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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앎 Jan 15. 2024

당신의 삶에서 무릎보호대는 무엇인가요?

등산에서 인생을 느끼며…

 

  일 년에 몇 번 산에 오른다. 등산에 익숙하지 않은 몸으로 산에 오르는 것은 그 산에 나를 바치는 행위와 같다. 내면은 끊임없이 나를 시험한다. 이만하면 되었다고 내려가자며 자신을 설득한다. 몸에서는 수분이 마르고, 감당하기 힘든 통증은 강도가 더 세진다. 그래도 이왕에 시작했으니 멈추지 않고 걸음을 움직인다. 그렇게 산에 몸을 맡긴다.     


 “정신적·육체적 용기를 발휘하여 고난을 이겨내는 여정이 없으면, 산꼭대기는 아무런 감동을 주기 못한다.”
(클라리사 시벡 몬테피오리, Newphilosopher, 부조리한 삶 속에서 목표를 갖는다는 것, Vol. 13, p47)    


  정상에 도착하면 눈앞의 풍경으로 온몸의 고통이 사라지고 막혔던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다. 도심에서는 느끼기 힘든 감정이 올라온다. 내가 포기하지 않는 인간이라는 것… 그것은 계속해서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되어준다. 그렇게 등산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정상의 풍경을 감상하고 올라온 길을 돌아서 내려가야 한다. 하산하는 길도 역시나 쉽지 않다. 힘 빠진 몸을 감당할 무릎과 정신의 한계가 또다시 시험대에 오른다. 이럴 때 믿을 수 있는 것은 무릎보호대와 정신력밖에 없다. 호기롭게 오르던 맨몸의 청년은 하산 길에 또 한 번 나를 앞선다. 바위를 딛던 청년의 발뒤꿈치가 사시나무 떨리듯 떨린다. 그 모습에 무릎보호대를 한 번 더 힘껏 졸라맨다. 보잘것 없어진 하체에 무릎보호대가 지주 같은 존재가 된다.      


  등산을 다녀온 이후로는 뼈마디와 근육 통증으로 며칠을 고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산에 오른다. 무릎보호대를 단단히 조여매고…     




 삶의 환경이 달라졌다고 해서 위기가 찾아오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외교관 아내의 일상은 권태로웠고 행복하지 않았다. 결혼 후 주류 사회에 동화라도 된 것처럼 잠시 기뻐한 적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 자신이 완벽하게 착각한 것임을 알 게 되었다.
(장영은, «글 쓰는 여자들의 특별한 친구», <정직한 친구들, 한나아렌트와 라헬 파른하겐>, p216)


  등산이 제법 인생과 닮아있다. 산을 오르고 내리는 과정이 마치 인생 곡선을 그리는 것 같다. 끝없이 오르기만 하는 삶이 어디 있을까. 인생을 바꿀 만한 큰 행운이 왔다고 해도 삶이 영원히 안전하고 행복한 것은 아닐 것이다. 이 세상에서 확실한 것은 죽음과 세금뿐이라던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 1706~1790) 말처럼 단언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인생 곡선에 올라탄 이상 무언가 지주가 될 만한 것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등산에서처럼 삶에 보호대가 되어줄 만한 것이 무엇이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나는 내 삶의 보호대를 자연, 책, 글을 쓰는 것, 예술, 사랑하는 사람들로 삼기로 했다. '생각보다 보호대가 많구나!'라는 생각에 안심이 된다.     


  배우 유해진 씨는 힘든 시절을 북한산과,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며 견뎌낼 수 있었다고 한다. 그에게 그 시절 삶의 보호대는 북한산과 도서관이었을 것이다.   


  산을 내려가는 길에 반대로 오르는 사람을 마주친다. 나는 소리 없이 마음으로 그들을 응원하곤 한다.


  ’조심히 올라가시고 천천히 내려오세요. 무릎보호대도 챙기시고요. 그래야 또 오르지요.‘




  

  이 글을 쓰던 시절, 스스로 건강에 자신이 있었다. 산에서 무언가를 찾아 깨달으려 했던 마음과 머리에 가득 찬 먼지를 게워버리려 했던 욕심이 과했는지 마지막으로 등산을 한 게 1년이 넘게 지났고, 지금은 허리디스크와 좌골신경통으로 산에 오르는 것이 쉽지 않다. 아니 어쩌면 당분간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되어 버린 듯하다. 섣불리 등산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등산화를 신는 것조차 두려운 일이 돼버렸다.


  요즘에 들어 나의 무릎보호대는 마치 공부를 재미있어하던 시절로 돌아가기라도 한 듯, 도서관으로, 책으로 바뀌어있다. 물론 여전히 사랑하는 사람들도, 거기에 글을 쓰고 자신을 돌보는 일에서도 안심을 찾고 있다. 무엇이라도 나를 위하는 행위가 있어야 한다. 삶은 계속 나를 시험할 것이고 오르막과 내리막을 내어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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