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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aDelight Dec 10. 2019

당신의 허니맨은 누구인가요?

『서칭 포 허니맨』, 박현주

『서칭 포 허니맨』, 박현주, 위즈덤하우스




'서칭 포 허니맨? 제목이 특이하네. 달달한 사랑을 찾아 떠나는 뭐 그런 내용인가?'


어렵지 않은 표현을 외국어로 사용한 것에 대한 반감은 불편한 시선으로 제목을 바라보게 했다. 하지만 바로 아래 쓰여있는 부제목을 보자마자 곧바로 이해가 됐다.

'양봉남을 찾아서'

설마 진짜 양봉업을 하는 사람을 찾는 이야기 일줄이야.... 원 제목을 그저 직역한 것 뿐인데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부제를 원제로 올리자니 도시적인 느낌이 너무 사라지는 것 같고, 그렇다고 '양봉업자를 찾아서'라고 하기엔 로맨스 느낌이 전혀 살지 않고, 이래저래 마음에 드는 제목을 짓기 위해 고민이 많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등장인물 중 한 사람의 관심을 끌었던, 그러나 갑작스레 사라져 버린 남성을 찾기 위해 의기투합한 세 여성의 이야기이다. 저자는 미스터리 로맨스라고 하는 분류처럼 시간과 사건을 통해 저마다의 진실을 마주하게 한 뒤, 홀로 또는 함께 삶을 선택해 나가는 모습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사실 소설이라는 장르는 필자에게는 영 익숙지 않은 분야다. 마지막으로 읽었던게 2년 전 <82년생 김지영>이었는데, 소설이라기보다는 기획 기사의 느낌이 더 강했기 때문에 순수한 경험을 찾으려면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야만 했다. 그래서 ‘엉겁결’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문학 작품만의 색다른 울림을 기대하는 마음도 있어 책 선정 과정에 수동적으로나마 참여할 수 있었다. 독서의 이유가 늘상 무언가를 배우고 깨닫는 기쁨에 있다보니 자연히 등한시하게 되는 다양한 감정의 흐름을 한 번쯤은 느끼고 싶었던 것이다. 더불어 소설만의 특징이라 할 수 있을 등장인물들의 섬세한 묘사를 통해 저자가 알려주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일지도 궁금했다.


일상을 새롭게 만드는 섬세한 감정 표현

특별히 읽는 내내 놀라웠던 점은 무언가 자극적이거나 특별한 사건이 빈번하게 벌어지는 전개가 아님에도 독자를 지속적으로 몰입하도록 이끄는 저자의 필력이었다. 연결성과 인과관계를 중시하는 필자가 느끼기에 감정선을 과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모자라지도 않게 적절한 수준에서 유지하는 능력이 책을 읽으면서, 또한 읽고 나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점이었다.

“그럼 나는 갈게.”
벤치는 깨끗했지만, 재웅은 괜스레 바지 자락을 털며 일어났다.
“어, 그래.”
하담도 허겁지겁 따라 일어났다. 게스트하우스 카페는 문을 닫았고, 근처에는 달리 갈 만한 데도 없으며, 산책을 할 만큼 밝은 길조차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늦은 시간에 용건이 없이도 계속 같이 있는 두 사람 사이에는 의미가 생겨버린다. 의미는 꿀벌과 같았다. 달콤해질 수도 위험해질 수도 있었다.
p. 109


딱 이 정도 느낌이었다. 상황을 묘사하고 등장 인물들의 감정선을 가볍게 터치하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특히 ‘용건이 없이도 같이 있으면 의미가 생겨버린다’는 표현을 보면서 필자라면 그저 어색한 분위기로만 풀 것 같은 상상력에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했다. 소설가들의 상상력과 느낌을 표현하는 능력이 부러웠던 순간이었다.

드론이 든 가방이 갑자기 열 배는 무거워진 듯, 재웅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하담은 이전에 자기가 풀 죽었을 때의 재웅을 약간은 귀여워했다는 걸 떠올렸다. 추억은 눈치가 없다. 가장 부적절한 순간에 찾아온다.
p. 415


코미디언들은 유행어에 목숨을 건다. 그 사람을 지속적으로 각인시키는 강력한 브랜딩 도구가 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수 많은 위인들이 지속적으로 회자될 수 있도록 이끄는 힘도 간결하지만 깊은 의미를 담고 있는 한 문장에서 나왔다. 저자의 경우에도 일부러 신경쓴건지는 모르겠지만 감정선을 건드리고 싶을 때 인상적인 문구들을 적절하게 넣어줄 줄 알았다. 문장과 내용이 평이하게 느껴질 때 쯤 이렇게 한 번씩 자극을 주니 익숙함 속에서 묘한 즐거움이 올라오는 재미가 있었다.


