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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앎 Dec 25. 2023

스스로 선택하는 삶

삶에서 중요한 것

집단주의가 강한 조직에서는 말을 잘 듣는 사람이 돼야 한다. 


그들이 원하는 요구에 부응할 줄도 알아야 한다. 거기까진 괜찮다. 그런데 어느 순간, 통제와 침해를 느낀다. 


권력과 집단에 맞서 싸우기엔 한낱 개인에 불과하다. 힘이 없다. 그래도 내 선에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이라도 해야 한다. 분노할 일에 분노하고 부당한 일을 거부하는 것을 선택한다. 존중받지 못하는 곳에서 순응이란 자신을 포기하는 느낌과 가깝다.


'바라는 삶이 이런 모습인가.' 수없이 질문했고 내 대답은 늘, '아니다.'였다.

선택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4차 산업화에 능숙한 젊은 교수의 면모를 보여주었고, 강의 평가도 나름대로 나쁘지 않았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특별히 나쁜 사람도 아니었다. 최선을 다했고 후회는 없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래,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자.      







결심은 길고 실행은 짧았다. 


서명을 끝낸 사직서는 단숨에 내 손을 떠나 퇴직 절차에 들어갔다. 학과장은 쉽고 빠른 결정이라고 말했다. 해결할 일이 늘어난 학과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자연이 진공을 허용하지 않듯, 내 공백도 곧 누군가로 채워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나의 긴 날을 설명할 이유는 없었고 약해질 대로 약해진 건강은 사직을 해야 하는 적절한 이유가 되어 주었다.   


이삿짐을 두 번 싸야 했고, 먼저 연구실 짐을 서둘러 꾸렸다.

‘이게 맞는 선택일까?’ 

마음의 소리에 움직이는 손이 멈칫했다. 짐을 정리하는 시간이 길었다면 어땠을까. 다행스럽게도 짧은 시간에 연구실은 정리되었다. 


대학의 사정이 어려워졌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같은 층 연구실이 종종 비워지고 채워졌었다. 떠나는 사람이 남긴 복도를 가득 메운 짐이 누군가의 시간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반면 나의 짐은 머무른 시간만큼이나 간소했다. 집으로 가는 길이 가벼웠다. ‘툭’ 한번 털면 끝날 자리에 미련 따위는 남아있지 않았다.


‘꼭 교수가 아니어도 괜찮다. 행복한 사람이면 된다.’ 여기까지 참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타인이 아닌 나에게 위로받는 모습을 보았다. 스스로에게 어려웠고 남들에게는 쉬웠던 위로가 그날만큼은 온전히 나의 것이었다.



*(유시민(2017), 『국가란 무엇인가』, 돌베개, ‘자연이 진공을 허용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권력의 공백이 있는 곳 어디에서나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한 투쟁이 벌어진다.’를 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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