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1페이지, 세상에서 가장 짧은 교양 수업 365』
『1일 1페이지, 세상에서 가장 짧은 교양 수업 365』, 데이비드 S. 키더 , 노아 D. 오펜하임
중학생 시절, 좀 독특한 방식으로 학생들을 가르쳤던 선생님이 계셨다. 칠판 필기가 당연시 됐던 일반적인 수업 풍경과는 달리 교과서를 들고 직접 읽으시거나, 학생들이 읽도록 시키는 방식이었다. 읽다가 중요한 부분이 나오면 밑줄을 치도록 했고 그 중에서 시험 문제가 출제되는, 지금 생각해 보면 참 편리한 교수법이었다. 비록 읽어나가는 과정이 정말 지루하긴 했지만 시험 문제를 짚어주니 자연스럽게 집중할 수 밖에 없었고, 덕분에 생각보다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괜찮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별로 특별했던 경험도 아니었고, 그 때 이후로는 사실상 잊혀진 기억에 불과했는데 이상하게 이 책을 읽으면서 반복적으로 그 때 생각이 나 기분이 묘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이 책은 7가지 분야 (역사, 문학, 미술, 과학, 음악, 철학, 종교) 의 중요한 인물, 이론, 사건 등을 꼽아 한 페이지 내에서 설명하는 방식으로 구성한 제목처럼 정말 짧은 교양서적이다. 게다가 하루 한 페이지라고 하는 독특한 컨셉까지 더해 분야별 52개의 주제를 매일 번갈아가며 읽을 수 있도록 했다. 자칫 따분할 수 있는 그 작은 여지마저 남겨놓지 않겠다는 꼼꼼함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배려가 서평 작성을 위해, 또는 평소에 깊이 파고드는 것을 좋아하는 필자에게는 상당한 혼란을 야기하는 구성으로 와닿았다. 차라리 분야 별로 묶어서 쭉 읽어나갈 수 있도록 했다면 맥락이라도 연결될 수 있었을텐데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전혀 다른 내용이 펼쳐지니 앞서 읽었던 내용은 금새 잊혀지고 말았다. 아마 그래서였던 것 같다. 20년도 더 지난 그 때가 떠올랐던 건 이 책이 주는 특유의 '교과서'적인 느낌 - 핵심 내용만 꼽아 우격다짐으로 집어넣어 결국에 기억에 남는 건 없게 되는 - 말이다. 사실 우리는 교과 과정을 통해 주요 세계사, 동서양 철학 사상 등 생각보다 많은 내용을 배웠다. 물론 비록 몇 문장에 불과할만큼 간단하게 접하긴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서글픈 것은 당시의 배움이 삶에서 그다지 유용하지 못하다는 것. 유독 인과관계에 집착하게 된 건 직업적인 특성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그 시간을 보상받고 싶은 마음이 더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물론 필자가 저자들이 염두한 독자층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도, 하루하루 색다른 배움을 주기 위한 것이라는 점도 잘 알고 있었다. 이 책을 선택했던 이유가 가볍게 전체적인 내용을 조망해보고 싶어서였기 때문에 애초에 교과서 같은 느낌을 받을 것이라는 예상도 이미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유독 불편했던 것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문제, 즉 단 하나의 인과관계도 남겨놓지 않는 개별성 자체로써의 구성이었다. 한마디로 파편화된 내용 전개에 대한 아쉬움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라깡의 표현처럼 무의식은 언제나 외부에 있다.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경험이 없이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 수 없고, 그 불편함이 클수록 그 가치도 따라 올라가기 마련이다. 필자에게 있어 '의미'는 하나의 절대적 판단 기준이자 정언명령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이런 가치관 때문에 누군가에게 '그저 가볍게 누리는 즐거움'은 '참을 수 없는 즐거움'으로 되돌아오곤 한다. 아내와 티격태격하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나를 성장시키는 유무형의 가치가 더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의미가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쉼의 가치, 긴장을 정말 편안하게 내려놓는 기술, 소위 마음의 여유를 갖기를 바라면서도 나를 강렬하게 사로잡은 결핍 - 순수하게 원하는 것을 찾아 기쁜 마음으로 몰입할 수 있는 것 - 의 지배는 이를 쉬이 놓아주지 않는다.
비록 필자가 느꼈던 불편함을 중심으로 책을 소개(?)하긴 했지만 사실 이는 지극히 주관적인 느낌 해석일 뿐이다. 다양한 배경지식들을 가볍게 섭취하고자 하는 분들 (필자를 비롯하여) 에게 '주제 당 한 페이지'라는 분량은 더할 나위 없는 편안함으로 책을 대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거기에 주요 인물들의 중요한 저서들은 장바구니를 풍성하게 해주는데 일조해 가볍게 둘러보다 관심있는 제품을 고르는 일종의 쇼핑처럼 읽어나갈 수 있는 장점도 있었다. 분명 기억에 대한 회의, 유용함에 대한 아쉬움은 필자로 하여금 깊이 있는 책을 읽고 이를 글로 풀어내게 만든 중요한 원동력이 되었다. 덕분에 꾸준히 달려갈 수 있는 힘을 갖게 되었으니 경험을 다채롭게 풀어낼 수 있는 싱그러운 가벼움을 마음껏 느낄 수 있도록 한 번쯤은 창문을 활짝 열어놔야겠다. 아무래도 몸과 마음이 가벼워야 더 오래, 또 멀리 나아갈 수 있을테니까.
* 표지 이미지 출처 : https://bodyhacks.com/prioritize-rest-life-filled-stress/
* 책 표지 이미지 출처 : https://www.hankyung.com/life/article/201911017000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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