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하게도, 대한민국은 사계절 내내 비가 온다. 그중 가을에 내리는 비는 여타 다른 계절의 비와는 다르게 슬프다. 봄비는 매캐하고 탁한 봄 하늘을 깨끗이 씻어 내려주는 반가운 손님이다. 여름 장마는 오랫동안 이어진 무더위를 식혀 준다. 겨울에 내리는 비는, 진눈깨비 같이 날리며 우리가 사랑하는 연말의 시작을 알린다.
반면 가을비는, 겨울의 풍경을 들고 찾아온다. 가로수에 매달린 은행, 단풍잎들은 길가에 떨어져 발에 차이고, 기온은 영하로 떨어져 사람들의 옷차림을 두껍게 만든다. 유난스럽게 가을을 타는 사람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가을의 향기와 분위기를 다 즐기지도 못했음을 아쉬워하게 한다.
가을은 남들처럼 3개월을 가득 채워 보내지 못했다고 서러워하지 않는다. 제 몫을 다 챙기지 못한 가을을 위로하는 이도 없다. 가을은 그저 왔다가, 갈 뿐이다. 알아주는 이 하나 없어도 우릴 찾아오고, 가을비와 함께 조용히 떠난다. 다음에 또 오겠다는 말도 없이 오고 간다.
가을과 같은 사람들이 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인정해주지 않아도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 자리는 사회를 굴러가게 하는 고된 직업일 수도 있다, 가족의 구성원 일수도 있다. 또는 누군가의 친구일 수도 있다. 누군가 특별히 고마워하고, 인정해주지 않아도 그 자리에 머무르는 사람이고 싶다. 아버지처럼, 친구처럼, 때론 가을처럼 조건을 따지지 않고 찾아올 줄 아는 사람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