아쉬움이 남는 ‘구조’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평이함을 지루하지 않게 풀어내는 문장력이 필자가 느꼈던 이 책의 가장 큰 강점이었다. 로맨스 소설이긴 하지만 지나치게 감정에 빠져들지 않았기에 몰입을 방해하지 않았던 듯 싶다. 사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남자 셋, 여자 셋을 중심으로 사건이 구성되다 보니 감정으로 조금만 더 깊이 들어가도 500페이지나 되는 분량이 얼마나 늘어날지 가늠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어쩌면 그래서였을까? 뒤돌아보면 휘몰아치는 감정도, 열정적인 뜨거움도 느끼기 어려워 미적지근한 느낌만 남았던 이유 말이다. 로맨스가 풍성하지도, 미스터리가 강렬하지도 않다보니 책을 손에서 내려놨을 때 찾아오는 긴 여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어떤 장르의 책이든 저자의 의도가 잘 전달되면 찾아오는 묘한 울림이 있게 마련이다. 필자 또한 책을 통해 그런 느낌을 받길 기대했던 것 같다. 하지만 저자의 표현처럼 아쉬움이 찾아와야 기대가 있었음을 알 수 있는 법이다. 애석하게도 그런 순간은 찾아오지 않았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필자가 보기 '저자가 너무 착서'인듯 싶었다. 뜬금없이 무슨 소리냐고 되물을 수 있겠지만 저자가 악을 다루는 방식에서 어색함을 느껴왔 때문이다. 언제나 새로운 계기는 악인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다. 하지만 책에서의 악인은 마치 총을 처음 쥐어본 범죄자가 손을 떨면서 위협하는 것 마냥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그렇게 너무 늦게, 하지만 너무 빨리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 버린 악인들에게 원망스러움을 느끼는 내 자신의 어색함이 글의 후반부 내 이어진 것은 그 때문이었다. 양봉업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보니 조사의 수준을 가늠하기 어려웠지만, 범죄에 대한 연구는 자칫 드라마나 영화 관람의 수준에만 머물렀던 것은 아니었을까? 어쩌면 급하게 글을 마무리 지으려는 의도였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책을 통해 느낀 것은 일종의 ‘좋은 사람 컴플렉스’였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한결 같이 사려 깊다. 그들 사이에서 갈피를 잡기 어렵다는 인물조차도 의외스럽지 않다. 심지어 악인들도 충분히 악하지 못하다. 저자가 표현할 수 있는 인간 군상들이 하나의 사분면에 다소곳이 모여드는 듯 했다. 이처럼 다양한 인간성이 공존하지 않았기에 별 다른 자극을 받지 못하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저자는 분명 좋은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긴 어렵다. 주제 넘지만 어쩌면 내 안에 억눌려 있을지 모를 교활함을 끄집어낼 때 그녀의 글은 좀 더 빛나는 매력을 발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이유에서 어쩌면 저자도 등장인물들처럼 자신만의 허니맨을 찾고 싶은 간절함을 간접적으로 담아낸건 아니었을까 싶었다. 물론 여기에서의 허니맨은 단지 이성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나를 가슴 뛰게 만드는 무엇, 무언가를 하도록 이끄는 욕망의 원인으로써 스스로의 결여점을 채워줄 대상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오랜만의 소설을 통해 기대와 아쉬움이 교차하는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어 의미있었던 시간이었다. 아무쪼록 저자만의 서칭 포 허니맨 프로젝트도 좋은 결실을 거둘 수 있길, 앞으로 좀 더 나쁜 작품으로 다시 만나길 기대해 본다.




※ 이 책은 성장판 서평단 2기 활동으로 출판사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서평의 내용은 전적으로 제 주관적인 감상임을 밝힙니다.


* 표지 이미지 출처 : http://clipart-library.com/clipart/6iy5eyxKT.htm

* 책 표지 이미지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911180925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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