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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앎 Dec 18. 2023

꿈이 현실이 되면…

꿈의 공간에서 생존의 공간으로

 5월은 학기가 한창인 때다. 연구실 밖 캠퍼스는 이제 막 수업을 마치고 쏟아져 나온 학생들로 소란스러웠다.


 ‘똑똑’


 짧고 힘 있는 노크 소리와 함께 2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여자가 문틈으로 얼굴을 내민다. 코로나가 한창인 시절이었으니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지만 눈에는 반가움이 한가득이었다.


 '재학생이 아니다.'

 그 어떤 어색함도, 쭈뼛거림도 없다.

 거침없이 연구실 안으로 들어오는 걸음걸음마다 반가움과 천진함을  가볍게 날리며  내게 가까이 다가온다.


 “저예요~ 수현이!”

 아! 졸업반 때 국가고시 공부가 힘들다며 징징대던 졸업생 수현이다.

 “일요일이 스승의 날이라서 오늘 월차 내고 왔어요.”

 그러고 보니 주말이 스승의 날이었다.

 작은 카네이션 같은, 꽃 같은 아이가 나를 찾아왔다.


 교수 임용 후 졸업생이 연구실로 찾아온 것은 처음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수현이는 처음 겪는 사회생활로 제법 어른스러운 면모로 다듬어져 있었다. 사람에게 치여 힘에 부치는지 일하는 게 쉽지 않다고 말한다. 그런 녀석이 기특하기도 하고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시간강사 시절 학생은 강의에 초청된 고객 느낌이었다면, 전임교수가 된 후로 제자는 자식 같은 애물단지로 변한다.

 “힘든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찾아와. 직장도 멀지 않은데, 밥 사줄게.”


 늘 이 자리에 있겠다는 마음으로 제자에게 찾아오라는 말을 했다.


 그것은 전임교수가 할 수 있는 제자를 대하는 방식이었다. 시간강사는 아무리 학생에게 애착이 있어도 언제든지 찾아오라는 말이 쉽지 않다. 누군가를 초대할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교수가 되었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개강 첫날에는 평소 있는지도 모를 검지와 중지 두 번째 마디가 유난히 바쁘다. 소리가 너무 크지 않게 해야 한다. 2~3미터 떨어진 업무 책상까지 들릴 정도로 너무 약하지도 강하지도 않은 힘으로 문을 두드리고, 어색하지만 살갑고 정중한 사람이 되어 안으로 들어간다.


 내성적인 성격을 가진 내겐 번거롭고 참 힘든 일이었다. 더구나 을의 위치에서 사회생활을 잘하려면 본래의 모습을 잘 감추어야 한다. 천성인 천진함은 그곳에서 가벼움의 대상으로 보일 수 있으니 무겁고도 엄숙한 장소와는 맞지 않았다. 그러니 그곳에서는 더 힘을 주고 보수적인 사람으로 단정하게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단지 문 하나일 뿐인데 그곳에 들어가는 것이 왜 그리 어려웠을까?     


 시간강사는 학생과 전임교수에게 평가받는 대상이다. 실력은 당연하고 언행에도 여간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이 아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들에게 쉼의 공간조차 없는 대학이 흔했다. 지방의 작은 사립대라면 더욱 그랬다.


 차가 있는 사람이라면 형편이 조금 나았다. 그마저도 없는 경우에는 수시로 교수와 학생들이 오고 가는 조교 사무실에서 ‘눈칫밥’을 컵라면에 말아 끼니까지 때우는 불편을 겪었다. 이런 수고로움을 한두 해만 겪으면 다행이지만 전임으로 가는 길이 쉽지 않았다.


 어쩌면 시간강사는 자신의 연구실을 갖기 위해 수년간 전국을 떠돌아다니는 것일지 모른다.      


 그들은 자신의 공간을 얻기 위해 인생을 걸고 꿈을 꾼다. ‘만약 교수가 되면...’ 수많은 날을 상상 속의 자신과 대면한다. 영향력과 결정권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하고 누군가의 인생에 좋은 모델이 되고 싶어 하기도 한다. 학계에 이름을 알리는 학자를 꿈꾸기도 한다. 교수 연구실은 그것을 실현하는 공간이 된다. 그런데 현실은 조금 다르다.


 2017년 6월, 한 대학교 교수 연구실에서 사제폭탄이 터지는 일이 발생했었다. 피해자는 기계공학과 교수, 피의자는 지도를 받고 있던 대학원생이었다. 범행 동기가 교수의 폭언과 갑질이었고 당시에 이 사건은 같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크게 주목을 받았다. 누군가에게 이 사건은 불안이자 못마땅함이 섞인 사회적 문제였다. 다른 누군가에게는 씁쓸한 대리만족이었을 것이다.


 꿈이 현실이 되는 순간 꿈꾸는 자는 사라지고 살아내야 하는 사람만 남게 된다. 교수 연구실은 그렇게 꿈의 공간에서 생존의 공간으로 뒤바뀐다.     


  2021년 겨울, 연구실에서 키우던 임용 축하 선물로 받은 황금죽이 추위에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죽었다.


 죽는 공간이 되어버린 것 같은 느낌은 식물에게만이 아니었다. 옆 연구실, 임용 1년이 채 안된 신임 교수의 한숨이 합판으로 단절된 벽을 넘어 들려온다.


 '당신도 나와 다르지 않군..'


 그 해 겨울 유난히 길고 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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