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부대 아빠, 육아전쟁에 뛰어들다
육아를 하며 알게 된 것이 있다. 바로 주말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지. 처음엔 그저 쉬는 날이었지만, 이제는 온전히 가족을 위한 시간이다. 특히 육아휴직을 하면서 나는 주말마다 가족 여행을 떠났다. 우리 가족의 거점은 전남 광주광역시. 자연스럽게 전라도 곳곳을 누비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가고 가장 좋아했던 곳이 있다. 바로 무안이다.
무안 갯벌마을은 우리 가족에게 특별한 장소다. 바지락이 파묻힌 갯벌에서 아이들이 장화를 신고 펄쩍펄쩍 뛰며 노는 모습은 그 어떤 장난감보다도 생생하고 건강했다. 짚 라인을 타며 바람을 가르던 순간, 갯벌 위에서 두 손을 맞잡고 튀어 오르던 아이들, 그리고 텐트 안에서 함께 낮잠을 자던 평화로운 시간들. 자연 속에서 흙을 밟고, 바람을 마시고, 웃고 떠들며 하루를 보내면, 나까지도 정화되는 기분이 들었다.
무안만이 아니었다. 함평 나비마을에서는 아이들이 나비를 쫓아 뛰었고, 목포에선 케이블카를 타며 바다를 내려다봤다. 구례 자연드림 파크에선 유기농 간식을 나눠 먹으며 평소엔 하지 않던 대화를 했고, 임실 치즈마을에선 직접 치즈를 만들며 아이들과 눈을 마주쳤다. 매 주말마다 아이들이 더 성장해 가는 느낌이 들었고, 무엇보다 그들의 웃음소리가 점점 더 풍부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린 육아휴직 기간 동안 거의 매주 어딘가로 떠났다. 사실 그전까진 쉽지 않았다. 결혼 10년 차였지만, 그중 10년 가까이를 주말마다 떨어져 지냈다. 나는 외지에서 일했고, 아내는 아이들을 돌보며 홀로 시간을 버텨냈다. 그래서 한 달에 한 번 여행을 간다는 건, 우리에겐 사치였다. 그런데 육아휴직이란 기회를 통해 비로소 그 사치를 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게 주말마다 함께하는 삶을 살다 보니, 문득 어느 날, 혼자 감동이 밀려왔다.
“아, 이게 가족이라는 거구나. 이게 우리가 함께 사는 세상이구나.”
마음 한구석이 뜨겁게 차올랐다.
그리고 그 감정의 정점은, 한 번의 여행 후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서 찾아왔다.
무안에서의 하루를 보내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아이들은 갯벌에서 신나게 놀다 녹초가 되었고, 아내도 텐트에서의 낮잠과 무안의 햇살에 지쳐 보였다. 차 안은 따뜻하게 데워져 있었고, 나는 운전대를 잡고 고속도로를 달렸다. 두 딸은 뒷좌석에서 잠들었다. 한 명은 목이 꺾인 채, 또 다른 아이는 인형을 안은 채 평온하게 숨을 내쉬고 있었다. 아내는 조수석에서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라디오는 꺼져 있었고, 창밖엔 해가 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어느 시골마을의 붉은 신호등 앞에 멈춰 섰다. 주황빛 노을이 창문을 스쳐 지나가고, 차 안엔 고요한 숨소리만이 가득했다.
바로 그때. 나는 알았다.
차 안이, 온기로 가득 차 있다는 걸. 그것은 단순한 따뜻함이 아니었다. 두 딸의 숨결, 아내의 느릿한 호흡, 내가 운전대를 쥔 손끝까지 퍼져오는 가족의 온기였다. 입냄새가 아닌, 향긋한 생명의 기운. 이 차 안이, 지금 이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공간이란 걸.
나는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떴다. 그리고 생각했다. 와이프와 연애를 시작했던 20대 초반, 첫 아이가 태어났던 날, 둘째가 처음 "아빠"라고 불렀던 순간. 그렇게 시간은 흘러 우리는 네 식구가 되었고, 지금 나는 이들을 데리고 여행을 하고 있다. 이보다 더 완벽한 순간이 있을까?
그 온기는 단순히 따뜻한 공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 가족이 함께한 시간들이 모여 만들어낸 감정의 온도였다.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고, 기다려 준 시간들.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이 지금 이 차 안에, 고요하게 숨 쉬고 있었다. 나는 그 순간을 사진처럼 마음에 새겼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운전석에서 나는 가족을 향한 약속을 했다. 이 온기를 잃지 않겠다고. 이 온기가 식지 않도록,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겠다고.
그 이후로도 우리는 매주 어딘가를 향해 달렸다. 고창 선운사 단풍을 보러 갔고, 여수 바다에서 조개구이를 먹으며 노을을 바라봤다. 해남 땅끝마을에선 아이들과 함께 대한민국 최남단을 밟아보기도 했다. 매번 여행이 특별한 건 아니었다. 때로는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하고 돌아온 날도 있었고, 아이들이 차에서 싸우거나 투정을 부려 당황했던 순간도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순간이 모여 하나의 이야기, 하나의 가족사가 되었다.
여행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 그 익숙한 차 안 풍경. 나는 언제나 운전대를 잡고 있었고, 아이들은 여전히 뒷좌석에서 잠들어 있었다. 아내는 조용히 음악을 듣거나 나에게 살짝 기대어 잠들었다. 창밖의 풍경은 흐르고 있었고, 그 속에서 나는 변하지 않는 어떤 것을 느꼈다. 바로 '우리 가족'이라는 온기.
그 따뜻함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한다. 어깨를 누르는 피로마저 녹이는 온도. 그건 사랑의 온도였다. 그리고 나는 알게 되었다. 가족이란, 함께 떠나는 여행에서뿐만 아니라 돌아오는 길의 그 조용한 차 안에서도 완성된다는 걸. 아이들이 자라면 이 시절을 기억할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그들의 마음 한편엔 이 차 안의 온기가 남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온기를 남겨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날 이후, 나는 삶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졌다. 더 조심히 말을 건네고, 더 많이 웃어주려 노력했다. 아이들의 손을 더 자주 잡았고, 아내의 눈을 더 자주 바라보았다. 삶은 여전히 바쁘고, 육아는 여전히 전쟁이다. 그러나 이 전쟁 속에서도 우리가 지켜야 할 작은 평화가 있다. 그것이 바로 차 안의 온기다. 그 온기를 지키는 일. 그게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이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혹시 오늘 어디론가 다녀오는 길인가? 만약 그렇다면, 한 번쯤 멈춰서 조용히 들어보자. 뒷좌석에서 들리는 아이의 숨소리, 조수석에서 들리는 아내의 고른 숨결.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당신의 심장 박동. 그 모든 것이 하나의 온기를 만든다. 그 온기가 바로 당신이 지켜야 할 '가족'이다.
그날, 나는 분명히 느꼈다. 차 안은 하나의 작은 세상이었다. 따뜻하고, 포근하고, 사랑으로 가득한. 그리고 나는, 그 온기를 이끌고 달리는 사람이었다. 조용히, 그러나 가장 단단한 마음으로 우리 가족의 사랑을 지켜내는 길 위의 항해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