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학기 나를 가장 초조하게 하는 과목인 해석학은 수열, 극한, 미분, 적분 등의 개념을 활용하여 함수의 성질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함수를 해석하기 위해 기초가 되는 공리, 원리, 정의 등을 배우고, 이들을 활용해 함수의 극한과 연속을 고등학생시절 배운 것보다 엄밀하게 증명한다. 이를 위해서, 1+1=2 같은 당연한 사실들 또한 여러 공리와 이미 증명되어 사용되는 정의를 통해 증명을 해야만 했다. 이번 학기 오랜 시간 함께 정의들을 증명하고, 그 증명을 우리의 말로 적어내는 법을 고민했었던 조원들과 가장 많이 했던 말은, '아니 이건 당연한거 아니야?' 였다. 1<2 이라는 부등식이 성립하는 이유를 설명해야 했고, '얘가 얘보다 크면 얘가 쟤보단 크니까, 얘가 걔보단 크다' 같은 말을 증명해야만 했다.
이런 크기 비교를 할 때, 자주 사용되었던 입실론은 아마 생의 마지막 병원에 누워있을 때에도 기억날 듯 하다. 임의의 양수 입실론이 존재한다, 입실론을 선택한다, 입실론을 고정한다 등 극한, 연속 등의 증명에서 크기 비교를 해야할 때, 임의의 양수 입실론은 유용하게 사용된다. 이 입실론은 작다고 말하기엔 불충분할 정도로 작은 양수이다. 극한까지 보낸 후에도 입실론 보다 작아져야만 그 부등식이 성립한다고 말할 수 있다. 위에서 설명한 우리가 모두 알고 맞다고 여겨왔던 사실들을 증명해낼 때, 작은 수 보다 더 작은, 가장 작은 수(가장 작다는 표현도 어딘가 부족해 보인다) 입실론을 가져와서 증명해 낸다.
이처럼 해석학에서의 '해석'은, 우리가 당연히 여기던 함수의 성질을 의심하고, 모두가 인정하고 증명이 필요없는 것(공리, 입실론)을 활용해 함수를 다시 한번 정의한다는게 나의 감상이다. 이렇게 모든 사실을 엄밀하게 증명하고, 정말 작은 범위 에서까지 비교를 마친 후에야 그 사실을 사실로써 받아 들이는건, 정말 수학에서만 가능한 듯 하다.
그런데 요즘 우리는 서로의 삶을 해석하려고 하는듯 하다. 인간의 삶은 함수처럼 모두가 인정하고 증명이 필요없는 사실 따위도 없고, 각자의 사회적, 도덕적 가치관이 다르다. 고통의 역치도 모두 다르고, 태어나 살아온 수십년의 삶이 다르다. 따라서 힘듦의 정도를 나의 삶 > 너의 삶 따위의 부등식으로 나타내는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자신이 현재 처한 상황을 비관한 나머지, 내가 사는 삶은 모든 타인의 삶과 비교해도 가장 힘들다고 여기고, 이 태도를 행동으로써 나타내는 사람들이 있다. 혹 행동으로 드러나지 않더라도 그 마음가짐이 자신을 갉아먹는다는 사실은 모른 채 살아가는 사람들도 종종 보인다.
성별, 나이, 학벌, 지역, 장애, 인종 등 부등식의 양변으로 가를 수 있는 기준만 있다면 어디든 차별과 갈등이 만연하다. 남자와 여자라는 단편적인 잣대로 인간을 반으로 갈라 각자가 처한 어려운 현실을 해소해주기만을 외치고, '요즘 세대' 라는 쉬운 말로 일정 연령 이하의 모든 인간을 묶어 그들에게 특성을 부여하는 사회적인 현상이 당연하게 벌어지고 있다. 부등식이 성립하려면, 양변에 동일한 조건을 더하고 빼주어야 한다는 사실은 다 잊은듯 하다.
(남자) / (여자), (비장애) / (장애), (흑인) / (백인), (서울) / (지방) 같은 일차원적인 비교가 아닌, (성별+나이+학벌+지역+장애+인종) 대 (성별+나이+학벌+지역+장애+인종)의 비교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이러한 비교가 이루어 질 때, 입실론 같은 매우 작은 숫자 따위로 저 모든 조건의 우와 열을 가릴 수 있을까? 혹 가릴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코시나 테일러, 라이프니츠 같은 인물들이 무덤에서 일어나 대화를 나누고자 할 지 모른다. 삶이라는 잘 정의되지 않고, 공리는 존재하지 않으며, 누구나 받아들이고 통용되는 사실이 존재하지 않는 함수에 입실론과 같은 개념을 도입한 사람이 될테니 말이다.
현재의 우리는 서로의 삶의 해석보다는 삶의 이해가 더욱 필요한 시점이다. 나와 너의 삶을 부등식으로 표현하기 보다, '너의 삶은 이러해서 힘들고, 나의 삶은 이러해서 힘들구나' 정도의 이해가 갈등과 이견을 덜 일으키는 삶의 방식인듯 하다. 우리의 삶을 여러 기준으로 재단하고, '내가 얘보단 낫고 쟤보단 좀 덜하니까 내 사회적 위치는 이정도 수준이겠다. 남들은 이정도로 날 바라봐주겠다' 같이 해석학적으로 사고하기 보단, '난 이런면에선 이렇고, 저런면에선 이러하니까, 전반적으로 어떠한 사람이구나' 정도의 중학교 수학스러운 생각으로 삶을 살다보면 자연스레 타인에 대한 해석보단 이해가 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시 해석학 과제를 펼칠 시간이다. 우리 삶에 못다한 해석은 해석학에서만 하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