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감자? 아니 이젠 식었나?
* 스포일러 주의
대한민국에 조남주 작가님의 <82년생 김지영>을 모르는 자가 더 이상 있을까?
이 작품은 이제 단순 문학작품이 아니다.
거기서 나아가, 어떤 심오한 개념을 지닌 그런 오브제이다.
페미니즘 문학이란 이름표를 달고,
누군가는 허구의 작품이라며 손가락질하고,
누군가는 처절한 현실이라며 되뇌는 그런 복잡한 작품.
그래서 내 첫 번째 책으로 선택하게 된 면도 있다.
이런 논란 속의 책을 읽지 않을 수 없지! 하는 치기 어린 맘.
말을 많이 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첫째로 전문가가 아니며,
둘째로 내 생각이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의 생각으로 일반화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사실 내 생각을 쏟아내는 단순한 이 행위에도
뭔가 키보드 위의 손가락이 무거워짐을 실시간으로 느낀다.
그래서 나는 단순히 내가 느낀 점과 공감하는 점, 깨달은 점 위주로 간략히 서사하겠다.
a. 김은영 씨의 대입과 포기
책의 70여 페이지를 읽어오며 나는 담담한 나 스스로에게 매우 큰 충격을 받았다.
글을 쓰겠다고 이렇게 호언장담 했건만 다채롭게 느낀 게 없는 건가!
초반 김지영 씨의 '망가짐' 이후로 서술되는 과거 그녀의 삶은 나의 것과 동일했으며,
아마 대한민국 20대-30대 여성의 대부분은 같은 그것을 지녔으리라.
하지만 김은영 씨(김지영 씨의 친언니)가 장래 PD가 되고 싶었던 꿈을 접고 교대로 향하는 것을 보며,
어머니 오미숙 씨와의 짧은 대담에도 결국은 스스로 납득해버린 그녀를 보며 가슴 한 구석이 답답해져 왔다.
아니 내 과거의 그림자를 향해 화가 났다는 게 옳은 표현인 것 같다.
대들지 말아야 했다.
내가 맏이여서 일지, 딸이어서 일지는 이 글을 읽는 자가 알아서 생각하길 바란다.
나는 내 동생의 예절에, 예상에, 평균에 벗어나는 행동을 관용하는 부모님에게 반기를 들었다.
"왜 나는 안되고 쟤는 돼?"
이런 금기 같은 말을 할 때면,
부모님이 청학동에서 공수해오신 사랑의 매로 발바닥이 발갛게 부어오를 때까지 맞곤 했다.
괘씸죄였을까?
10대 후반이 되어가며 나는 포기를 배웠다.
대드는 것을 포기했다.
스스로는 포기라고 인지하지 못했다. 오히려 철이 들었다고 착각했지.
부모님과 마찰이 줄 수록 찬란했던 나는 빛이 바래갔고 삶의 재미를 잃었다.
그들이 짜 놓은 안전망 속에서만 다니며,
나는 기껏해야 1박 외박뿐인 친구네 파자마 파티도 참석할 수 없는 그런 엄한 집의 딸이 되어버렸다.
나는 그때 내가 유치하지 않고 성숙한 사람이 되었다고 착각한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주장하다가도,
결국 이겨내지 못할 것을 알아 그냥 내 의견을 꺾어버린다.
그리고 강요된 것을 뒤따르며 내가 스스로 이 선택을 했다고 세뇌한다.
김은영 씨는 결국은 행복했을 수 있다.
어머니 오미숙 씨 본인의 삶을 답습하는,
'딸'은 안정한 직장을 다녀야 하며 돈 많이 안 드는 교육만 받아야 하는 그런,
도전적이지 못하고 수동적인 삶을 선택한 그녀는 교대에 진학해 교사가 되었다.
(결코 교대를 폄하하는 것이 아님을 밝힌다.)
나도 현재 어떠한 과정을 밟아 지금의 안정적이며 월급이 제때 꼬박꼬박 나오는 직업을 지녔다.
하지만 머리가 큰 지금은 그때 내가 좀 더 나다웠다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겠지만,
나에게 김은영 씨는 그런 과거의 나를 바라보는 것 같은 안타까운 향수를 주었다.
b. 김지영 씨의 임신과 출산
김지영 씨의 결혼은 순탄했다.
