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풀꽃> - 나태주

by 티후


<행복> - 나태주



저녁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 있다는 것.






시인은 성실한 플로리스트이다. 수년간 애지중지 가꾸어 온 정원의 꽃들을 그 색과 향기의 조화를 고민해서 아름다운 꽃 한 다발을 세상에 내어 놓는다. 그 꽃송이들은 어디 백과사전 같은 곳에 '좋은 시를 위한 한글 모음집'으로 모여있지 않다. 시인은 오랜 세월 독서를 통해 마음속 정원에 모아왔던 한글들을 조심스레 묶어도 보고, 떼어 보기도 하며 그들의 꽃다발을 가꾼다. 좋은 시를 쓰기 위해 평생 독서를 멈추지 않고, 매일 글을 적어낸다.



프랑스 시인 발레리는 시와 산문과의 차이를 말함에 있어서 전자를 무용(舞踊)에, 후자를 보행(步行)에 비유하고, 산문은 보행과 같이 명확한 하나의 대상을 가지고 어떤 대상을 향한 한 행위로서 그 대상에 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데 반해, 시는 무용과같이 그것도 행위의 한 체계이기는 하지만 도리어 그 행위 자체를 궁극적인 목적으로 한다고 말하였다. 즉 시는 무용과같이 어딘가를 목표로 하여 가는 것이 아니라 굳이 말한다면 하나의 황홀한 상태, 생명의 충일감(充溢感)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시 [詩]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그들이 내어 놓은 시가 아름다운 첫 번째 이유는 시와 산문의 차이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발레리가 말했듯, 산문은 그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모두 한 가지 목적을 지닌 채 적혀 내려간다는 특징이 있다. 소설은 그 결말을 내기 위해 책의 마지막 장까지 빼곡히 적혀 있다. 평론은 창작물의 평가를 위해 적어 낸 글이며, 일기는 나의 하루를 기록한다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반면 시는 이렇다 할 목적을 지니지 않았다. 정보 전달, 평가나 기록 등의 목적을 가지지 않은 채 적힌 시는 그저 시를 쓰는 그 순간과 독자가 이를 읽는 순간에 교류가 발생할 뿐이다. 즐거움, 슬픔이나 안타까움 등의 감정을 담아낸 시 일지라도, 독자가 그 시를 접하는 순간의 감정이 어떤가에 따라 감상은 달라진다. 글의 아름다움 그 자체를 전달한다는 특성이 시를 읽는 걸 즐겁게 한다.

시가 아름다운 두 번째 이유는, 시가 운율을 지닌 함축적 단어들로 적혀있다는 것이다. 외형률, 음수율, 음보율, 각운, 수미상관, 내재율, 음성상징어 등.. 시인은 다양한 도구를 통해 그들의 꽃다발에 운율을 더한다. 심지어는 '시적 허용'이라는 무적의 도구를 꺼내 맞춤법, 띄어쓰기에 구애받지 않고 시를 쓰기도 한다. 낱말, 단어, 띄어쓰기, 줄바꿈, 문단, 단락 등의 형식을 따져 적어야 하는 산문과는 달리 시는 쓰는 사람 마음대로 엔터키를 눌러도 되고, 원하는 만큼 스페이스바를 연타해도 좋다. 내가 의미하는 바가 있다면,,,,,,, 쉼표도 무한히 사용해도 무방하다. 그렇게 생긴 운율은 읽는 사람에게 재미를 주고, 시인이 형성한 자간, 행간의 공백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의 여지를 선사한다. 같은 감정을 지닌 독자에게 마저도 시인은 같은 감상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러한 시의 자유로운 생동감이 시를 더욱 아름답게 한다.

마지막으로, 정말 개인적인 이유이지만, 여타 글에 비해 매우 짧은 길이가 시를 읽는 것을 즐겁게 한다. 300페이지가 넘는 책장을 모두 넘겨야 끝맺을 수 있는 소설과 달리, 짧으면 20개, 많아야 200개 남짓의 단어만 읽으면 시 한 편을 읽는데 성공한다. 많은 주인공이 나오지도 않고, 기억해야 할 만한 사건도 없다. 수능 문학을 준비하는 게 아니라면 단어 하나하나를 이해하는데 집중할 필요도 없다. 읽히는 대로 읽고 나름의 해석을 하면 된다는 사실이 시를 읽는 걸 즐겁게 한다. 부담 없이 읽기 시작할 수 있는 글이라 더욱 아름답다.

시는 마치 사람의 인생 같다. 특별한 목적을 갖고 태어나지 않는다는 점, 어떤 사람을 만나는지에 따라 다르게 상호작용한다는 점, 여러 이유에서 아름답다는 점 등.. 그래서 시인은 삶을 시로써 풀어내는 듯하다. 삶이 하나의 시일 때, 내가 그 시를 적어내려가는 시인이라면, 내 삶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든 슬프지 않을 것 같다. 목적 없이 세상에 나왔으니 내 삶이 잠시 돌아가더라도, 방향이 반대로 가더라도 자책하고 아쉬워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어려운 시기에 처했다면 잠시 긴 행간에 머물고 있다 위로하고, 아름다운 단어가 떠오를 것이라 믿고 시를 적어낼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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