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 상실

상실의 시대 2

by 티후

낭만을 잃은 시대라는 말을 많이들 한다.



5살 즈음이었을 2000년대 초반을 생각해 보면,

지금은 확실히 낭만이 사라진 것 같다. 낭만이 무엇인진 알 수 없지만.



물결 랑, 흩어질 만

흩어지는 물결처럼 '제멋대로 하다.'



열려있는 대문과

두꺼운 전화번호부와

하늘을 보며 걷는 사람들의 모습이

제멋대로 하는 모습인가 하면

잘 모르겠다.



지난 글에서 말했던

과학기술의 발전과 생산기술의 발달이 ....

우리들의 낭만을 좀 앗아갔을지도 모른다.


재밌는 이야기들이 끝없이 뿜어 나오는 작은 화면이

좀처럼 고개를 들고 하늘 볼 일이 없게 하니 말이다.


서울을 촘촘히 가로지르는 버스와 지하철이

좀처럼 걸을 일이 없게 하니 말이다.




하지만 정말 발전이나 발달 따위의 것들이 사람들의 낭만을 다 빼앗아 간 것일까?

과학 기술의 발전이 하늘을 쳐다보는 것을 못 하게 했단 말인가?



.

.

.



낭만은 사실 사람들 속에 있다.

다만 과거엔 그 낭만을 서로 얼굴을 보고 나누었고

서로의 낭만에 관심을 가졌다.




코로나가 끝난 후,

사람들은 비대면의 편안함에 익숙해져 버렸다.

교수님의 강의를 몇 번이나 돌려볼 수 있고, 한 주의 수업을 몰아서 들을 수 있었던 편안함을,

직장 동료의 얼굴을 맞대지 않고 일을 할 수 있다는, 불필요한 인간관계를 하지 않아도 되었던 편안함을,

영화관에 가지 않고도 집에서 편하게 누워 영화를 보는, 마트에 무거운 장을 보러 가지 않고도 배달 받아 보는 편안함을



사람들은 알게 되었다.




그들은 그렇게 낭만을 잃었다.





얼굴을 마주 보지 않아도 되는 얕고 단발적인 인간관계들이 많아지고,

속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은 적어진다.




사랑하는 이와 영화관에 가 콜라와 팝콘을 손에 들고 영화를 보던 이들은

맛있는 배달음식을 시켜 혼자 영화를 본다.




엄마와 마트에 가 알록달록한 과일과 야채를 만지던 손길은

축축한 박스를 여는 녹슨 커터 칼로 대체되었다.





아마도 낭만이 있던 시대에 살던 사람들은

낭만이 없는 지금을 살며 나이가 잔뜩 들어버렸을 것이다.

낭만이 먼저 사라진 것인지,

나이가 먼저 들어버린 것인지,

잘 모르겠다.




나이가 들며 짊어진 책임과 의무에 낭만은 좇을 시간이 없게 된 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다시 오지 않을 낭만을 허망하게 기다리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낭만은 다신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지나버린 시간처럼 말이다.




.

.

.





낭만을 좇는 게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슬픈 일인지 행복한 일인지


의미 있는 것인지, 그렇지 못한지,


잘 모르겠다.



아름다움을 좇는 것에 좋고 나쁨이 있었던가?


KakaoTalk_20250225_225414634.jpg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인간성 상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