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급함 / 불안함 / 게으름
참을성이 많이 사라졌어요. 답장은 바로바로 와야 하고, 결과도 바로바로 들어야 직성이 풀립니다. 그렇지 않으면 기다리는 시간 동안 마음이 불안해서요. 인생의 선배들은 기다리다 보면 어떻게든 풀린다는데, 대체 어떻게 얌전히 기다릴 수 있는지, 마음의 평정을 찾을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회사에서 일이 많지도 않은데, 마음만 자꾸 급해서 뛰어다닙니다. 나도 청춘인데 매일 조급하느라 청춘을 즐기지 못해서 억울합니다.
저는 만으로 20대 후반입니다. 30대가 되려면 조금 멀었군요. 그런데 시간이 너무 빨라서 금방 30대가 될 것 같아요.
3년 동안 한 곳에서 계약직으로 일했습니다. 그리고 곧 계약이 만료됩니다. 저는 여기서 재직하는 동안 매년 공채에 도전했고, 마지막까지 탈락했습니다. 마지막 해에는 정말 열심히 공부했기 때문에 "그간 고생 많이 했고, 내년에 다시 도전하면 되지."라는 응원과 위로를 많이 들었습니다. 물론 다시 도전할 수 있어요. 지원서 넣는 일은 공짜니까요. 그런데 아직까지 필기시험을 통과할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은 잘 회복되지 않네요.
아무튼 저는 그간 일하며 돈을 제법 모았습니다. 계약 만료로 인한 퇴사라 실업급여 대상도 될 것 같아요. 그런데 불안해요. 경기가 계속 나빠지고 있다는데 실업급여가 끝나고 나서도 재취업을 못하면 어떡하죠? 그래서 돈을 못 벌면 어떡하죠? 만약 제가 선택을 잘못해서 앞으로 10년, 20년 후에도 제대로 먹고 살 방안을 마련해놓지 못하면 어떡하죠?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사라지지 않아서 머리가 안개 낀 것처럼 뿌옇습니다.
그런데 웃기는 게 뭔지 알아요? 이렇게 조급하고 불안해서 회사에선 뛰어다니고 휴일엔 놀러도 다니지 않으면서 정작 집으로 돌아오면 침대부터 찾는다는 거예요. 청소기를 돌린 지는 2주가 넘었고, 밥은 먹고 싶으면 먹고 아니면 말고(대체로 거르는 경우가 좀 더 많네요), 빨래는 하지 않으면 입을 옷이 없으니 최후의 순간까지 미뤘다가 하게 됩니다. 자격증 시험도 접수했는데, 인강만 대충 듣는 둥 마는 둥.
저는 사실 이 조급함도, 불안함도, 게으름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머리로 알고 있습니다. 그냥 다 놓고 딱 정해진 기간만 제 멋대로 구는 거예요. 먹고, 자고, 놀고, 생산성 없다고 생각했던 취미들에 시간을 투자하면서요. 그런데 못하고 있습니다. 못하고 있는 원인은 저입니다. 조급하고, 불안하고, 무서워서 못하겠어요.
나는 아직 젊고 건강하고, 저축한 돈도 있고, 사실은 생산성 없는 취미도 즐기는 시간을 갖고 싶은데 도대체 왜 집착을 놓지 못하는 걸까요. 나는 왜 이 젊은 청춘을 약을 먹으며, 매일 밤을 울며, 가슴 조이는 화병을 달며 살고 있을까요. 제발 저 자신에게 빌고 싶어요. 그러지 말라고.
어제는 엄마의 카톡을 받았습니다.
- 우리 딸
- 지금 면접 보러 가려는 곳은 언제든지 자리가 나는 곳인데
- 내 생각엔 실업급여받는 동안은 좀 편히 쉬었으면 해
- 쉼 없이 달렸으니 재충전한다 생각하고
- 6개월인데 넘 아깝지 않니?
- 앞으로 평생 일할텐데 생각해 보렴
사실은 실업급여가 아니라 제발 마음을 편하게 먹어달라는 속내가 너무 잘 느껴져서, 그래서 어젯밤에도 나는 울었습니다.
*저녁에 갑자기 치킨이 먹고싶어졌고, 치킨이 맛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