이해심 많은 남편과 만나 연애부터 결혼까지 무난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사회적으로 '아이'를 가져할 나이와 상황에 도달하였고,
남편의 집안에서는 임신 압박을 주기 시작한다.
남편은 너무도 쉽게
'... 잔소리를 안 듣는 방법이 있긴 한데...' 하며 임신을 제안한다.
그렇다, 자궁을 없는 자에게 임신이란 어떤 사회적 계약-후손을 낳아 가족 형태를 바꾸자는-을 제안하는 것 정도의 무게만 주나 보다.
임신이 여성에게 미치는 영향은 어떠한가.
자궁이 늘어남에 따라 주변 장기가 눌리고 근육이 파손된다.
아이에게 영양분을 공급하느라 몸의 건강을 해치며 빈혈 등의 질병에 노출되기 쉽다.
육체적으론 이러하다.
정신적으론?
약 10개월간 아이 위주의 삶을 살아야 한다.
먹고 싶은 음식과 음료에 제약이 생기며 아파도 약을 처방받기 힘들다.
아이를 담고 있는 걸어 다니는 자궁이 된 것 같다고 하였다.
본인의 인격 자체가 지워지는 것 같다고 하였다.
특히나, 임신과 출산은 직장인 여성에게는 어떠한 '끝'이다.
회사에서 압박을 주는 경우가 많으며 승진 누락은 기본이다.
참 좋은 회사의 경우, 이러한 압박은 주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본인의 건강 상, 상황 상 아이를 위해 여성의, 엄마의 자아실현은 가장 내려놓기 쉬운 것 중 하나다.
이는 차마 내가 이해하기는커녕 서술하기도 힘들 정도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하지만 남자는 너무 쉽게도 제안한다.
지금 애는 낳아야 회사 다니며 애 대학교까지 보내지~
아는 형은 벌써 둘째 임신했대.
이는 자궁이 없음에 따라, 임신과 출산의 주체가 아님에 따라 무지해지는 것일 것이다.
책임의 무게중심에서 살짝 어긋나게 되는 것일 것이다.
궁극적으론 '내 일'이 아니게 되는 것일 것이다.
그녀는 결국 이러한 생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안으로 삭힌다.
남편과 대화했음에도 불구하고 해소되지 않는 그런 '불안감'을 표출하기를 멈춘다.
의외로 주변엔 그녀 같은 사람이 많아서일까?
아니 거의 대부분의 여자가 그녀같이 불안해하면서도 임신과 출산을 해냈기 때문일까?
그녀는 불합리하다고 느끼며 하나씩 포기해가면서도 이상한 소속감을 느낀다.
평균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을 다시 한번 느꼈다.
이는 나 또한 지니고 있는 것으로, 이것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그저 일정량의 무력감을 느꼈을 뿐.
이때의 얕았던 생각은 후에 snowball이 되어 그녀를, 그녀의 가족을 고통스럽게 하지만
그녀가 알았겠는가?
우리 모두 몰랐다.
c. 맘충? 된장녀?
나는 이 두 단어에 면역이 생긴지는 꽤나 오래다.
본인이 소속되지 않은 그룹을 비판하기란 너무나도 쉬운 것이다.
그것을 깨닫고 나니 저 두 단어는 그냥 화자의 떨어지는 공감능력을 나타내는 것으로 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김지영 씨는 어느 좋은 날, 유모차 속 아이와 산책하다가 결국 잠든 아이를 보며 좀 더 걷기 위해 동네 공원에 간다.
평화로운 날씨, 1500원짜리 커피를 사들고 햇빛을 즐기던 그녀는 옆의 직장인 무리가 본인을 맘충으로 칭하는 것을 듣는다.
그녀는 무너진다.
아이와 함께하며 여태껏 한 모든 희생이 이렇게 노골적으로 지워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들의 눈에는 단순히 남편의 벌이에 기생하며 놀고 먹는 여자로 보인 것이다.
남편은 그건 사실이 아니지 않으냐 하며 도닥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못한다.
그는 김지영 씨의 충격의 10분의 1도, 아니 100분의 1도 알아차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이는 것만으로 상대를 판단하는 것은 너무 쉽다.
너무 쉬운 나머지 항상 주변에서 일어나고, 이를 정정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내가 학부생 시절, 한참 초밥에 꽂혔을 때가 있었다.
초밥이 너무 먹고 싶어서 일주일 내내 먹었다.
