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전쟁 전우들과의 대화 속으로

특수부대 아빠, 육아전쟁에 뛰어들다.

by 리드브랜딩

육아를 시작한 지 6개월이 지났을 무렵, 나는 어느새 나도 모르게 육아 베테랑 부모님들과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처음에는 서로 이름도 몰랐고, 말도 잘 안 섞였다. 놀이터 한편에서 서로 다른 시선으로 각자의 아이를 보며 서성였던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아이가 자라고, 내가 육아에 조금씩 익숙해지면서 달라졌다. 어느새 그들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그 대화 속에서 나는 무한한 위로와 연결감을 느꼈다.


첫 번째 공감. 왜 아침 10시에서 12시 사이에 가장 재미있는 TV 프로그램이 하는가.


그 시간은 마치 육아자들을 위한 성역 같았다. 아이를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보내고, 한바탕 빨래를 돌리고 청소를 마무리한 다음, 조용히 늦은 아점을 먹기 위한 유일한 시간. TV를 켜면 정확히 그 시간대에 시사 프로그램, 교양 프로그램, 요리 방송, 다양한 주제의 인터뷰 프로그램들이 시작된다. 처음엔 우연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다. 그 시간대는 ‘육아인들을 위한 시간’이다.


“어쩐지 그 시간에 프로그램이 참 재밌더라고요.”

“맞아요! 사회 돌아가는 얘기 듣고 싶어서, 시사프로 보면서 커피 마시면 그렇게 위로가 되더라고요.”


이야기가 이어진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세상과 단절된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시사 프로그램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다. 그것은 ‘세상과의 연결선’이다. 나는 여전히 사회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 여전히 이 세상의 흐름을 따라가고 있다는 신호.


두 번째 공감. 왜 ‘남이 타주는 커피’, 줄여서 ‘남. 타. 커’를 굳이 돈 주고 마시는가.


“솔직히 집에 커피 있잖아요. 근데 꼭 유모차 끌고 카페 가서 한 잔 시켜 마시게 돼요.”

“맞아요. 집에서 내린 커피랑은 달라요. 남이 타주는 건 그냥 달라요.”


웃음 섞인 이야기지만, 그 속엔 진심이 담겨 있다. 육아를 하다 보면 하루 대부분이 ‘아이 중심’으로 돌아간다. 밥도 아이 시간에 맞춰 먹고, 샤워도 아이가 자야 할 때 맞춰야 한다. 하루 종일 ‘나’를 위한 것이 없다. 그래서 카페에 가서 커피 한 잔을 시키고, 이름이 적힌 종이컵을 받는 순간. 그것은 단순한 카페인 섭취가 아니다. 그것은 ‘나를 위한 투자’, ‘나에게 주는 상’이다. 나는 오늘도 잘 버텼고, 잘 살고 있다는 작은 보상.


세 번째 공감. 왜 직장 다니는 남편 혹은 아내에게 퇴근시간에 정확히 전화를 거는가.


“여보세요?”

“어, 이제 나가?”

“아직인데… 왜?”

“그냥~ 궁금해서.”


그냥? 아니다. 그것은 무의식의 구조 신호다. 퇴근 시간. 그 시각은 육아자에게 있어 하나의 ‘타종’이다. 내가 이 하루를 혼자 버텨왔다는 증명. 그 순간, 구조자가 필요하다. “얼른 들어와 줘. 나 혼자 너무 힘들어.”라는 말은 못 하지만, 전화를 통해 그걸 암시하는 것이다.


육아 전우들과 이 이야기를 나누면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누구나 한 번쯤은 시계를 보며 퇴근 시간에 맞춰 배우자에게 전화를 건다. 그건 시계가 아니라 마음이 울리는 알람이다.


네 번째 공감. 왜 놀이터에서 하늘을 유독 오래 바라보는가.


“아이 보는 것도 행복하죠. 그런데 가끔, 그냥 하늘만 멍하니 쳐다보게 돼요.”

“진짜요. 하늘 보면 잠깐이라도 자유로운 기분 들어요.”


그 순간, 모두의 눈빛이 잠시 멀어진다. 놀이터는 아이들만의 세상이 아니다. 그곳은 부모의 내면이 가장 투명하게 드러나는 장소다. 아이를 지켜보면서도, 한편으론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하늘을 본다. 떠도는 구름, 멀리 날아가는 새. 그것은 무언의 위로다. 언젠가 나도 저렇게 가볍게, 아무런 목적 없이 어딘가를 떠날 수 있을까. 지금은 그럴 수 없지만, 그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진다.


이 네 가지 이야기를 전우들에게 하나둘 풀어놓으면, 곧바로 ‘전우 모드’로 들어간다.


“어떻게 아셨어요? 우리 집 얘기인 줄 알았어요!”

“정말요. 저만 그런 게 아니었군요!”


그리고 그 순간, 우리는 웃는다. 전투복 대신 유모차를 밀고, 헬멧 대신 아기띠를 멘 전우들이. 우리는 같은 전쟁터에서 서로의 손을 잡는다. 그 공감의 순간이야말로 진짜 ‘위로’다.


나는 이 육아전쟁을 통해 너무나 많은 것들을 배웠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단순히 먹이고 입히는 일이 아니었다. 아이와 함께 나도 다시 태어나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나를 키워주신 부모님의 헌신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아이를 키우며 문득문득 내 아버지, 내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왜 몰랐을까. 왜 그리도 힘들었을지, 왜 그렇게 자주 피곤해 보였는지.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늦게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다. 고맙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내 곁에서 묵묵히 아이를 안고, 울음을 달래고, 웃음을 끌어냈던 아내. 나 없는 시간, 혼자서도 가정을 지켜냈던 그녀에게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인다. 당신이 없었다면, 지금 이 이야기를 쓸 수 없었을 것이다. 당신이 있었기에, 나는 이 전쟁을 견딜 수 있었다.


<특수부대 아빠, 육아전쟁에 뛰어들다> 이 연재는 여기까지다. 군에서는 정해진 시간과 명령이 모든 것이었지만, 육아라는 전쟁터에서는 예측불가의 상황이 매일 펼쳐졌다. 전우 없이 싸워야 하는 날도 있었고, 끝이 보이지 않는 진지전을 버텨야 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 속에서 나는 웃었고, 울었고, 또 성장했다. 육아는 단순한 책임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람을 바꾸는 과정이었다.


이 글을 읽어주신 모든 독자분들께 깊은 감사를 전한다. 그리고 같은 전쟁터에서 오늘도 고군분투하고 있을 전우들에게,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고 전하고 싶다. 우리 모두 잘하고 있다고. 오늘 하루도 정말 수고했다고.

이제 나는 다시 아이의 손을 잡고 다음 일상으로 돌아간다. 이 전쟁은 끝난 것이 아니라, 계속된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두렵지 않다. 함께하는 전우들이 있고, 그 속에서 내가 있다는 걸 알기에.

고맙습니다. 그리고 모두의 육아전쟁에, 작은 평화가 함께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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