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부대 아빠, 육아전쟁에 뛰어들다
하루가 시작되었다. 새벽같이 울려 퍼지는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아직 어둠이 채 걷히지 않은 창밖을 보며, 나는 몸을 일으킨다. 옆에는 여전히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아내와 이불을 끌어안은 딸아이가 있다. 나의 하루는 가족보다 먼저 깨어, 가족보다 먼저 움직이며 시작된다.
아침밥을 짓고, 유치원 가방을 챙기고, 아이를 깨우고 씻기고, 밥을 먹이고 옷을 입히고, 등원 준비를 마치는 시간까지는 마치 숨 쉴 틈 없는 작전 수행과도 같다. 그 사이에 아내는 준비를 하며 번갈아 아이를 챙긴다. 우리는 눈빛만으로 서로의 상태를 확인하고, 말없이 다음 행동을 이어간다. 마치 잘 훈련된 전우들처럼.
그렇게 아이를 유치원에 보낸다. 등원길에 아이가 보채거나, 오늘은 유난히 옷을 입기 싫어하거나, 그럴 때면 마음에 불꽃이 일지만, 참는다. 보내고 나면 다시 조용해진 집. 고요한 정적이 한편으론 평화롭지만, 한편으론 낯설다. 이제, 나 혼자다.
처음엔 이 시간이 좋았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커피 한 잔을 마실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자유인지 몰랐으니까. 하지만 그 자유는 생각보다 금방 고독으로 바뀌었다. 정리되지 않은 거실, 식탁 위에 놓인 빈 컵, 쌓인 설거지. 아이가 없는 집은 너무 조용하고, 해야 할 일은 반복된다. 빨래, 청소, 정리. 그러고 나면 어느새 다시 하원 시간이다. 그렇게 하루가 또 돌아온다.
이런 일상이 반복되면, 이상하게도 나 자신이 점점 희미해진다. 하루를 열심히 살았지만, 정작 나는 어디에도 없었다. 가족을 위한 하루는 있었지만,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은 없었다.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 걸까?’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스친다.
이런 감정이 쌓이면, 어느 순간 감정의 파도가 몰려온다. 이유 없이 무기력해지고, 작은 일에도 짜증이 난다. 아이의 칭얼거림이 예전 같지 않게 버겁게 느껴지고, 아내의 말에도 쉽게 예민해진다. 그리고 나는 깨닫는다. 지금, 나는 지쳐가고 있구나.
이게 바로 ‘전투공황’이다. 육아전쟁에서 매일같이 싸우다 보면 생기는 감정의 붕괴. 바로 우울증의 문턱이다. 그 시작은 아주 사소하고 작다. 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기다 보면, 어느 순간 그 늪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된다.
그래서 필요하다.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한 장치. 그것은 꼭 거창할 필요 없다. 오히려 작고 사소한 행동일수록 효과적이다. 나만을 위한 시간. 규칙적인 운동, 산책, 짧은 명상, 음악 감상, 가볍게 책을 읽는 시간. 그런 것들이 내 안의 공기를 순환시켜 준다. 정체되어 있던 감정의 찌꺼기들을 조금씩 걷어낸다.
나는 매일 아침 아이를 등원시키고 돌아오는 길에, 동네 공원을 한 바퀴 돌기로 했다. 처음엔 습관처럼 걷다가, 점점 그 시간이 기다려졌다. 나무 사이로 비치는 햇살, 벤치에 앉아 있는 노인들, 작은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사람들. 세상은 여전히 돌아가고 있었고, 나도 그 속에 있다는 사실이 위로가 되었다.
운동을 병행하면서, 몸이 가벼워졌다. 몸이 가벼워지니 마음도 덩달아 가벼워졌다. 그리고 아내와도 대화를 시작했다. 서로가 느끼는 피로, 고독, 그리고 육아의 어려움을 솔직하게 나누었다. 때로는 다투기도 했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는 서로의 장치를 만들어주기로 했다. 서로를 위해 시간을 내주고, 각자의 시간을 존중해 주는 것. 그것이 곧 자신을 지키는 방법이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지금 어떤가? 하루를 보내고 난 후, 당신의 얼굴에는 어떤 표정이 남아 있는가? 아이를 재우고 나면, 당신의 마음은 평온한가? 아니면, 무언가 빠져나간 듯한 공허함이 자리하고 있는가? 육아는 아이에게 집중하게 만든다. 자연스럽게 내 삶의 중심은 아이가 되고, 나의 시간은 그 아이의 시간표에 따라 움직이게 된다. 하지만 그 속에서 나 자신을 완전히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 아이가 행복하려면, 부모가 먼저 건강해야 한다. 정신적으로든, 신체적으로든.
그래서 자신만의 장치가 필요하다. 그 장치는 꼭 거창하거나 화려할 필요는 없다. 다만 그것은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이어야 한다.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오직 나를 위한 시간. 그 안에서 나는 다시 호흡하고, 생각하고, 회복된다.
혹시라도 아직 나만의 장치를 찾지 못했다면, 지금 이 글을 통해 하나씩 떠올려 보자. 어릴 적 좋아했던 취미는 무엇이었는가? 무엇을 할 때 마음이 편안했는가? 어떤 순간에 나는 나답다고 느꼈는가? 그런 기억들을 다시 불러와서, 오늘부터 하나씩 꺼내보자.
그리고 때로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다. 상담을 통해 내 마음의 상태를 점검받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자신을 돌아보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또한, 부부가 서로의 장치를 만들어주는 것도 중요하다. 한쪽만이 모든 부담을 안게 되면, 결국 둘 다 지치게 된다. 서로를 위한 시간, 서로를 위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가정이라는 작은 전쟁터에서 서로를 지켜주는 방법이다.
육아전쟁은 결코 혼자서 치를 수 있는 싸움이 아니다. 그리고 이 싸움의 승리는 ‘아이를 잘 키우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 안에서 부모 자신도 무너지지 않고 살아남는 것, 그것이 진짜 승리다. 이제 질문해 보자. 나는 나를 잃어버리지 않고 있는가? 만약 잃어버리고 있다면, 오늘부터 나만의 장치를 만들어보자. 아주 작은 것부터.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나를 지킬 수 있는 무언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