초밥 가게 사장님과 아르바이트생과도 안면을 텄으며, 그들은 내게 우동이나 유부 초밥 같은 작은 서비스를 주기 시작했다.
약 한 달 뒤, 난 그 가게에 발을 끊었다.
아마 그러면서 자연스레 일이 년간은 초밥에 입도 안 댔던 것 같다.
사장님께서 나를 된장녀라 칭하며, 나를 데려갈 남자 친구 내지는 남편은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고 농담 아닌 농담을 던졌기 때문이다.
모욕감과 수치심이 들었는데 따지고들 순 없었다.
내가 직접 번 돈을 소비하러 간 가게에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진 게 믿기지가 않았다.
아마 그리고 처음으로 초밥을 남겼던 것 같다.
지금 나는 초밥을 너무나도 사랑한다.
그 가게보다 더 비싸고 고급스런 곳에서 초밥 코스요리를 즐기기도 한다.
그들이 나를 된장녀로 칭한 게 말도 안 된다는 것을 알기에.
아니, 된장녀라는 것이 실제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d. 인간의 입체성
DC코믹스나 마블에 등장하는 악당들은 아주 매정한 살인귀로 그려지나,
그들의 행동에 10% 정도 정당성을 부여하는 애틋한 사연이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보통 그들은 정의의 편에서 있다가 일련의 사건을 통해 정의가 부질없음을 깨닫고 악의 화신으로 재탄생한다.
그들도 합리적인 대화가 통하던 시기가 있었으며,
심지어 악으로 활동하는 중에도 자기 족속에게는 추진력 강한 리더이며 그들의 삶을 위해 싸우고 쟁취하도록 도와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이 책은 김지영 씨의 정신과 의사 관점에서 쓰인 책이다.
이 책 말미에 의사의 넋두리를 통해 드러나는데, 이 부분이 이 책의 하이라이트라고 나는 생각한다.
의사는 자신의 와이프-본인보다 우수한 성적의 의대생이었으나 교수직을 포기하고 페이닥터가 되었으며, 이내 아이를 위해 모든 걸 내려놓았다-를 떠올리며
김지영 씨와 자신의 와이프가 본인이 정말 원하는 게 뭔 지 깨달아 이루었으면 한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 대상이 자신이 고용한 상담사인 이수연 씨로 바뀌며 자기모순에 빠진다.
이수연 씨는 어렵게 임신한 덕에 일단 일을 그만두기로 하였으며,
급작스럽게 휴직하게 되며 담당 환자들 대부분이 상담을 종결했다.
처음에는 한두 달 쉬면 되지 왜 그만두지 하며 짜증을 냈다가도,
병원 일이 있어서, 출산 후에는 애가 아파서 등 자주 휴직할 것을 그려내며 차라리 잘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그녀의 예쁜 얼굴과 미소로 병원 분위기를 살렸던 것,
특이한 커피 취향을 잘 알아 편하게 해 줬던 것을 회상하며 그녀의 장점(?)을 추켜세웠다가도
이내 그녀로 인하여 발생한 번거로운 상황때문에 앞으로는 미혼 여성만 뽑아야겠다고 결심하며 글은 끝난다.
인간은 악할 수도 선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선한 자들이 일부 악한 면을 가지고 있는 것은 놀라울 정도로 납득이 쉬운 데,
악한 자들이 일부 선한 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왜 이리도 납득이 어려울까?
이 의사는 진심이다.
매시간 매초 진심이다.
다만 그 대상이 본인이 케어하는 상대인지 아닌지에 따라 본인이 동전의 양면처럼 빠르게 정반대로 변하는 것을 자각하지 못할 뿐이다.
이를 비난하는 것은 책을 덮는 순간부터 그만두었다.
하지만 생각은 깊어졌다.
내가 애정 하는 상대와 아닌 상대들을 나도 모르게 선 그어 다르게 판단해왔을까?
딱 떠오르는 명쾌한 답변은 없었다.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고 결심했다.
아니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해야지 가 옳은 표현 같다.
이 책은 아주 잘 읽히는 책이다.
책의 볼륨도 적당해서 앉은 자리에서 허리의 뻐근함을 느낄 새 없이 완독 하였다.
심지어 독서 중에 핸드폰을 한 번도 만지지 않았다는 것이 매우 인상 깊다.
내 다음 책도 이 정도 사이즈의 몰입감이 높은 책이 되었으면 한다.
2019.04.29 춘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