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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앎 Jan 08. 2024

어른을 향한 연민

어떻게 살 것인가

하루가 넘어야 할 악산(惡山) 같은 날들이 있다. 해결해야 하는 일이 쌓여 끝이 보이지 않던 하루…


그런 날 아침이면 고산병이라도 걸린 듯 숨이 턱턱 막힌다. 높은 산에 있으면 시간이 빨리 흐른다 하지 않았던가, 하루가 순식간에 지나간다. 깊은 한숨을 돌린다. 할 일이 모두 끝나면 스스로 어른이 된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자아도취에 빠져 있는 젊은 혈기의 청년에 불과했다.   



흐르는 시간을 따라 살아온 햇수를 정하고 그에 맞는 대우를 하는 것.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생기는 것, ‘나이’.


잘 먹었다, 똥구멍으로 먹었다, 헛먹었다 등 우리는 나이를 ‘먹는다’로 표현한다. 인간에게 먹는다는 것은 즐거움이면서 자칫 위험한 일이다. 맛있는 음식을 즐기며 먹는 것은 행복이고 필수적인 생리(生理) 행위다. 반면에 제대로 들어가지 못하고 역류하면 눈물, 콧물 쏙 빠지는 고통을 느끼고, 먹지 말아야 할 것을 먹으면 생명에 위태로울 수 있다. 나이를 먹는 것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기에 ‘먹는다’고 하는 것은 아닐까.    



초록 창에 어른을 검색해 본다. 국어사전 풀이를 가만히 보고 있다. 왜 이렇게 허무할까. 어른을 잃어버린 느낌이다. 세상 사람들이 꼰대, 개저씨, 김여사를 만연하게 부른다. 젊은이들은  틀니를 낀 노인들을 벌레에 비유하며 혐오한다. 혐오를 당하는 사람도, 혐오를 하는 사람도 어른이다. 그들이 서로를 혐오한다.      

때로는 거리에서 사람들을 유심히 또는 힐끔거리며 본다. 몸을 가누지 못하는 취객, 편의점 벤치에서 술과 담배와 욕설을 나누며 자위하는 이들, 바닥을 향해 맥없이 쳐져 있는 어깨를 힘겹게 세우고 비틀거리는 누군가, 당신들도 사는 게 오죽 힘들까…


어느새 그들을 연민한다. 울지 못하는 다 커버린 아이들이 몸으로 흐느끼는 것 같았다. 때로는 그들의 몸부림이 폭력과 민폐라는 이름으로 타인을 향하기도 한다. 그럴 때면 그들을 향한 연민과 혐오가 아슬아슬했다.     

사는 게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다. 인생이 그렇다. 즐거움과 행복은 조미료처럼 한 꼬집, 고통은 한 주걱으로, 온전히 내 몫이다. 다른 사람들이 내 마음 같지 않을 때도 많다. 그렇다고 해서 세상을 비난하거나 남을 원망하면서 살고 싶지 않다.
 살아있음으로써 견디고 있는 존재를 향해 연민을 갖는다. 그렇게 삶의 혐오를 지우며 산다.




  [어떻게 살 것인가]

어느덧 인생의 맛을 알만한 나이가 되었다. 그리고 노년에 들어선 분들을 존경의 눈으로 보기 시작했다.
 '이걸 견디며 살았다니…'

위인이 따로 있나, 요즘 내 눈에는 나보다 20년 이상 연로하신 분들이 위인으로 보인다. 버티며 견뎌내고 있다는 것에 대한 존경. 그들은 내가 10~20대를 지날 무렵, 지금의 내 나이쯤 된 어른들이다. 그땐 어른들이 참 미웠다.     

어린 시절, 친절하거나 친절하지 않은 어른들 속에서 살았다. 나의 부모도, 선생도, 상사도 자신의 기분이 기준이었다. 생각과 다르게 따라주지 않는 체력은 그들을 더 날카롭게 만들었을 것이다. 수시로 변하는 종잡을 수 없는 모습은 불안이었다.


누구보다 빠른 눈치는 원하지 않아도 연마되었다. 체득된 빠릿빠릿함으로도 어른은 맞추기 힘든 상대였다. 자신보다 어린, 낮은 직급의 사람에게 편한 방식으로,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을 수없이 봤다. 나의 아버지는 깍듯하게, 예의 바른 사람으로 사는 것을 유난히 강조했다. 덕분에 무방비하게 어른에게 상처받아도 반항 한번 시원하게 하지 못하며 살았다. 분한 마음은 친절하고 좋은 어른을 향한 동경이 되었다.   

이제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에 답변할 때가 된 것 같다.

나는 좋은 어른으로 살 것이다. 동경의 대상을 투영시켜 만나고 싶었던 어른의 모습으로 살 것이다. 그것이 정확히 어떤 모습이라고 설명하긴 힘들다. 그렇지만 상상 속 어른을 조금씩 만들어가면서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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