 주게 하는 등
이젠 단순히 선수들의 마라톤이 아니라는 얘기가 나오곤 합니다.
그런데 수백 년 전부터 이어져 온 마라톤에서 변하지 않는 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건 바로 옷핀 4개로 헐렁하게 고정해놓은 배번표 입니다.
언젠가 그런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마라톤은 단순히 달리기가 아니라,
그들에게 주어진 배번표를 처음부터 끝까지 옮기는 스포츠라는 글이었습니다.
실제로 배번표는 대회를 달리는 선수들의 기록을 측정하는 기록집이 탑재되어 있어,
대회 공식 기록을 측정하기 위해선 반드시 종점까지 함께해야 할 동반자이기도 합니다,
대회를 달리는 사람들이 사실은 배번표를 옮기는 운반자라는 생각을 하자니
배번표가 우리 삶에 주는 은유를 알 듯합니다.
배번표가 우리 삶의 의미라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 합니다.
배번표는 사실 우리 배에 옷핀 4개로 고정해서
달리기 전날 밤 설레는 마음으로 상의에 배번을 고정할 때와
끝나고 나서 우리의 달리기를 기록한 사진을 볼 때를 제외하곤
우리의 이름이 적힌 배번표는 달리는 내내 볼 수 없습니다.
사실 삶의 의미 또한 그렇진 않은지 생각해 보자면,
우리가 삶을 살면서 '나의 삶의 의미'라는 해석을 내릴 수 있는 단어 하나를 정의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정말 성실하고 부지런한 사람들은 '타인에 봉사하는 삶' , ' 부자가 되는 삶' , '효도하는 삶' 등으로 정의 내리긴 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내 삶의 의미'는 평생을 지루하게 고민만 하다 죽은 수많은 철학자들도 정의 내리지 못한 단어입니다.
인생이라는 장거리 경주를 달리는 동안에는 삶의 의미를 명확히 찾아내기 힘들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무엇인지, 어디인지, 언제인지 실체를 알 수 없는 것을 위해 끝까지 달려가야 한다는 점이
달리기와 인생의 공통점이 아닌가 하는 의문입니다.
어떤 생각이신지 궁금합니다.
마지막으로,
목표한 거리를 끝까지 뛰어내는 두 다리가 우리에게 전하는 은유입니다.
제대로 된 달리기를 하기 위해선 정확한 자세로 전신에 신경을 쓰며 달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걷기를 할 때 실제로 걷는 행위는 두 발이 하듯이,
달리기 또한 그 행위의 주체는 우리의 두 발입니다.
목표한 시간 안에 목표한 거리를 다 뛰어내기 위해선,
내 두 발을 꾸준히 굴러야만 합니다.
또한 목표한 거리를 쉬지 않고 뛰어냈다는 얘기는
내 두 발이 얼마간 쉬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인생을 쉬지 않고 꾸준히 앞으로 달려내는 사람들을 지켜보면
하나같이 비슷한 말들을 합니다.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철학자 중에도 종종 보입니다.
"미래나 과거는 크게 얽매이지 말고, 주어진 하루를 성실히 살아라"
내가 설정한 목표를 위해서 쉼 없이 두발을 굴러야 하는 달리기.
내가 설정한 목표를 위해서 매일 하루를 성실히 살아야 하는 삶.
어딘가 닮은 구석이 있어 보입니다.
처음
달리기를 주제로 책을 쓴 무라카미 하루키를 보고,
'참 그거 달리고 할 말 많소' 하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달리기 그거 누구나 할 줄 아는 건데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하고 거창한 이름을 지을 일인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 책의 부제는
:달리기를 축으로 한 문학과 인생의 회고록>입니다.
달리기를 축으로 자신의 문학 전반과 인생에 대해서 회고할 수 있다니
정말 멋진 인생이라는 생각을 뒤늦게 해봅니다.
한 달에 수백 킬로미터를 뛰는 훈련을 했던 하루키에게
인생을 통틀어 딱 700킬로미터를 달린 한국의 초보 러너가
사과의 말을 전합니다.
달리기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 더욱 많아졌으면 합니다.
또 이 감정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더욱 늘었으면 합니다.
해가 진 저녁엔 그 어느 때보다 뛰기 좋은 선선한 늦봄입니다.
더워지기 전에 꼭 달리러 나가보시길 권합니다.
더 늦기 전에 자신의 달리기도 마저 해 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